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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0일 출간된 책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 : 해외 입양의 숨겨진 역사>는 미국 보스턴 칼리지 역사학과의 아리사 오 교수가 지난 2015년 출간한 책 'TO SAVE THE CHILDREN OF KOREA : the cold war origins of international adoption'의 한국어 번역판이다.

이 책의 한국어판을 출판한 '뿌리의집' 대표 김도현 목사는 이 책이 "한국 사회가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작은 손거울처럼 사용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그 심정을 밝혔다. 김 목사는 이 책은 해외입양을 통해서 한국에서는 보수성이 미국에서는 진보성으로 탈바꿈 하는 아이러니한 과정을 보여준다고 표현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리사 오교수는 해외입양이 미국과 한국 두 국가에 다 이득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즉 미국은 국내의 흑백 인종차별문제를 국제적으로 희석시키기 위해 백인들은 해외에서 황인종인 특히 한국아동을 대대적으로 해외입양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대외적으로 미국은 인종차별국가가 아니다라고 선포할 때 한국아동을 국제 입양한 것이 그 좋은 예로 인용되었다고 한다.

반면, 오 교수는 한국에서 해외입양은 '양공주'에게서 태어난 혼혈아동을 제거하는 길이었고 이것을 한국인은 '단일민족 순수혈통'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빈곤층에 대한 사회복지 비용을 안 쓰고 수출주도 산업화를 이루는데 있어서 미국에서 달러를 받는 '아동수출'은 한국경제발전에 단단한 효자노릇을 했다고 본다.

참 추악하고 부끄러운 우리와 미국의 자화상이지만 이 책의 핵심적 주제는 해외입양을 통해서 본 한국과 미국의 현대사다. 이 책을 통해서 기자가 새로 배운 것은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해외입양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존재한 적이 없었고 그래서 해외입양의 역사는 겨우 약 70년 남짓이라는 것이었다.

아리사 오 교수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2세이지만, 한국어는 좀 서투르고 영어가 모국어인 학자다. 그래서 기자는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12일까지 오 교수와 영어로 이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 정리하여 아래에 싣는다.
 
 저자 아리사 오 교수
 저자 아리사 오 교수
ⓒ Henry V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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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외입양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내가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보내진 해외입양인들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나는 미국 이민사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때 지도교수님이 어떻게 해서 미국인들이 한국아동들을 국제입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연구해 보라고 제안하셨다. 그래서 연구를 하다 이 분야에 대해 기존연구가 거의 없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결국 이 주제로 박사논문까지 쓰게 되었다."

- 70여 년 전 한국에서 해외입양이 왜, 어떻게 시작되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한국 해외입양은 한국전쟁 전후 주한미군과 한국여성 사이에서 탄생한 혼혈아동을 한국에서 제거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한국인과 미국인들은 재빠르게 혼혈아동들이 한국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그 이유로는 한국친모를 '양공주'로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고, 혼혈아동을 한국사회에서 잡종 취급했으며, 아버지가 한국인이 아니라 혼혈아는 한국 국적을 갖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혼혈아동을 미국으로 보내는 임시방편으로 해외입양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 해리 홀트씨가 해외입양과 관련하여 한국과 미국에서 한 공헌과 문제점은 무엇이었나.
"해리 홀트는 누구보다도 한국아동을 미국으로 많이 해외입양 보냈다.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으로 한국에 전쟁고아들이 많다는 것과 미군과 한국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동들이 한국사회에서는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미국인들은 이런 한국아동을 국제입양하고 싶어 했는데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을 몰랐다. 해리 홀트는 미국 난민법의 허점을 이용해 한국아동을 미국으로 큰 규모로, 아예 전세기를 동원해, 해외입양 보냈다.

그 과정에서 홀트는 입양을 원하는 미국의 잠재적 입양부모들이 상하원 국회의원들에게 해외입양을 쉽게 하기 위해 미국이민법 수정을 촉구하는 대대적 서한보내기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1961년 미국이민법은 해외입양이 쉽게 되도록 수정된다. 홀트는 또 한국 친모들이 아이들을 부유한 미국으로 해외입양 보내는 것이 빈곤한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아이들의 장래에 훨씬 좋다는 점을 성공적으로 각인시켰다."

