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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햇볕정책이 실패한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외부상황 때문에 햇볕정책의 앞길이 막힌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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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최근에 펴낸 <희망을 향한 반걸음>은 아버지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오마주(hommage, 존경)로 가득 차 있다. '한걸음'도 아닌 '반걸음'이라고 붙인 책 제목부터가 그렇다. 이것은 "나는 민중의 반걸음만 앞서간다"라는 김 전 대통령의 말에서 따왔다.

그의 생애 첫 저서인 이 책은 김 전 대통령이 평생 연구해서 제시했던 '한반도 문제 해법과 미래비전'의 의미를 되짚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2018년과 2019년)에서 펼쳐진 남북-북미 간의 대화국면이 지난 2000년 김 전 대통령이 만들어냈던 6.15 남북공동선언과 햇볕정책에 기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중의 반걸음만 앞서가라"는 리더십이나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한반도 문제 해법 등의 측면에서 김 전 대통령은 그에게 '최고의 스승'이었다.

"햇볕정책, 실패한 게 아니라 외부 상황 때문에 길 막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김홍걸 상임의장은 지난 10일 민화협 사무실에서 진행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햇볕정책이 실패한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외부상황 때문에 햇볕정책의 앞길이 막힌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햇볕정책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반면 남북-북미 간의 대화 국면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미국 눈치를 볼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할 것은 해서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며 "현재 (남한이) 구경꾼 신세가 돼가고 있어서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가끔은 (미국과의) 상의 없이 질러보는 배짱도 필요하다"라는 따끔한 충고도 내질렀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보며 아직도 풀지 못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나중에 남북 경협이 본격적으로 가능해지는 시대가 왔을 때, 우리의 지분이나 입지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라는 이유에서다.

또한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했다. 그는 "핵 물질이 쌓이고 있는 영변부터 중단시키는 게 급선무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비핵화 해결의 상징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가역적 비핵화'를 말하려면 북한에 '불가역적 경제발전'이 시작되게 하면 된다"라고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한 미국의 상응조치를 촉구했다.

한편 '조국 사태'로 인한 국민여론 분열과 관련, 김 상임의장은 "정치권 내에서 정치적으로 협상해서 해결하지 않고 정치권이 스스로의 운명을 검찰과 법원의 칼날에 맡기는데, 그런 정치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라며 "'검찰공화국'은 정치인 스스로 만들어낸 부분이 많다"라고 날카롭게 꼬집었다.

내년 총선 출마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라고 짧게 답변했다. 

다음은 김홍걸 상임의장과 한 인터뷰 전문이다.
 
▲ 김홍걸 “문재인 정부, 미국과 상의 않고 질러보는 배짱도 필요해” 최근 <희망을 향한 반걸음> 책을 출간한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이 10일 민화협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 문제, 조국 사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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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에게 최고의 스승이었다"

- 한반도와 통일을 주제로 한 책을 낸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었나?
"3년 전에 정치입문 동기, 부모님 이야기 등을 위주로 한 책을 출간하려고 준비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대선으로 그 기회를 놓쳤다. 그러다 작년에 다시 책 작업을 시작했는데 마침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4.27 (판문점) 정상회담도 열려서 책의 포커스(초점)를 한반도 문제로 옮겼다."

- 아버지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하며 책을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가 워낙 많이 공부했고, 자기 철학이나 주관이 뚜렷했던 분이라 나에게는 최고의 스승이었다. 스승과 제자에 비유하자면 (저는) 스승(DJ)이 살아 계실 때 스승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고 새겨들어야 하는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낮잠이나 자는 학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야 그 가르침을 뒤늦게 깨닫고 돌아온 탕아로서 아버지가 남긴 정신적 유산을 하나하나 다시 되새겼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그분이 얼마나 한반도 평화와 안정, 동북아 전체의 공동번영을 깊이 연구했는지 알게 됐다.

우리나라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 어떤 외교적 노력을 해야 이 상황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을지, 그걸 아버지가 평생 고민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능력으로는 아버지보다 훨씬 못하지만 그분이 남겼던 유산은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힘쓰고 있고, 아버지의 정신과 철학을 계승·발전시킨다는 차원에서 일반 국민들이 편하게 보면서 한반도 미래에서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같이 한번 생각할 수 있도록 책을 썼다."

- '아버지의 유산'을 얘기했는데 아버지는 정치가뿐만 아니라 통일운동가로서도 큰 유산을 남겼다.
"아버지의 삶을 되새겨볼 때 본받아야 할 부분은 햇볕정책이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고 오랜 연구 끝에 나온 거라는 점이다. 그 기원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로 올라간다. 전쟁 당시 아버지는 해운업을 하던 사업가였는데 목포 경찰이나 해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목포에 진주한 인민군에게 잡혀가서 총살형을 당하기 일보 직전에 간신히 살아났다. 그런 걸 경험한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북쪽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고 극우적인 쪽으로 변해버렸는데 오히려 아버지는 그런 트라우마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시켰다. 동포에 대한 사랑, 평화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켜서 어떻게 하면 다시는 비극을 겪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해서 나온 게 햇볕정책이다.

