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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하(素荷) 양유전 선생의 개인전 '漆'(칠)이 오는 17일까지 갤러리 1898(서울 중구 명동길 74)의 1, 2 전시장에서 열린다. 칠기에 그림을 그리는 채회 기법으로는 우리나라 최고로 손꼽는 양유전 선생은 1949년 통영에서 태어나 1967년 전재용공방에 입문해 나전칠기 제작기법을 전수받고, 1974년 일사(一砂) 김봉용 선생에게 입문해 지금까지 한국전통 고유의 문양으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소하(素荷) 양유전 선생의 개인전 '칠'이 오는 17일까지 갤러리 1898에서 개최되고 있다.
 소하(素荷) 양유전 선생의 개인전 "칠"이 오는 17일까지 갤러리 1898에서 개최되고 있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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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에 묻혀 산지 50년이 넘는 세월

소하 양유전 선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옻칠공예작가로 옻칠이 된 기물 위에 붓으로 문양과 그림을 그리는 채회기법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루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오는 칠기의 장식기법인 채회기법으로 중국에서도 인정을 받아 지난 10월에는 그와 그의 작품이 호북성 미술관에 초대되기도 했으며,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도 그의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다.

- 먼저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칠을 만진 지가 50년이 넘었습니다. 저를 가르치신 선생님께서 내어주신 숙제를 하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이제야 어느 정도는 선생님께서 내어 주신 숙제를 다 했구나,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이루었구나 싶어 마음이 좀 편안해졌습니다."
  
 위는 천상열차 분야지도와 오신도로 만들어진 탁자와 의자. 아래는 탁자의 일부.
 위는 천상열차 분야지도와 오신도로 만들어진 탁자와 의자. 아래는 탁자의 일부.
ⓒ 김미진. 양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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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에 중국을 다녀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중국의 많은 칠예가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더군요. 중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옻칠문화와 예술에 대해 나라에서 엄청나게 지원을 하고, 칠예가들을 후원하고 있어 그 층들이 두텁고 실력도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선생님의 채회 솜씨는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며 혀를 내들렀다는 후문을 들었습니다. 국가적인 지원이 풍부한 중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아쉬운 게 많지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하고 중반을 지날 때까지 우리 문화로 제대로 인정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전통문화분야의 공무원들이 채회에 대한 이해가 없어 중국것이라 생각했어요. 사실 알고 보면 우리 것인데 말이죠.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굴 되는 유물에 중국의 명문이 나오니까 중국문화, 중국 유물로 생각하는데 우리가 만들어서 수출했다고 보는 게 맞을 거예요. 중국에서 원하는 대로 명문을 해서 수출을 했는데 그게 발굴될 때는 중국의 명문이 남아 있으니 중국 것이라 생각하는 거죠."

지난 김해박물관 '고대의 빛깔 옻칠'전 때 전시 유물들에 대해 이해를 도와 준 이종헌 선생(한국옻칠협회 이사)의 이야기가 언뜻 떠올랐다. 이종헌 선생은 옻칠유물을 해석하는 방식에 대해 이견을 밝히기도 했다.

"발굴된 칠기유물에서 중국의 명문이 나오니 우리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생각하는데 유물을 해석하는 그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고 봐요. 옻칠은 어느 한 지역에서만 성행하던 문화가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체에서 성행했던 문화인데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교역이 성행했을 거예요.

그리고 실제 우리가 만든 유물들이 중국에서 발견되기도 하는데 당시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해석을 하는 측면도 필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옻칠유물을 두고 이야기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국가별로 나누는 게 별 의미가 없는 측면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옻칠은 동북아문화로 같이 묶어서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왼쪽은 달토끼와 수미산. 돌 그림에 이금. 가운데는 도솔천. 돌 그림에 이금. 오른쪽은 삼족오와 비천상. 돌 그림에 이금.
 왼쪽은 달토끼와 수미산. 돌 그림에 이금. 가운데는 도솔천. 돌 그림에 이금. 오른쪽은 삼족오와 비천상. 돌 그림에 이금.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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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회,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의 예술

- 선생님께서는 이 일을 해오시면서 어떨 때 제일 뿌듯하신지요?
"이번 전시회 같아요.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이제 나도 클 만큼 컸구나, 하하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뿌듯해지네요. 요즘 사람들은 나전을 우선으로 치지만 역사로 본다면 채회가 나전칠기의 아버지 격이죠. 채회가 있어서 나전이 나올 수 있었죠. 나전만 우리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칠의 역사와 문화를 좀 더 폭넓게 수용할 수 있게 된다면 못 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나마 이번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면서 놀라더군요. 감탄도 하면서 우리 문화에 대해 새로이 보시는 분들이 늘어서 무척이나 기뻐요."

