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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이나 객관성을 핑계 삼아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책임지기 싫어하고 욕먹기 싫어하는 겁쟁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소위 지식인 중에 그런 사람이 꽤 있다. 많이 배우고 깊이 연구했으니 다양한 입장과 상이한 관점들을 모두 아우르는 균형 감각을 가졌다는 데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 균형 감각은 틀에 박힌 기계적 중립과 별 차이 없이 느껴질 때가 많다. 혹은 우리 사회의 여러 계층과 세대에게 모두 공감을 얻으려는 욕심처럼 보일 때도 있다.
 
 '시민을 위한 조선사' 표지
 "시민을 위한 조선사" 표지
ⓒ 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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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을 위한 조선사>의 저자 임자헌은 '미움 받을 용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듣게 되는 저자의 목소리에 애매함이란 없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객관적이지만 그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을 정확히 짚어줄 때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다.
 
"어떤 조직도 자유로이 비판할 수 있는 언로가 막힌 상태로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나이'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소신껏 의견을 펼칠 수 있게 해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 조선시대보다도 경직된 오늘날의 사회분위기는 분명 개선해야 한다." 
 
이 책은 조선의 역사와 오늘의 상황을 교차시키며 '지금-여기'를 말하고 싶다는 의도를 밝힌다. 그 의도는 다시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 우선은 과거를 통해 오늘을 보자는 것이고 그 다음은 오늘을 제대로 살기 위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의식을 벗어나자는 것이다.

과거를 통해 오늘을 보자는 것은 대부분의 역사서들이 지향하는 바이지만, 이 책이 차별화 되는 지점은 역사의 교훈이 정확히 '나'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지도층도 공무원도 불특정 다수의 국민도 아닌,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고 있는 바로 '나'를 불러 세운다. 그리고 나에게 '당신이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버려야 할 조선의 방식과 취해야 할 오늘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보자고 붙든다.

책의 전체 구성은 10개의 키워드를 따라간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 만들어낸 기본 가치들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 중에 주요한 쟁점을 뽑아냈다. 그리고 각각의 쟁점에 조선의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건을 병치시켜 과거와 오늘 사이의 공통점과 간극을 이야기한다.

정확히 알아야 깔끔히 잊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면 마치 내 옆에 족집게 과외 선생이 바짝 붙어 앉아 있는 느낌이다. 부릅뜬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또박또박 가르치는 목소리가 귀에 쟁쟁한 듯하다.

"바로 너! 너한테 하는 말이야!"

그리고 의심 같은 건 허락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단호하게 말한다.
 
"단언하건대 선한 독재는 없다. (…) 타락하지 않은 선한 사람 한 명이 정치를 잘 이끈다 해도 그에게 의지한 국민들이 스스로 일어서는 법 자체를 잃어버리면 그것이 곧 그 선한 이의 죄가 된다. (…) 세상일은 선의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이는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것 같은 우리 사회를 한탄하며 세종대왕 같은 어진 왕을 그리워하는 우리의 낡은 의식을 질타하는 목소리다. 지금 우리나라는 왕정국가가 아니라 바로 내가 나라의 주인인 민주국가라는 점을 저자는 쉬지 않고 역설한다.

우리 사회가 잘못 되어 있다면, 바른 길로 가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바로 '나'의 책임이며 그것을 올바르게 잡아 세울 사람도 '나'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조선의 역사에서 안타까운 배움을 얻었다면 이제 그 배움을 실천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이 왕정국가인 조선을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이 조선의 역사를 쟁점별로 상당히 자세하게 서술해 놓은 이유는 오늘을 살면서도 조선시대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 우리를 위해서다. 정확히 알아야만 깔끔하게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망각이 아니라 극복을 위해서다. 무턱대고 조선 시대를 그리워하거나 통틀어 폄하하는 태도를 저자는 경계한다.

TV앞에 앉아 뉴스를 보면서 목에 핏대를 세워 비난을 하든 박수를 치며 감탄을 하든 세상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각성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직설적으로 분명하게 말한다. 다르게 해석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다만 그 강한 어조가 남기는 여운은 있다. 절실하기에 여려지는 마음이다. 이 책을 다 읽고도 '에이, 나 하나가 뭘 할 수 있겠어?'라고 고개를 돌려 버릴까봐, '그걸 누가 모르나? 안 되니까 그렇지'하고 냉소할까봐 걱정하는 마음이 보인다. 당신 밖에 없다고, 내 손을 꼭 붙들고 이렇게 당부한다.
 
"자기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우리는 사회의 힘없는 개인, 나약한 소모품이 아니다. 주인이고 미래다. 주인다운 주인으로 우리, 함께 서자."

10가지 키워드로 읽는 시민을 위한 조선사

임자헌 (지은이), 메디치미디어(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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