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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중항쟁 민주영령들. 5.18 광주민중항쟁 민주영령들.
▲ 5.18 광주민중항쟁 민주영령들. 5.18 광주민중항쟁 민주영령들.
ⓒ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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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할해서 통치'하는 수법은 독재자나 제국주의가 다르지 않다.

피지배층이 한 덩어리로 뭉쳐 있으면 다스리기가 쉽지 않으니, 한 쪽은 적대하거나 옹호하면서 자체분열 현상을 시도한다. 박정희가 이 수법을 활용했고 전두환이 따라 배웠다. 박정희는 18년 독재정권 기간 내내 특정지역 인사들을 중용하고 다른 지역 출신들을 배제하였다.
 
정부의 인사정책에서 '호남푸대접'과 '충청ㆍ강원 무대접론'이 나돌았다. 인사등용 만이 아니었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 등 각종 정부정책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집권기에 지역감정ㆍ지역갈등이 심화되고 남북분단에 이어 동서분단이라는 현대사의 모순구조가 배태되었다. 그리고 아픈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군산항 축항 기공식 장면, 왜놈들은 손에 흙하나 묻히지 않고, 축항공사, 간척지공사 등으로 기름진 쌀을 수탈해갔으면서도 조선 백성은 탄압을 받아가며 방앗간에서 나오는 쌀겨도 먹지 못해 굶어야 했습니다.
 군산항 축항 기공식 장면, 왜놈들은 손에 흙하나 묻히지 않고, 축항공사, 간척지공사 등으로 기름진 쌀을 수탈해갔으면서도 조선 백성은 탄압을 받아가며 방앗간에서 나오는 쌀겨도 먹지 못해 굶어야 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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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야가 기름지고 물산이 풍부한 호남지역은 조선왕조 이래 지배층의 수탈이 극심하여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고, 식민지 시기에는 일제가 쌀과 면화 등을 제 나라로 실어가기 위해 목포항과 군산항을 축소하고 이에 저항하는 각종 농민운동을 심하게 탄압했다.

이런 상황은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도 지속된다. 일제하 일본인 지주가 밀집되고 그것에 기생하는 기생적인 식민지 지주가 군생하고 있었던 호남지역에서 봉건적 모순관계는 첨예한 것으로 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이 지역을 항일농민운동의 중요한 거점으로 만들었다….
 
계급적 이해와 민족적 이해의 결합 속에 광범한 피억압계층으로 되는 호남의 민중은 반제민족해방, 자주, 반봉건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길에 섰다. 그리고 그 후 역사의 전개는 우리가 몸소 체험한 바다.

민중은 억압받았기에 민족민중적으로 보상받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상은커녕 도리어 낡은 체제에 저항하여 그것을 추구했기에 철저히 보복 받아야 했다. 여기에서도 역사에서의 좌절은 다시 주어진다. (주석 11)

 
 일제강점기 군산항. 조선인 부두 노무자들이 쌀을 선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군산항. 조선인 부두 노무자들이 쌀을 선적하고 있다.
ⓒ 군산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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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8도가 저들의 수탈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는 다르지 않았지만, 호남지역은 특히 심했다. '먹잇감'이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 정권이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시작된 저곡가 정책은 다시 한 번 호남인들의 생활의 빈곤과 사회적 낙후성을 불러오는 요인이 되었다. 정부의 저곡가 정책과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값싼 잉여농산물은 호남의 경제구조를 파탄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산업적 대체없이 농업에 전업하고 있는 호남지방의 경제적 몰락의 원인으로 된 것이다. 여기에 농공간의 불균형은 지역간 불균형으로 확대되고 이미 역사적으로 전승되면서 각기 생활과 경험에 의한 전승 속에 다양한 변종을 갖는 민중의식과의 결합 속에 여러 형태의 반영으로 되고 그 가운에 큰 것이 지역감정으로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자기논리에 대한 민중의 명확한 인식이 부재할 경우, 민중적인 내생적 요구는 왜곡된 외피를 스스로 갖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지역에 있어서 경제적 소외, 이것이 역사와의 결합과 정치적 상황 속에서 한 사회 안에서의 모순의 내용과 질을 규정하면서 내일의 항쟁의 역사적 계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주석 12)

 
계엄군이 시민들을 밧줄로 묶어 끌고 감-> 5.18광주민중항쟁 때 계엄군에게 곤봉으로 구타당하는 광주 시민-> 광주항쟁 기간 중에 치러진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있는 어린이->'미국은 광주학살 책임져라'. 미문화원에 나부낀 플래카드(1985.5.23) 계엄군이 시민들을 밧줄로 묶어 끌고 감-> 5.18광주민중항쟁 때 계엄군에게 곤봉으로 구타당하는 광주 시민-> 광주항쟁 기간 중에 치러진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있는 어린이->'미국은 광주학살 책임져라'. 미문화원에 나부낀 플래카드(1985.5.23)
▲ 계엄군이 시민들을 밧줄로 묶어 끌고 감-> 5.18광주민중항쟁 때 계엄군에게 곤봉으로 구타당하는 광주 시민-> 광주항쟁 기간 중에 치러진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있는 어린이->"미국은 광주학살 책임져라". 미문화원에 나부낀 플래카드(1985.5.23) 계엄군이 시민들을 밧줄로 묶어 끌고 감-> 5.18광주민중항쟁 때 계엄군에게 곤봉으로 구타당하는 광주 시민-> 광주항쟁 기간 중에 치러진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있는 어린이->"미국은 광주학살 책임져라". 미문화원에 나부낀 플래카드(198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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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ㆍ18항쟁은 역사적, 정치적, 경제 사회적 모순구조에서 일어난 봉기였다. 이런 사실(史實)에는 눈을 감은 채 '반역의 도시'인 양 눈을 흘기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여의도 망언' 분자들이 대표적이다. 침략군에 저항하는 의병(義兵)을 욕한 격이다.

전라도는 동학혁명의 발상지인 데다 토지가 넓어 소작인도 많았다. 일제는 동학혁명의 뿌리를 뽑고, 전라도의 격렬한 소작 쟁의를 억누르기 위해 전라도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수탈하고 핍박했다. 바로 이것이 전라도 사람들이 유랑의 길에 나서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는데, 이거야말로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처해 있던 식민 통치의 멍에를 전라도 사람들이 도맡다시피 해서 져준 게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나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여자 여럿이 어디 놀러가서 집단 강간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한 여자가 맹렬히 싸워준 결과 다른 여자들은 도망을 갈 수 있었다. 결국 그 싸운 여자만 강간을 당하게 되었는데, 나머지 여자들이 그 강간당한  여자에게 '더러운 년' 이라고 욕한다면? 실제로 그런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주석 13)


주석
11> 박현채, 앞의 책, 48~49쪽.
12> 앞의 책, 50쪽.
13> 강준만, 『전라도 죽이기』, 58쪽. 개마고원, 1995.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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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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