한국은 미국으로 해외입양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낸 나라
 
 한국어판 책표지
 한국어판 책표지
ⓒ 뿌리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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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쟁 후부터 지금까지 약 20만 명의 아동들이 해외입양 보내졌다. 그 중 11만 명 이상이 미국으로 입양 보내졌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1995년까지 한국은 미국으로 해외입양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였다. 그래서 미국에서 만나는 해외입양인들의 대다수가 한국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196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에서 해외입양하면 곧 미국으로의 입양이었다. 미국도 이에 맞춰 제도적, 법적, 사회적으로 해외입양아동을 다량으로 받을 수 있는 국가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다른 국가들은 해외입양아동을 받을 여러 준비가 아직 안 되었던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신식민지적인 관계 또한 해외입양을 촉진시켰다. 한국전쟁 후 한국은 미국을 '보호자'나 '큰형'처럼 여겼고 그래서 한국아동들이 미국에서 (한국 부모가 옆에 없어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 그래서 해외입양이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 다 이득이 된 것인가?
"그렇다. 2차 세계대전 후 냉전 하에서 해외입양은 미국의 국가프로젝트와도 일치해서 정부에서는 장려하고 시민들 사이에서 인기도 높았다. 냉전시기 미국은 흑백 인종차별 문제로 동구권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망신을 사고 있었다. 당시 소련은 미국의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폭력이나 린치를 가하는 문제나 인종차별 이슈를 예로 들며 비백인 국가들인 개발도상국들에게 접근하기가 쉬웠다.

그래서 미국은 국내의 흑백 인종차별문제를 국제적으로 희석시키기 위해 백인들은 해외에서 황인종인 특히 한국아동을 대대적으로 해외입양한 것이다. 그러면서 대외적으로 미국은 인종차별국가가 아니다라고 선포할 때 한국아동을 국제 입양한 것이 그 좋은 예로 인용되었다.

미국의 해외입양부모가 압도적으로 백인인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970년 대 부터 미국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고 페미니즘이 번성함에 따라 싱글맘도 증가하게 되었다. 그 말은 미국의 백인부모들이 입양할 백인 아동들이 부족해졌다는 것이다. 미국의 입양기관들은 해외입양을 위해 중상층 이상의 소득이 있는 입양예비부모를 그 자격조건으로 요구했는데 그런 자격을 갖춘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백인들이었다.

미국 백인들은 복잡한 이유로 국내의 흑인아동을 입양하기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한국아동이 좋은 해외입양 대상이 된 것이다. 한국아동은 물론 백인이 아니었지만 흑인도 아니었다. 꿩 대신 닭이라 할까. 하여간 한국이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에 어떤 미국의 백인입양부모들은 해외입양을 통해 가난한 나라의 아동을 '구해준다'는 자부심도 가졌다.

한국정부 입장에서도 아동을 미국으로 해외입양 보내는 것이 여러 모로 이득이 되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해외입양은 '양공주'에게서 태어난 혼혈아동을 제거하는 길이었고 이것이 한국인의 '단일민족 순수혈통'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1960-70년 대 박정희 정권은 물론이고 1980년 대 전두환 정권은 빈곤층에 대한 사회복지 비용을 안 쓰고 수출주도 산업화를 이루는데 있어서 미국에서 달러를 받고 하는 '아동수출'은 한국경제발전에 단단한 효자노릇을 했다.

그럼으로써 한국정부는 빈곤층 아동, 장애아동 그리고 싱글맘의 아동을 제도적으로 한국에서 제거할 수 있었다. 이 말은 한국정부가 사회복지비용으로 세금을 쓸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다. 한국이 지금도 막대한 국가경제규모에 비해 사회복지가 턱없이 빈약한 것은 그런 역사적 뿌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정부와 사회는 양성평등을 위해 더 많은 노력과 투자 필요

 
 오 교수의 영어판 책표지
 오 교수의 영어판 책표지
ⓒ 아리사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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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회가 어떻게 하면 성차별과 싱글맘과 그 자녀들에 대한 차별, 편견 그리고 낙인을 없앨 수 있을까.
"한국은 미국처럼 가부장적인 사회다. 사람들의 태도도 사회구조가 변하면 변할 것이다. 한국정부와 사회는 양성평등을 위해 더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싱글맘과 그 아동도 합법적 가정이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법적으로 인정, 보장해 줘야 한다.

