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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우리 아파트에 조용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학생들이 쓰레기 줍기를 하니 아파트 내에 기특하다고 격려해주는 어른도 있었는데, 이런 칭찬은 학생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우리 아파트에 조용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학생들이 쓰레기 줍기를 하니 아파트 내에 기특하다고 격려해주는 어른도 있었는데, 이런 칭찬은 학생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 남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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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4회에 걸쳐 진행한 '마을학교'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당시까지 우리 아파트에서 주민총회를 열었던 적이 두 번 있었는데, 그건 다 문제가 생겼으니 모여서 실상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모두 부정적인 일에 대한 대응 차원의 모임이었다.

그런데 '마을학교'는 좋은 아파트 공동체를 함께 만들자는 취지에서 열린 것이다. 당장 엄청난 변화가 있진 않았지만, 최소한 마을학교는 '아, 이제 아파트가 변화되는구나!'라는 작은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더구나 마을학교를 통해 나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세 번째 강의의 강사였던 조안나 선생은 아파트 공동체 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분이었다.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경험한 것을 나누는 '사례발표'는 우리에게 굉장한 도전을 주었는데, 그중에서 두 가지는 당장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나는 푸드트럭 입점이었다. 거의 모든 아파트는 매주 1회씩 알뜰장터가 열린다. 옷도 팔고, 떡볶이도 팔고, 야채도 파는 장터가 우리 아파트에서도 정기적으로 열려왔는데, 2017년부터 식품위생법이 강화되어 무허가 조리판매가 금지되었다. 알뜰장터에 오는 입주민들은 보통 떡볶이, 국수 등을 먹으면서 다른 물건을 구매하는데, 음식 판매가 금지되니 알뜰장터를 찾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줄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알뜰장터 업체는 입점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조안나 선생은 수원시의회가 푸드트럭에 한해서 아파트 입점이 가능하도록 조례를 개정했다면서 우리 아파트가 푸드트럭을 입점케 하면 좋겠다고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청년을 돕기 위해서 청년들이 운영하는 푸드트럭이 입점하면 더 의미가 깊겠다고 하였다.

청년 푸드트럭, 입점하다!

나는 강의를 마치고 바로 수원시 사회적경제과에 연락을 해서 푸드트럭 입점 가능성을 물었다. 수원시는 시의회 통과로 가능하다고 답하면서 청년 푸드트럭 운영자를 연결시켜 주었다.

며칠 후 푸드트럭 청년 사장과 관리사무소에서 만났다. 우리의 취지를 설명하니 청년 사장은 크게 고무되었다. 그에게 들으니 수원시에서 푸드트럭 입점은 우리 아파트가 처음이라고 한다. 나는 그 청년 사장에게 정기회의에 출석하여 동대표들에게 사업설명을 할 것을 제안했다.

2018년 11월 28일에 열린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청년 푸드트럭 대표는 우리에게 사업설명을 했고, 그 설명을 들은 동대표들은 청년 푸드트럭 입점 허가를 의결했다. 동대표들도 푸드트럭의 사업 주체가 청년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았다.

청년 사장은 푸드트럭이 입점한다는 현수막을 아파트 곳곳에 걸고 공고문을 붙이고, 관리사무소는 입점 1주일 전부터 방송했다. 드디어 2018년 12월 4일 청년 푸드트럭 6대가 입점했다. 대성공이었다. 무엇보다도 입주민들이 매우 좋아했다. '청년'이어서 더 좋다는 입주민들도 많았다. 푸드트럭 청년 사장들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렇게 한동안 매주 1회씩 꾸준히 입점한 푸드트럭은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푸드트럭 청년 대표는 내게 굉장히 고마워했다. 그런데 같은 음식이 계속 들어와서인지 손님들이 점점 줄기 시작했고, 푸드트럭 청년 사장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나는 그들에게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했는데, 최근에 그들은 입주민들이 직접 만든 공예품을 가지고 나와서 판매하는 플리마켓과 함께 푸드트럭을 운영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워서 진행하려 하고 있다.

