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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북미 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북미 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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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연락사무소 설치가 북미의 새로운 셈법이 될 수 있을까?

6월 30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깜짝 회동'을 했다. 이날 만남 후 미국으로 돌아가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전용기 안,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가 비보도(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북미 연락사무소를 언급했다.

비건 대표는 "우리(미국)가 원하는 것은 대량파괴무기(WMD)의 완전한 동결"이라며, 이를 수용할 경우 북한에 "인도적 지원, 인적 대화 확대, 상대국 수도에 외교 채널 설치"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외교 채널을 설치한다는 건 북미 연락사무소(Liaison office) 개설로 해석할 수 있다.

북미 연락사무소, 미국의 대담한 제안?

이날 비건 대표는 제재 해제는 어렵다고 못 박으면서도 인도적 지원이나 연락사무소 설치 등에 대해서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전략연구실장은 "문재인 대통령도 비핵화를 위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미국도 대담한 접근 방식을 보여준 셈"이라고 짚었다.

미국이 연락사무소를 북미 비핵화 협상의 '협상 동력'으로 삼으려고 제시했다는 의견도 있다. 신종호 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연락사무소는 보통 양국 관계가 상당히 진전되고 나서 설치된다.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계속 유지하려는 차원에서 이를 제시했을 수 있다"라고 해석했다.

다만, 미국이 언급한 연락사무소가 비핵화의 어느 과정에서 진행될지는 예단하기 힘들다. 미국에서 선제적 양보라는 입장에서 이를 언급한 것인지 '영변(핵시설 폐기) 플러스알파' 이후에 연락사무소 설치가 가능하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이에 따라 북의 반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미국의 의도를 아직 알 수 없다. 영변 플러스알파 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한다는 거면, 북한으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영변 플러스알파 이후에 설치한다는 조건이라면 북한에서 크게 반길만한 상응조치는 아니다"라고 풀이했다. 북의 비핵화 조치는 '되돌릴 수 없는 카드'인 반면, 연락사무소는 북미 관계가 틀어지면 언제든지 문 닫을 수 있는 조치라는 것.

실제로 리비아의 경우 미국과 외교 관계를 이어가다 단절된 후 24년 만에 교류를 재개했다. 양국은 1950년대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공관을 두며 교류했지만, 1981년 지중해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 이후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리비아는 미국과 핵 협상을 거친 후에야 연락사무소를 재개할 수 있었다. 양국의 수도에 연락사무소가 설치된 건 비핵화 과정의 상응 조치였다. 2004년 6월 미국은 트리폴리에 연락사무소를, 리비아는 7월에 워싱턴 D.C.에 연락사무소를 개소했다.

북-미 25년 전, 연락사무소 위치까지 논의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2019.7.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2019.7.1
ⓒ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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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북미 연락사무소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북미는 25년 전, 양국에 연락사무소 설치를 고민한 적이 있다. 어디에 설치할지 위치까지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1994년 10월, 북미는 제네바 합의문에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라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 북한은 워싱턴 D.C.에서 연락사무소 건물을 정해 가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평양에 있는 독일 대사관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려 했다.

연락사무소 합의 이행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1994년 12월이다. 당시 미군 헬기가 비무장지대에(DMZ)를 넘어갔다 격추된 일이 벌어졌다. 이후 연락사무소 논의는 부침을 겪으며 간간이 이어졌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 1998년, 북한이 대포동미사일(광명성 1호)을 발사하며 연락사무소 논의는 자취를 감췄다.

연락사무소가 다시 언급된 건 2018년 6월이다. 북미는 싱가포르 공동성명 1항에서 '북미 관계 정상화'를 명시했다. 이는 북미 간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 선언(불가침 선언) 등을 포함한 내용이다.

이후 미국이 비핵화의 상응 조치로 북미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미국 내 북한 외교관들의 활동 반경을 넓히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없었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고 나서는 연락사무소와 관련한 이야기는 더 나오지 않았다.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연락사무소가 매번 등장하는 건 '상징성' 때문이다. 연락사무소는 자국민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하는 기관이다. 비자발급, 무역, 투자 촉진 등의 업무도 할 수 있다. 적대국이었던 나라와 나라 사이의 냉기를 녹이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게다가 연락사무소는 양쪽이 합의하면 상대적으로 복잡한 절차나 큰 어려움 없이 실행할 수 있는 사안이다. 정상적인 국교 수립을 하지 않은 나라도 국가 간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연락사무소를 설치할 수 있다.

일단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면, 이곳은 외교 공관으로서 양국을 잇는 역할을 하게 된다. 외교 관계가 없거나 단절된 두 나라가 연락사무소를 설치한다는 건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국제법에 따른 승인이 아니라 사실상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셈이다.

미국, 중국과 베트남도 '연락사무소'부터 시작
 
시진핑 주석 맞이하는 김정은 위원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 평양 순안공항(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맞이하고 있다
▲ 시진핑 주석 맞이하는 김정은 위원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20일 평양 순안공항(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맞이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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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미국과 베트남은 이 전례를 따랐다. 미중은 밀고 당기는 시간을 오래 거쳤다. 처음에는 중국이 나섰다. 1950년대 초 중국은 적극적인 태도로 대미 협상을 제안했다. 이후 미중은 대사급 접촉을 여러 번 했지만, 이것이 두 나라 사이에 뚜렷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1972년,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중국 마오쩌둥 국가주석이 양국의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며 손을 맞잡았다. 그 사이 고위급 비밀회담이 열렸고 미국 국민의 중국방문이 허용됐다.

1973년 2월 양국은 서로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고 발표했다. 3개월 후 연락사무소가 설치됐다. 1978년 12월 16일, 지미 카터 정부와 중국은 국교 정상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듬해 1월1일을 기해 대사급 공식 외교 관계 수립을 천명한 것. 6년 만에 양국은 '공식적으로도' 서로의 존재를 인정했다.

미국과 베트남은 1995년 1월, 양국의 수도에 연락사무소를 조기 개설하기로 합의했다. 사실 미국이 베트남과 관계 정상화를 모색한 건 1977년부터다. 카터 행정부(1977년)가 베트남 여행제한을 해제하기도 했고, 레이건 행정부(1981년)가 출범하며 관계 정상화를 위한 로드맵을 작성하기도 했다.

미국과 베트남 사이에서 고위급 관계 정상화 회담이 개최됐고 미국은 베트남과 관련한 일부 제재를 완화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양국은 수교의 발판이 되는 연락사무소 설치에 다다랐다.

다만, 북한과 미국의 연락사무소가 중국과 베트남의 과정을 그대로 밟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밝힌 '새로운 셈법'의 시간은 올 연말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준비하며 국내 정치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

제네바 합의에서 북미 연락사무소를 언급한지 25년이 지났다. 이번에는 합의를 넘어 설치까지 기대할 수 있을까? 연락사무소가 워싱턴과 평양, 평양과 워싱턴을 이으며 북미의 소통 창구가 될 수 있을까?

북미 비핵화 협상의 물꼬로 연락사무소가 떠오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남북연락 대화 기능 방안- 외국사례의 시사점을 중심으로 (충남대 평화안보연구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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