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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교직 사회엔 '눈치 전쟁'이 벌어진다. 내가 과연 원하는 학교로 전근 갈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물밑작전이 치열하다. 외부에서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어딜 가나 월급 똑같고 가르치는 과목도 바뀌지 않는데, 근무지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을 것이다. 

그러나 교직 사회의 범위를 남교사, 그중에서도 교감·교장 승진을 염두에 둔 교사로 한정해 보면 낯선 전쟁의 윤곽이 드러난다. 강원도는 타 시도보다 농어촌이나 벽지 학교(문화나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궁벽한 지역에서 교육을 하는 학교)가 많은 편이다. 시골 학교는 교통이 불편하고 생활 여건이 열악하다. 그래서 유인책으로 승진 가산점이 주어진다. 승진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산점을 모아야 하지만 벽지와 농어촌 점수가 없이는 사실상 승진이 불가하다.

승진 점수로 인해 벽지 학교는 특지 학교로 둔갑한다. 승진의 핵심 변수는 벽지 점수다. 특히 도시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벽지 학교의 빈자리는 초유의 관심사가 된다. 

자연스레 전보 순위가 높은 사람의 행보가 무척 중요해진다. 고 순위자가 어느 학교에 지원하느냐에 따라 다음 순위 사람들의 자리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내가 높은 순위에 오른 모양이다. 내가 전보 서류를 쓰기도 전에, 점수 계산을 하기도 전에 주변에서 내 순위를 얼추 산정해서 알려주었는데 실제로 거의 일치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보 시즌이 시작됨과 동시에 지인들의 전보 문의가 줄을 이었다. 
 
 점수 1, 2점에 인사이동이 갈린다.
 점수 1, 2점에 인사이동이 갈린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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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자는 선배, 후배를 가리지 않았다. 용건은 간단하다. 나의 행선지.

"이 선생, 올해 학교 4년 만기지? 요번에 어디 써? 흥O초? 장O초?"

흥O초와 장O초는 모두 벽지 학교다. 심지어 장O초는 2020년부터 2년짜리 연구학교로 선정돼 승진가산점이 붙는다. 선호도 최상급의 학교다. 지금부터 내 대답이 중요하다. 어차피 벽지 학교 빈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내가 빨리 결정을 내려야 다음 사람이 점수 계산하기에 편하다. 나는 두 학교가 아닌 집 근처 학교 한 곳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상대의 대답이 빨라진다. 

"에헤이~ 이 사람아. 거길 왜 가나. 벽지이길 하나? 연구학교이길 하나? 영양가 없어."
"내년에 아내가 복직해서요. 애들 아프거나 그럴 때 조퇴 낼 일도 생길 거 같아서 가까운 데 가려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신중하게 생각해. 나중을 대비해서라도."


선배 목소리에 나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확신에 가득 찬 조언, 안타까움만이 가득했다. 지금 내 순위면 교통편이 그나마 수월한 벽지학교에 무리 없이 들어가 4년 만기를 채울 수 있다. 혹은 2년짜리 연구학교를 택할 수도 있다. 나는 이 기회를 거부했다. 덩굴째 굴러온 호박을 걷어찼다. 

얼마 후 다른 선배가 연락했다. 그사이 내 이야기가 돌았는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직 이 선생이 젊어서 그래. 사십 넘어봐라. 체력은 부치지, 애들은 감당 안 되지. 미리 점수 따 놔."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선배의 조언을 뒤로 하고 원래 계획대로 시내 학교에 희망원을 냈다. "승진밖에 모르는 사람들!" 하면서 반발 심리로 튕긴 건 아니다. 상대의 선의를 잘 알고,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부분도 있기에 원망하는 마음은 없다. 다만 승진을 인생의 큰 줄기로 삼으면 교실에서 아이들하고 지내는 게 더 힘들어질까봐 그랬다. 

승진은 어떤 의미에서 교실을 떠나는 행위다. 교과서와 멀어지고, 수업을 놓고, 학생 생활지도를 덜 하게 된다. 내게 승진을 권하는 분들의 의도는 명확하다. 나이 들면 현장에서 담임으로 사는 게 힘들 테니 탈출 준비를 하라. 혹은 동기들, 후배들 다 승진하는데 혼자 평교사에 머물러 있으면 자괴감 치미니 그러지 말아라. 

챙겨주는 마음은 고맙지만 이 말을 삼키려 들면 목이 멘다. 가르치는 게 좋아서 선생님이 되었는데 교실을 비우는 게 축하받을 일이라 하니 아이러니다. 승진을 목표로 상정하면 교감 교장 자리는 우월한 것,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이 된다. 반면 평교사 자리는 목표에 미도달한 상태, 상대적으로 낮은 것처럼 여겨진다. 멀쩡하고 행복한 내 일상이 뭔가 부족한 상태로 내려앉는다. 지금도 제법 괜찮은데.
 
 출근하면 책상에 그 날 수업 자료가 쌓인다. 읽고 가르치기는 매일 반복되지만 싫지 않다.
 출근하면 책상에 그 날 수업 자료가 쌓인다. 읽고 가르치기는 매일 반복되지만 싫지 않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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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괴감과 관련해서도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 가령 내가 평교사로 50대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비슷한 시기에 교직에 진출한 동료가 승진했다고 해서 자괴감을 느낄 것인가.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가정이긴 하다. 평교사로 정년을 채우는 사례는 드물다. 이런 소문도 있다. '나이 들면 학생과 학부모가 싫어한다', '교장도 선배 평교사를 불편해한다', '원로 교사에게는 업무를 배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부담스럽다' 등 이른바 늙은 평교사의 공포다. 

평교사로 오래 버티고 싶다면 철저히 교육과정 연구하고 건강 관리를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얼핏 스치지만 그건 기존의 편견을 강화하는데 일조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냥 나이 같은 건 잊어버리고 지금처럼 본인의 역할을 하면 된다고 다짐한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다짐이다. 교사가 교사로 살겠다는데 왜 이리 거창한 각오와 앞뒤 계산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놈의 승진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같이 카풀하는 선배 C에게 말했다. C는 나보다 전보 순위도 높고 지금껏 승진 점수를 차곡차곡 쌓았다. 별다른 고민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승진하면 정말 행복할까? 나는 아직도 확신이 안 서."
"형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의외인데요?"
"글쎄 앞날을 아무도 모르잖아. 보험 같은 거지."


C는 성실하고 아이들에게 잘 대해주며, 수업 준비도 꾸준히 하는 내가 아는 한 좋은 선생님이다. C의 행복 고민이 진심이라면 나는 C 같은 선배가 오랫동안 교실을 지켜주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처럼 교장, 교감 승진이 과열된 상태에서는 너도나도 불안에 휩싸여 맹목적으로 승진 준비를 한다. 능력으로 보나 적성으로 보나 행정 관리직보다 현장에서 수업하는 게 더 적합한 사람도 승진 대열에 끼고 만다. 

문득 교사의 승진 라인을 교사직과 행정직으로 동등하게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교사직을 선택하더라도 행정직과 대비해 처우와 위상에서 차별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다. 행정직보다 처우와 위상에서 차이가 나는 현재의 수석교사제를 뛰어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럼 퇴직 때까지 교실에 머물며 수업하는 자신의 모습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인사철마다 승진 가산점이 주어지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를 비교하며 전보 전쟁을 벌이는 소동을 덜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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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교육, 그림책, 육아, 일상 주제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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