일반인들은 햇볕정책을 그냥 북한만 생각하고 연구한 것으로 알거나 단순하게 북한에 물자를 퍼주면 북한이 우리 말을 잘 들을 거라고 해서 나온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전쟁을 겪고 나서 우리가 다시는 전쟁을 겪지 않으려면 일단 외세가 아닌 우리가 자주적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당장 군사력을 키워서 주변 강대국들을 압도할 수는 없으니까 그 대신 외교력을 키워 외교의 힘으로 주변 국가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 주변 국가들에 한반도 평화가 그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이렇게 주변 국가들로부터 얻은 지지를 바탕으로 우리 문제를 우리 힘으로 스스로 해결하고, 우리가 주도권을 잡는다.' 이것이 햇볕정책 기본정신이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데,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직후에 이미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의 안전을 보장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없을 거라 선언하자는 '4대국 안전보장론'을 내놓았다. 6.15 정상회담 때도 국내외 언론들이 청와대 측에 김대중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에 대한 철학을 정리한 책을 달라고 했는데 청와대에서 내놓은 자료에 기자들이 놀랐다. 왜냐하면 그 자료들이 다 30년, 40년이 된 자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 이룰 것이냐는 계획이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정리되어 있었다."

- 햇볕정책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나?
"그 외에는 답이 없다.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아니라면 북한을 압박시켜 굴복시키거나 지금 말한 햇볕정책을 쓰는 수밖에 없다. 북은 수십 년째 서방으로부터 압박당하지만 굴복 안 한다. 유일한 방법은 햇볕정책이다. 6.15 정상회담 이후 미국에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미 갈등이 심화돼 한반도 평화를 이룰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 그렇지 만약에 햇볕정책이 계속 유지됐다면 지금쯤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류하고 경협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왔을 수도 있다. 햇볕정책이 실패한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주변 상황, 외부 상황 때문에 햇볕정책의 앞길이 막힌 거다."

"북한을 압박할수록 북한 내의 강경파 입지만 강해져"

- 그런데 왜 책 제목이 '발걸음'도 '한걸음'도 아닌 '반걸음'인가?
"예전부터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고, 아버지도 늘 '정치를 하려면 국민들보다 반걸음만 앞서가라'고 했다. '국민들보다 너무 앞서가면 국민들이 따라올 수 없고, 국민들은 앞서가는데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에 있으면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국민들과 함께 가되 반걸음만 앞서서 이끌어 가라'는 것이다."

- 2011년(이명박 정부 시기)과 2018년(문재인 정부 시기) 총 세 차례 평양을 다녀왔는데, 어떤 차이를 느꼈나?
"처음 평양에 간 2011년에는 김정은 위원장을 조문하러 간 거라 잠깐 있다 와서 평양 시내를 제대로 둘러볼 기회가 없었다. 그때도 예상했던 대로 많이 낙후되어 있고 발전이 안돼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도시가 어두워 보였다. 두 번째 갔을 때에는 확실히 활기가 있고 도시의 색깔도 많이 변해 있었다. (도시의) 조경이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진 거를 느꼈다."

- 북한의 그 변화가 주는 의미가 컸을 것 같은데.
"여기저기서 듣기로는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시대에 북한의 핵 능력을 높이긴 했지만, 결국은 핵무기만 가지고 주민들을 먹여 살릴 수 없는 걸 잘 알고 있고,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장기집권하기 어렵고, 북한도 변화하고 있고 시대가 바뀌어서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체제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걸 잘 깨닫고 있다. 그래서 비핵화를 하기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북한 사회가 오랫동안 미국과의 갈등, 미국과의 투쟁을 기반으로 제국주의와 싸운 나라·민족이라고 정권의 정당성을 선전했던 체제이기 때문에 갑자기 미국에 항복하는 식으로 비핵화를 하면 체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존심을 지키면서 비핵화를 해서 경제발전으로 가야 하는 딜레마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있다.

내가 누차 이야기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내 강경파들에게 자신 있게 '내 식대로 하니까 이렇게 경제가 발전하고 부강한 나라가 됐다'고 말할 수 있도록, 김정은 위원장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김정은 위원장의 체면을 살려줘야 한다. 우리가 북한을 압박하면 할수록 북한 내의 강경파 입지만 강해진다. 김정은 위원장이 강경파의 반대를 누르고 비핵화를 수행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그것도 햇볕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 지난 2011년 처음 방북했을 때 김정은 위원장과 어머니인 이희호 여사의 별도 접촉은 없었나?
"만나긴 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 쪽에서) '상중이라 별도 접견을 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했다. 그 대신 다음날 아침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면담하고 돌아왔다."