꽃을 심고 물을 주다 
 
 아파트 공터에 꽃을 심고 물을 주는 일을 시작했다.
 아파트 공터에 꽃을 심고 물을 주는 일을 시작했다.
ⓒ 남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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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나는 초중고 학생들과 텃밭에 꽃을 심는 프로젝트다. 우리 아파트 맨 뒤에는 텃밭으로 운영되다가 중단된 공터가 있다. 관리사무소는 그곳에 코스모스를 심었는데,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렇게 방치된 땅에 학생들과 함께 꽃을 심고 물을 주는 일, 즉 생명을 가꾸는 것을 시작해보는 것도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좋은 방안이라고 조안나 선생은 우리에게 제안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꽃을 심고 물을 주는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할까? 학생들뿐만 아니라 누구든 참여해서 꽃을 심고 물을 주면 그 시간만큼 봉사점수를 부여할 수 있는데, 봉사점수를 얻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학생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안나 선생은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꽃 심고 가꾸기, 청소하기, 눈 치우기 등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봉사점수를 부여했더니 참여하는 학생들이 꽤 되었다는 경험을 들려주었지만, 나는 좀 회의적이었다. 봉사점수를 얻기 위해 꽃을 심고 물을 주 학생들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차라리 방학 때 한꺼번에 동사무소나 복지센터에서 봉사점수를 얻는 것을 선택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공고문을 붙였다. 처음에는 초등생 1명, 중학생 3명, 성인 4명이 왔다. 나는 겨우 8명 왔다고 생각해서 좀 실망했는데, 조안나 선생은 8명도 상당히 많이 온 것이라며 대단한 일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학생들에게 어떤 생각으로 왔냐고 물었더니 모두 하나같이 '봉사점수' 때문이라고 했다. 내심 얼마나 갈까 했는데, 긍정적인 건 성인 4명이 상당히 적극적이라는 점이었다. 이들은 이후 모임부터 능동적으로 모임을 이끌어갔다.

우리는 날씨가 괜찮은 토요일 혹은 일요일 오후에 모여서 꽃을 심고 물을 주는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자기가 심은 꽃에 물을 주는 일에 자발적으로 열심을 내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봉사점수를 얻기 위해서 왔는데 몇 주 지나니까 아이들의 얼굴이 달라졌다. 꽃이라는 생명을 가꾸는 일이 그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이다. 우리는 이 모임에 '나비정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생명감수성과 환경감수성, 그리고 아파트 공동체
 
 처음엔 꽃 심고 물주기만 하다가 우유팩 세척도 하고 아파트 구석구석에 있는 쓰레기 줍기도 하였다.
 처음엔 꽃 심고 물주기만 하다가 우유팩 세척도 하고 아파트 구석구석에 있는 쓰레기 줍기도 하였다.
ⓒ 남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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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작한 나비정원에 큰 변화가 생겼다. 8명으로 시작한 나비정원은 순식간에 30여 명으로 늘게 되었다. 매주 30명이 모인 것은 아니지만, 시간 될 때 나오는 학생 수를 모두 세어보니 30명이 조금 넘었다. 처음엔 모두 봉사점수 때문에 왔지만, 몇 번 경험하고 봉사점수를 넘어서는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학생들 안에 '생명감수성'이 움튼 것이다. 참여하는 어른들의 숫자도 조금씩 늘었다.

나비정원은 활동 영역을 넓혔다. 처음엔 꽃 심고 물주기만 하다가, 우유팩 세척도 시도하였다. 경비원 아저씨들이 재활용 분리수거 할 때 모아준 우유팩 하나하나를 손으로 펼쳐서 세척한 후 건조시키는 작업인데, 이것을 모아 동사무소에 가져다주면 휴지로 바꿔준다. 세척한 우유팩은 휴지를 만드는 데 쓰인다고 한다. 우유팩을 손으로 펼칠 때 냄새가 심해서 좀 힘든데도 학생들이 10명 이상 꾸준히 참여했다. 아이들 맘에 자연스럽게 '환경감수성'도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나비정원'은 아파트 구석구석에 있는 쓰레기 줍기도 하였다. 학생들이 쓰레기 줍기를 하니 아파트 내에 기특하다고 격려해주는 어른도 있었는데, 이런 칭찬은 학생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 꽃을 심고 물을 주고, 환경을 생각하며 우유팩을 세척하고,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쓰레기를 줍는 학생들과 어른들에게 자연스럽게 긍지가 생겨난 것이다.

나비정원 동아리의 초대 회장은 2019년 10월 중순에 아파트 회장 임기를 마친 내가 맡기로 하였다. 며칠 전에 가진 나비정원 임원모임에서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모든 동 화단에 꽃을 심을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우리 아파트에는 조용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청년들이 일거리를 얻고, 입주민들은 보다 안전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며, 학생들 안에는 생명감수성과 환경감수성이 자라가면서 봉사점수를 덤으로 얻고 있다. 올해는 우리 아파트에 더 많은 꽃이 심길 것이고, 학생들의 활동으로 아파트는 더 깨끗해질 것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변화를 더 실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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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토지공개념과 기본소득, 그리고 통일을 염두에 둔 대안 국가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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