싱글맘이 아동을 키울 수 있도록 정부는 사회경제적 지원을 해줘야 하고 싱글맘과 그 아동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도 필요하다. 싱글맘의 아동을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압박 그리고 법적 비보호 정책으로 엄마 품에서 빼앗아 해외입양 보내는 야만적 행위는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동시에 초등학교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 일본에서는 혼혈아동을 둔 싱글맘이 정부와 사회로부터 한국보다 훨씬 더 후한 경제적 지원과 너그러운 사회적 지지를 받는다. 다 같은 유교적 아시아 국가인데 왜 일본이 한국과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하나?
"사실 그렇다. 아주 좋은 질문인데 사실 나도 그 이유가 궁금하다. 나보다는 일본학을 연구한 학자가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 2차 대전 후 일본과 독일도 미군과의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동을 미국에 해외입양 보냈다. 한국은 한국전쟁 후에 일본과 독일의 전철을 밟았다. 그런데도 일본과 독일에 비해 유독 한국아동만이 압도적으로 다수가 미국으로 해외입양 보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과 독일정부는 이승만 정권처럼 '결사적'으로 자국의 아동을 해외입양 보내지 않았다. 이승만의 부인이 외국여성인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일본과 독일에는 한국의 해리 홀트처럼 제도적으로 해외입양을 주도하는 이가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다수 한국아동을 미국으로 빠르고 싸게 해외입양 보내기 위해 홀트는 미국 국회에 로비를 해 아예 이민법을 수정하게 만들었다."

한국, 세계 최초로 아동을 체계적으로 해외입양 보내는 제도를 만들어 낸 나라
 
 1950년대 한국에서 미국으로 해외입양 보내지는 아동들
 1950년대 한국에서 미국으로 해외입양 보내지는 아동들
ⓒ 미국국립문서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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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한국의 해외입양 방법이 다른 개발도상 국가들에게 '기준'이나 '역할모델'이 되기 시작했나?
"한국은 세계 최초로 자국의 아동을 체계적으로 해외입양 보내는 제도를 만들어 낸 나라다. 다른 개발도상 국가들도 해외입양을 보내게 되면서 또는 미국이 한국 외에 다른 나라의 아동을 국제입양하기를 원하면서 한국이 사용한 해외입양제도가 해외입양의 '모형'이 되기 시작했다."

- 이 책을 쓰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경험은 무엇이었나?
"이 책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자신의 자녀양육을 포기하고 해외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던 친모들의 절박한 심정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막대한 해외입양관련 자료나 논문 등 여러 기록을 다 뒤져봐도 친모의 증언은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아주 작은 자료에서만, 그것도 친모의 직접 증언이 아니라, 입양기관이나 입양부모, 사회복지사 혹은 언론인의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친모의 증언을 접할 수 있었다. 즉 당사자인 친모가 입양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배제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 전두환 정권기의 전성기인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국에서 태어난 100명의 아동 당 1.3명이 해외입양 보내졌다. 해외입양은 빈곤한 아동을 부국에서 구출하는 것 이었나 아니면 체계적인 대규모 아동납치였나?
"동기와는 상관없이, 미국입양부모는 아동을 얻기 위해 입양시장에 뛰어들어야 했다. 이것은 사랑과 상업의 충돌로 해외입양 심장부에 불편한 긴장을 조성했다. 미국인들도 이제는 해외 입양이 부모 없는 아동에게 가정을 찾아주는 제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우리가 좋아하는 거짓말'을 계속한다. 구출이 필요한 전 세계 아동 수백만 명에 관한, 이른바 '세계 고아 위기'에 관한 거짓말이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고아로 불리는 아동 대다수가 실제로는 고아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한국 친부모들은 자녀를 사회적 고아로 만들었다. 그래야 입양 보낼 수 있었으니까. 사회복지사들과 입양기관들도 이 실제로는 부모가 있는 아동들을 고아로 만들었다. 그래야 입양 절차를 밟을 수 있으니까. 한국정부도 이 아동들을 고아로 분류했다. 그래야 아동이 친부모와 함께 살 수 있도록 사회복지와 그 밖의 자원을 지원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고, 해외입양을 고아 문제 탓으로 돌릴 수 있으니까. 미국 양부모들도 이 아동들을 고아로 여겼다. 아동에게 친가족이 없어야 도덕적·윤리적 질문에 시달릴 일도 없고, 자식을 되찾겠다고 친부모가 찾아올 일도 없으니까. 해외입양에는 이렇게 아주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 지은이 아리사 오(Arissa H. Oh)는 미국 보스턴 칼리지 역사학과의 부교수로 특히 인종, 성별, 혈연관계와 관련하여 미국역사에서의 이민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저자는 예일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국제학을 공부했고 시카고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왜 그 아이들은 한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나 - 해외입양의 숨겨진 역사

아리사 H. 오 (지은이), 이은진 (옮긴이), 뿌리의집(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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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국민권익위윈회 청렴포럼위원 역임.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