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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북한에서 남하한 이들이 38 선 남쪽 문산리 부근에서 검문검색을 받고 있다(1947.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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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
3회는 푸른 눈의 이방인에게 비친 해방 후 미군정 시기의 모습들로 꾸며 보았다.
하루 종일 정거장
흐지부지 우체국
먹자판 재판소
깜깜 절벽 전기회사
종이쪽지 세무서
가져오라 면사무소
텅텅 비다 배급소
고드름 장작 때고 냉수 먹세
- 강준만 지음 <한국현대사 산책> 1940년대 1권 182쪽
위의 내용은 해방 직후 무능한 미군정과 부패상, 사회상을 풍자한 유행어라고 한다. 그 시절 실업자가 넘쳐나는 가운데 매일 수많은 피난민들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와 경제가 더욱 어려워졌다. 1945년에서 1949년 사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인구가 120만 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해외동포도 속속 귀환했다. 재일동포 150만 명, 재만(만주)동포 60만 명, 중국 기타 지역 10만 명 가량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해방 당시 남한 인구는 1006만여 명이었는데, 1949년에는 2017만여 명이었다고 한다.
인구폭발도 문제였지만 민생을 괴롭힌 것은 살인적인 물가폭등이었다. 1945년 8월부터 1946년 12월 사이 소매물가는 10배로 올랐으며, 도매물가는 28배나 뛰었다고 한다.
이밖에 미군 주둔과 함께 교회가 새로 지어지고, 기독교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전에 없던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필자의 기억력의 한계와 매 기사 주제를 살리고자 하는 부득이한 선택으로 일부 사진은 이미 연재된 것과 겹칠 수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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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해방 후 교회가 우후죽손처럼 늘어났다. 사람들이 교회의 첨탑을 세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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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인천, 중국에서 귀국선을 타고 돌아온 동포들(1948. 3.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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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장에 가는 한국인들, 여인들은 짐을 주로 머리에 이고 다닌다(1948.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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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제주도의 여인들, 제주도는 바람이 센 고장으로 지붕을 굵은 밧줄로 여몄다(1948. 5.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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