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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사회희망연대, 창원유족회 등 단체들은 7월 23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국회 통과를 못하고 있다"고 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 창원유족회 등 단체들은 7월 23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국회 통과를 못하고 있다"고 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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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 오후 국회 본관 446호 행정안전위원회 소회의실에서 과거사법(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회의실 복도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유족과 피해 생존자, 시민단체 활동가들 사이에서 잠시 환호성이 터졌다.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중단된 지 9년 만에 과거사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를 통과한 것이다. 과거사법은 이미 지난 6월 25일 안전행정위원회 법안 소위원회에서 처리되었지만, 이에 불복한 자유한국당이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시키면서 두 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로 처리되었다.

이후 10월 22일 과거사법은 행안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제는 법사위원회, 그리고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어 과반수의 찬성으로 개정된다. 그동안 여야 합의를 통해서 처리해달라고 요구했던 것은 과거사법이 제정될 당시에도 우여곡절 끝에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무수히 많은 변수와 난관이 남아 있다. 그 첫 관문인 법안 소위 통과를 두고 환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진 진실규명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뒤이은 분단과 전쟁 그리고 반공을 앞세운 군사독재정권 시대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는 길은 험난했다. 전후세대에 이르기까지 대일항쟁기의 친일청산문제, 권위주의통치시기의 국가폭력과 인권침해사건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국가기구를 통해 장기간 조사했지만 그 실체를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고, 가해자 처벌은 시도조차 하지도 못했다.

국가 조사 기구인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중단되면서 한국의 과거사 청산도 중단되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 만들어진 15개 과거사위원회는 이명박 정권의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통폐합 대상이었다. 폐지를 전제로 한 통폐합 시도가 유족들의 강한 반발에 부닥치자 결국 과거사위원회는 별도의 기간 연장 없이 기본 활동 기간만을 채운 채 대부분 폐지되었다. 이후 한국의 과거청산 운동은 다시 거리로 내몰렸고, 2010년 이후 시민사회단체와 유족, 피해자들은 줄곧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재개를 요구하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해마다 입법토론회, 과거청산 결의대회, 학술대회, 전시회 등을 개최하였고, 국회를 제 집처럼 드나들며 개정을 촉구해왔다. 유족들은 청와대 앞, 국회 앞에서 여전히 1인 시위를 하고 있고,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들은 국회 앞에서 700일 넘게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는 국가가 방치한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학살 매장지를 찾아 그동안 8차례에 걸쳐 유해발굴을 진행하기도 했다.

포괄적 과거청산을 표방하며 노무현 정부가 설립한 진실화해위원회는 항일독립운동, 해외동포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권위주의 통치 시기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요 조사대상으로 삼았다. 활동 기간 중 1만860건의 신청 사건과 직권조사 사건 15건, 그리고 분리·병합 처리한 사건 등을 합한 총 1만1175건을 처리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은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비롯해 인민군 점령기 이후 부역혐의 희생사건, 미군 폭격에 의한 희생사건 등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전쟁기 민간인 희생사건을 망라하여 조사하였다. 또한 권위주의 통치 시기 인권침해 사건은 재일동포, 납북어부 등 간첩조작 사건과 긴급조치 위반 사건, 강제해직, 노동권, 재산권 피해, 의문사 등 다양한 유형의 사건조사를 진행했다. 특히 과거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조작 의혹 사건의 경우, 진실규명 결정을 통해 재심을 권고하였고, 대다수의 사건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국가기구를 통한 조사는 많은 오류와 한계를 남겼다. 특히 의문사 사건의 경우에는 가해자를 특정하거나, 그 가해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일은 하지 못했다. 가해자 처벌을 입 밖에 내지도 못한 채, 사실관계조차도 특정하지 못한 가운데 간접증거와 정황 등으로 사건을 일부를 정리했을 뿐이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의 유해발굴조사의 경우 진실위원회 활동 당시 전국 168개 지점 중 13개소를 발굴하여 1600여 구를 수습하는데 그쳤다.

그 후 현재까지 시민사회단체 주도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을 구성하여 8차에 걸쳐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사법 개정을 통한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설립은 효과적인 조사활동을 담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유해발굴조사, 배보상특별법 추진, 과거사재단 설립 등의 후속 조치 이행에 계기가 될 것이다.

시민단체와 유족, 피해자들이 과거사법 개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전쟁 전후 국가공권력에 의해 집단학살 된 수많은 민간인과 군사독재시절 국가폭력에 의해 사망, 상해, 실종된 사건에 대해 국가 차원의 조사기구를 설립해서 진상규명해 달라는 것이다.

과거 진실위원회의 신청기간을 놓친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족의 경우, 전남과 충남지역의 전수조사결과 약 3000여명에 이르고, 인권침해 사건의 경우도 납북어부, 재일동포간첩조작사건 등 수천 건이 진실규명을 기다리고 있다. 아울러 위원회 활동 종료 후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서산개척단사건 등의 강제수용사건을 비롯한 국가폭력 사건이 추가적으로 드러나고 있어 국회의 과거사법 개정이 시급하다.

한국전쟁 당시, 부역혐의와 보도연맹에 연루되어 이름조차 갖지 못한 영아부터 힘없는 부녀자와 노인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한 희생자가 최소 50만 명이 넘는다. 전쟁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재판 없이 학살된 형무소 재소자도 수만 명에 이른다. 대부분 국군과 경찰에 의해 희생된 것이다.

또한 군사독재 정권기의 인권침해 사건들 대다수도 국가가 가해자이다. 정당성을 상실한 군사정권은 민주주의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정권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학생과 노동자, 양심적인 정치인들을 함부로 체포했다. 오랜 기간 불법감금한 상태로 고문과 가혹행위를 통하여 관제 간첩과 조직 사건을 만들어 감옥에 보내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국가가 위법한 공권력을 앞세워 국민의 생명권을 빼앗은 행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가정은 해체되고 그 가족들은 수십 년 동안 트라우마를 겪는 등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이와 같은 국가폭력, 국가범죄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2017년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그 세 번째가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청산"이다. 대통령과 정부, 국회는 이제라도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상처를 보듬고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안경호/ 4.9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입니다.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가 발행하는 38회 인권주일 강론자료집 <교회와인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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