- 당시 김정은 위원장에게 '김대중 대통령의 3남'이라고 소개했을 것 같은데, 김 위원장이 아버지와 관련해서 언급한 것은 없나?
"길게 대화를 나눌 틈이 없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조의를 표했고, 김 위원장이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한 정도였다."

- 보수진영에서는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직접 북한을 방문하고 관계자들을 만나 보니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어느 정도라고 보나? 책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 의지가 확실히 있다고 적었다.
"작년에 공식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입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비핵화'를 얘기했고, 그보다 이른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10만여 명의 평양 시민들 앞에서 비핵화 이야기를 연설했다. 이것은 북한 상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인데 남측의 대통령이 가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경제건설 위주로 가겠다는 걸 공식화했다.

북한에서는 수령의 말이 곧 법인데 그걸 수시로 뒤집는다는 건 스스로의 권위를 떨어뜨리니까 있을 수 없다. 결국 비핵화를 할 텐데 미국에 항복하는 식의 비핵화는 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미국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기 체제가 무너질 수 있는데 아무리 '비핵화한 후에 경제발전을 시켜주겠다' 등의 당근을 제시한들 체제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제안은 의미가 없다."

"북한, 정상국가로 대우받으려면 벼랑끝 외교를 지양해야"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최근 <희망을 향한 반걸음> 책을 출간한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이 10일 민화협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 문제, 조국 사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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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에서 총 네 차례의 남북정상회담·회동, 세 차례의 북미정상회담·회동, 한 차례의 남북미 판문점 회동 등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높였다고 보나?
"어떤 면에서는 하노이 협상 결렬 같은 부정적인 효과도 있었다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 정상 간의 탑다운 방식으로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정상외교를 했던 것인데 자기 뜻대로 잘 안되니까 지금은 초조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정은 위원장이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보다 좀 더 개방적이고, 바깥세상 물정도 더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김정일 위원장보다 낫지만 아무래도 여러 가지 권력투쟁을 하다가 50대에 들어서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김정일 위원장에 비해서 젊기 때문에 정치적인 노련함은 아직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 혹시 김정은 위원장이 지금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음... 그럴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과 직접 만나면 일이 쉽게 풀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으니까. 하노이에서도 봤지만 과거처럼 실무협상만 해서 단계적으로 올라가서 최고지도자가 서명하는 방식으로는 비핵화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실무진에서 협의가 충분히 안된 상태에서 최고 지도자가 만나기만 한다고 쉽게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두 가지 방식이 혼합될 수밖에 없는데 북에서는 아직도 탑다운 방식을 쓰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 것 같다."

- 북미가 아직도 한반도 비핵화 해법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북미 둘 다 오랜 기간 동안 신뢰하지 못하고 쌓인 불신이 문제다. 강대국이 항상 그렇지만 미국 측은 상대방에게 '먼저 내놓으면 우리가 나중에 상응조치를 해주겠다'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문제다. 또 원래 강대국과 약소국이 만났을 때 강대국은 체면과 자존심을 챙기려 하고, 약소국은 실리를 얻겠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상식인데, 북측은 실리보다는 자존심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니까 쉽게 양측이 접점을 찾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 시니컬한 사람들은 북한을 향해 "자존심이 밥 먹어주냐? 밥먹는 게 중요하지"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 말이 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 시대에 좀 더 실용적으로 바뀐 게 있지만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 정상국가로 대우받으려면 벼랑끝 외교를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북한 사람들의 자존심이 강한 게 꼭 나쁜 건 아니다. 우리가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제3세계 국가 중 가난한 나라를 보면, 나라 형편이 한심한 나라가 많다. 범죄도 많고, 자기네 자원을 해외에 헐값으로 팔아먹고, 경제가 외국에 종속되고, 자기들끼리 내전을 벌여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이런 나라들이 많은데 만약에 북한이 나라 형편이 어렵다고 해서 주민들이 자존심을 버렸다면 북한도 그런 나라들처럼 될 수 있고, 그랬으면 우리에게도 큰 부담이 됐을 수 있다. 평화롭게 교류하고 통일되는 시대가 온다고 가정했을 때 북한이 가난하지만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우리로서는 다행인 점도 있다."

