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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을 구경하려면 미리 공부를 조금 하고 가는 게 이해하기 쉽다. 방대한 규모의 박물관이어서 반나절 코스만으로는 소장된 예술품 전부를 이해하기란 시간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티칸과 관련한 전문서적이나 여행기 등을 사전에 읽고 가면 예술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교황을 선출하는 장소, 시스티나 성당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안고 시스티나 성당 앞에 들어선다.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 식스투스 4세를 위해 1483년 완공된 교황의 개인 예배당이다. 그리고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가 행해지는 장소이며, 교황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예배당으로도 사용된다.

여기서는 반드시 바티칸 박물관 보안관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그리고 항상 감시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조용히 해야 하며 시스티나 성당 저작권 문제, 기타 사유 등으로 사진촬영이 철저히 금지되는 곳이다. 스마트폰조차 손에 들고 다니기 민망할 정도이다. 간혹 살짝 찍으려는 사람의 행동을 사전 감지하면 보안관이 바로 눈총을 주며 "노 포토"라고 외친다.

투어가이드들이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가기 전부터 신신당부한다. 괜히 사진 찍다가 적발되어 망신당하지 말라고 한 번 더 부탁한다. 그래서 사진 때문에 여기가 왜 이리 민감한지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다.
  
 바티칸 박물관 피냐 정원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그림판 앞에서 작품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바티칸 박물관 피냐 정원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그림판 앞에서 작품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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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예배당으로 사용되는 시스티나 성당은 예배를 드릴 때 곳곳에 촛불을 켜둔다. 이로 인한 그을음이 생겨 천장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에 영향을 미쳐 그림의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고 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982년 일본의 한 방송사의 후원으로 복원작업을 시작하였다. 9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그을음 때와 후대의 덧칠을 모두 벗겨내고 본래의 아름다운 색채와 형태를 되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카메라 플래시 섬광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여기서는 철저히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서면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만날 수 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간곡한 요청을 미켈란젤로가 받아들여 완성한 대작이다. 제작 기간은 1508년부터 1512년까지 4년간이다. 천지창조는 물감을 섞어주는 조수의 도움만 조금 받았을 뿐 미켈란젤로가 거의 혼자서 그린 대작이라 더 경이롭다.
 
 바티칸 박물관 피냐 정원에 있는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그림판 모습
 바티칸 박물관 피냐 정원에 있는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그림판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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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라는 대작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사실 미켈란젤로는 한 번도 프레스코화를 그려 본 적이 없었다. 작업 도중에는 율리우스 2세가 경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교황과 미켈란젤로 사이에 마찰도 생겼다. 결국은 미켈란젤로가 작업을 중단하고 피렌체로 돌아가 버린다.

작업장을 찾아간 교황은 그때까지 그린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고 감탄한다. 교황은 직접 미켈란젤로가 있는 피렌체로 찾아가 설득과 회유를 한다. 이를 받아들인 미켈란젤로가 다시 돌아와 그림 작업을 이어 나갔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람들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다. 그리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에 물감을 칠해 나가는 고된 작업을 이어 나갔다. 이로 인해 물감이 눈에 들어가 눈에 이상도 생겼다. 장시간 작업으로 인해 목이 뒤틀리는 등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혼자서 이 대작을 4년 만에 완성하였다.

1512년 10월 완성돼 같은 해 만성절인 11월 1일 제막식을 열었다. 미켈란젤로가 완성한 '천지창조' 작품을 보고 많은 이들이 감탄을 한다. 처음 그림을 보면 그 웅장함에 먼저 놀란다. 가로 13m, 세로 41m, 높이 20m라는 거대한 공간을 채우고 있는 천장화의 크기뿐만이 아니다.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천장화의 내용과 무려 343명에 달하는 인간 군상과 역동적인 인물 표현을 완벽하게 그려 넣어 더 이목을 집중시킨다.

천장화는 빛과 어둠을 처음 창조했던 성서의 이야기와는 반대로 그렸다. 입구 쪽에서부터 그려졌는데 완성까지는 4단계를 거쳤다. 천장의 중앙에는 '천지창조'를 그렸다. '천지창조' 부분은 다시 3가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 천지창조 ▲ 인간의 타락 ▲ 노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천지창조 주변으로는 12인의 무녀와 성서의 예언자를 그렸다. 그리고 뾰족한 삼각형 형태와 잘린 반원형 벽면에는 예수의 조상을, 천장의 네 모퉁이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과 관련된 장면들이 담겨 있다.

또 하나의 걸작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미켈란젤로의 또 하나의 걸작 '최후의 심판'도 감상할 수 있다. '최후의 심판'은 제단 앞 중앙 벽면에 있다. 제작 기간은 1534년부터 1541년까지. 무려 7년이나 걸렸다. 미켈란젤로는 가로 12m, 세로 14m의 거대한 벽면을 ▲ 천상계 ▲ 튜바 부는 천사들 ▲ 죽은 자들의 부활 ▲ 승천하는 자들 ▲ 지옥으로 끌려가는 자들로 나누어 그렸다.
 
 바티칸 박물관 피냐 정원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그림판 모습
 바티칸 박물관 피냐 정원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그림판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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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대한 인간의 갈망과 지옥에 대한 공포를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다. 벽면에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동작을 한 총 391명의 인물상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천재적인 상상력이 빚어낸 또 하나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클레멘스 7세가 미켈란젤로에게 '최후의 심판'을 주문한 이유를 한 번 살펴보자. 먼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롤 5세와 그 용병들이 로마의 점령과 약탈로 인해 앞으로 이들이 치러야 할 고통의 순간들을 경고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진정한 종교인 가톨릭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종교개혁 추종자들의 죗값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반종교개혁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1541년 처음 공개될 당시 '최후의 심판' 그림 속 인물들은 전부 나체였다. 그림을 본 교회 권력자와 시민들이 나체가 음란스럽고 불경하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래서 교황 비오 4세가 나체의 부끄러운 부분을 모두 덧칠로 가리라고 명령한다.

미켈란젤로가 말을 듣지 않자 그의 제자인 다니엘레 다 볼테라(Daniele da Volterra)에게 임무를 맡겼으나 작업이 지지부진하자 나중에는 무명화가들을 동원하여 마무리했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은 덧칠하기 전 원작이 없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제자 마르첼로 베누스티(Marcello Venusti)가 덧칠하기 전의 작품을 모사한 것이 이탈리아 나폴리 카포디몬테 국립 미술관에 소장돼 있어 참고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시스티나 성당 양쪽 벽면 벽화
 

시스티나 성당의 양쪽 벽면에는 12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제단을 바라보고 왼쪽 벽면에는 '모세의 생애'를 담은 6편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벽면에는 '예수의 생애'를 담은 6편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들은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화가였던 보티첼리, 미켈란젤로의 스승 기를란다요, 코시모 로셀리, 라파엘로의 스승 페루지노 등의 작품들이다.

한마디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바티칸 박물관의 대미를 장식하는 하이라이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문헌]

정여울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김영숙 <바티칸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
김지선 <바티칸 박물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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