- 그러면 어떤 면이 제일 아쉬웠을까요?
"정책은 항상 아쉬움이 있죠. 우리 같은 칠쟁이들을 심사를 하는 학자들과 그 일을 진행하는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편파적인 모습을 보일 때 아쉽죠. 실력이 있는 사람들, 이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주변에 있는 친한 사람만 내세우니까 이건 아니다 하는 거죠. 우리의 문화가 바로 설려고 하면 학자들이 자리를 바로 잡아줘야 해요. 그걸 지금 학자들이 제대로 못하고 대게 편 가르기를 하고 있거든요. 그러다보면 우리의 전통 문화는 사라지게 되겠지요."
  
 왼쪽은 천상의 세게와 가을 별자리 일부 확대. 오른쪽은 천상의 세계와 봄 별자리.
 왼쪽은 천상의 세게와 가을 별자리 일부 확대. 오른쪽은 천상의 세계와 봄 별자리.
ⓒ 양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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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전시회를 다니고,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몇 천 년이나 전승되어온 우리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대학기관에서는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더군요. 중국의 4대 미술대학에 속한다는 사천미술대학은 제가 직접 가보기도 했는데 칠예가들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학부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학생들도 많아 그 층이 두텁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문화로서 전승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신 분들과 현장에서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들로 구성이 되어 학부에서 접근이 가능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죠. 지난 10월 다녀온 중국 무안의 호북성 미술관 전시도 나라에서 옻칠예술에 대해 엄청난 지원을 하니 성대한 전시가 가능한 거구요, 일본은 학생 한 명을 가르치기 위해 교수 다섯 명이 투입이 되어 가르치고 있는 걸 직접 봤어요. 그렇게 정부에서 지원을 하니 전통이 이어지는 거예요. 우리가 일본을 안 좋게 생각하더라도 배울 게 있으면 배워야죠.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바로 '맥(脈)'인거죠."

- 선생님 작품들의 뿌리를 이야기 한다면 어디서부터라고 생각을 해볼 수 있을까요?
"어느 나라든 공식적인 기록은 유물로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2천 5백년 전을 이야기합니다. 중국은 채회를 5천전 유물을 발굴해서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호남성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만 보더라도 5천 년 이상 전인 걸 알 수 있어요."

칼로 말아 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잠시 양 선생의 말이 끊어진 틈을 타 그의 작품들을 본다. 그의 작품 속에는 그의 시간이 오롯이 있다.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눈물이 있고, 배고픔이 있고, 외로움이 있다. 그가 붓으로 그은 선들이 칼로 새겨낸 듯하다.
 
 도솔천 지광국사 현묘탑비의 돌그림에 색을 입히다
 도솔천 지광국사 현묘탑비의 돌그림에 색을 입히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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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전시회에서는 어떤 작품이 제일 마음에 담아지십니까?
"지광국사 현묘탑의 돌그림에 색을 입힌 작품이 있어요. 그 작품은 꽤 오랜 시간 작업을 했고, 건칠기법으로 만든 판에다가 지광국사 현묘탑 돌그림을 옮겨 색을 입혔지요. 천 년 전에 그려졌던 그림위에 색을 창작해서 입힌 건데 칠로 색을 올렸으니 오랫동안 보존이 가능하겠죠."

- 50년이 넘게 한 길을 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사실 솔직히 이야기해서 다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아마 인사말에서 썼듯이 배고프고 많이 외로웠죠. 이거 하나를 해 내기 위해서 시간과 돈은 담을 쌓았죠. 그러니까 식구들이 엄청 고생했고, 그걸 보는 나는 맘이 엄청 아팠죠."

- 그럼에도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어오신 데에는 선생님만의 뭔가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일까요?
"아주 쉬워요. 할 게 없어서 한 거예요. 한 가지만 해오다 보면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어요. 고집이라고 그럴까. 아집이라고 그럴까. '기왕 잡은 거 해내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으로 한 거고, 꿈을 찾아서 떠난 길이었는데 이제야 꿈을 찾아 연꽃을 피운 느낌, 그게 제 삶을 살아온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칠, 연꽃을 피우다 / 옻칠 점토불상 조각 심종식
 칠, 연꽃을 피우다 / 옻칠 점토불상 조각 심종식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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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길은 멀다

"오늘 전시회에 외국인들도 왔는데 관람객이 마시던 커피잔을 전시물이 올려진 좌대에 올려놓은 걸 보고 나무라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예술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태도 등이 아직 우리가 많이 부족하구나 싶어 아쉬움이 많아요."

인터뷰를 마감하면서 양유전 선생이 남긴 말이다.

우리는 OECD 회원국인 것을 자랑하고, GDP가 높은 것으로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에게는 한글이 있고, K-POP이 있고, 박항서가 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며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누구 못지않게 가지고 있다.

이 말이 CF속 대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우리는 전통문화의 전승을 위해 바람직한 정책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로 전통문화를 전승하고 있는 분들이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또 양적인 경제 성작을 이룬 것은 맞는데 우리 또한 그에 맞는 질적인 성장도 이루어 졌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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