- 김정은 위원장이 작년과 올해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중간중간에 단거리 발사체나 SLBM(잠수함발사 탄도유도탄)을 쏘아 올렸다. 이런 상황들 때문에 남한 내 '매파'의 입지가 넓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북한의 대응을 어떻게 보나?
"당연히 우리 남측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다. 북측의 계산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무력시위의 70%가 '대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북한 내부의 강경파들이나 주민들을 안심시키는 용도라는 것이다. 하노이에서 협상이 깨졌지만 북한의 안보가 위태로워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재래식 전략으로는 한미연합군사력을 당할 수 없으니까 핵 개발에 올인하자며 핵무장화를 진행한 것인데, '핵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으니까 핵이 없더라도 충분히 안보를 지켜갈 수 있고, 비핵화가 된다면 그때는 재래식 전력 감축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까 그때를 대비해서 (재래식 무기개발을) 강화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하다 미국과의 협상을 앞두고 SLBM을 발사한 데도 이유가 있다. 트럼프 정권이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나? 이것이 북한과의 협상을 깨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단거리 발사체는 미국의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으로도 들릴 수 있다. 그래서 북측에서 한 단계 수위를 높여서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현상유지나 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면 우리는 내년에 더 강한 수를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용도가 아니었나 싶다."

 "스웨덴 협상 결렬, 미국이 아직도 양보할 생각 없다는 것"

- 책에서 "트럼프라는 인물은 한반도 입장에서는 양날의 검으로 봐야 한다"라고 썼다.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해야 하는 비극적 딜레마가 분명히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미국 대통령과 달리 자기가 직접 나서서 북한 핵문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자신의 업적으로 만들어야겠다고 한 점은 긍정적이다. 하노이에서 봤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예측불허인 면이 있고, 미국 언론이나 주류사회에서 이단아로 취급되고 신뢰를 못받다 보니까 북한과의 협상, 한반도 비핵화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내더라도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패했다, 제대로 받은 것도 없이 북한에 너무 많이 내줬다' 등의 소리가 나올 수 있어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무리수를 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하노이에서 북한에 모든 걸 다 내놓으라는 식으로 했다. 그런 면에서 '양날의 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 풀어나가는 방식이 극과 극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는 상황이 됐는데 실제 탄핵이 이뤄지기는 어렵겠지만 정치적 타격은 입지 않겠나? 오바마 대통령 때는 하지 못했던 핵 실험 동결을 이뤄낸 걸 외교적 업적이라고 자랑했는데 만약에 북한이 내년부터 다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재기한다면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악재다. 그래서 그(탄핵 등) 상황이 어떻게든 (비핵화 협상에)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을 서둘러 해결해야겠다는 식으로 선회할 수도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북이 일단 핵과 미사일 실험은 안하니까 현상유지만 하자, 어차피 북과의 협상에서 웬만한 결과물을 내와서는 칭찬받기는 힘드니까 이대로 유지만 하자'는 식으로 가면 우리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다."

- 최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열렸는데, <중앙선데이>와 한 인터뷰를 보면 협상 전에 긍정적인 결과를 전망했던데.
"당장 성과가 나온다는 뜻이 아니고 한두 달 내에 좋은 합의가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북측 사람들이나 중국 측에서 들었다는 것이었다. 북한도 실제로 그런 것을 기대한 것 같다. '최선희-김계관-김명길'이 다 회담 전에 결과를 희망적으로 보는 것처럼 얘기했다. 북측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그들 말대로 새로운 셈법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미국이 가지고 나온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고, 하노이에서 당한 것도 있으니까 자기들이 원하는 거를 내놓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차갑게 내팽치고 돌아오자는 계산을 북한 지도부에서 처음부터 하고 있지 않았나 추측한다."

- 실무협상이 '결렬'(북한측 표현)됐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북측에서 요구한 부분을 미국이 아직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거다. 북이 여러 가지를 요구했는데, 그것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면 될지, 리스트 중 몇 가지를 초반에 내면 될지는 복잡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연락사무소 설치, 한미 합동훈련 중지 등 안전보장과 관련된 이야기가 포함됐을 것이고, 일부 제재 해제 등 민생과 관련된 문제도 포함됐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측도 내년 2월까지 북한과의 문제를 정리하지 못하면 그 다음에는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니까 이 문제에 전념할 수 없다. 지금 예기치 않았던 탄핵 변수까지 튀어나와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도 여유가 없다. 이미 금년 내에 결론이 나야 한다고 선언했다. 북한 노동자들이 중·러에 많이 파견돼 외화를 많이 벌어들이고 있는데 인력수출 부분도 제재 대상이다. 다만 그것을 그동안 2년 유예했는데 11월 21일인가, 그 유예가 끝나는 날이라고 들었다. 그때부터는 중러가 북한 노동자를 귀국시켜야 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외화벌이도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면 개성공단 이상의 타격이 북한에 갈 거다. 북한도 이런 부분 때문에 상당히 초조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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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