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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준생은 오늘도 절망의 늪에 허덕인다.
 취준생은 오늘도 절망의 늪에 허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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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말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사회는 급격히 변해왔다. 당시 30~40대의 명예 퇴직자들이 속출했고 그들과 그들의 부양가족은 거리로 내몰렸다. 거리로 내몰린 사람 중 일부는 다른 길을 찾았으나 일부는 삶을 포기했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외국으로 떠났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노력은 자녀 교육에서 발현됐다. 1970~1980년대 '좋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부모들의 믿음은 한 발짝 진화한 형태로 나타났다. 아이들은 한글보다 영어를 먼저 깨우쳤고 협력보다는 경쟁에 익숙해졌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건강은 그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부수적인 장치가 되어버렸다.

2019학년도 정시 기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포함한 소위 '인 서울' 대학에 들어간 학생은 전체 수능 응시생 53만 220명 중 약 4.8%인 2만5760명에 불과했다. 인구절벽이 심화하고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정원 미달이 국가의 가장 큰 이슈지만 언제나 그렇듯 낙오자는 양산됐다. 그리고 우린 그 낙오자들을 '지잡대생'(지방의 잡스러운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첫 번째 낙오자가 걸러지고 얼마 가지 않아 그 4.8% 내에서도 2차 낙오자가 발생한다. 우리는 낙오자 모두를 '취업 준비생'(이하 취준생)이라 부른다.

삶이라는 것이 그렇듯 다들 나름의 사정이 있다. 고시에 떨어진 사람, 가난 때문에 가방끈이 짧은 사람,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 꿈을 쫓다 실패한 사람, 꿈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막대한 정부 지원금이 걸린 취업시장

취준생들은 누구보다 절박하다. 그 절박함이 눈에 밟히는,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잡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국가에서 운영하는 '취업성공패키지'나 '청년구직활동지원금' 프로그램이다. 

국가는 취업성공패키지(이하 취성패)와 청년구직활동지원금 프로그램을 통해 연간 5292억 원(2019년도 예산: 취성패 3710억 원, 구직활동지원금 1582억 원)을 들여 취준생들의 취업을 장려한다.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직업훈련포털 'HRD-NET'에 접속하면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학원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전국 수천 개의 직업학원들 마치 '복사-붙여넣기'라도 한 듯 서로 비슷한 교육과정과 80% 이상의 높은 취업률 덕분에 학원을 고르기가 여간 쉽지 않다.

취준생들이 고용노동부에서 제공하는 한정된 정보와 관계자와 면담 등을 통해 신중을 기해 학원을 골랐음에도, 일부 학원은 취준생들의 절박함을 이용한다.

취준생들의 멘탈은 어린 아이보다 약하다
 
취업성공패키지 유형1
- 자가부담 : 0~10%

-대상자 : 생계급여수급자, 중위소득 60%이하 가구원, 여성가장, 위기청소년, 니트족, 북한이탈주민, 결혼 이민자, 결혼이민자의 외국인자녀 등
취업성공패키지 유형2
- 자가부담 : 5~70%

- 대상자:

1) 청년층 참여대상자: 만 18~34세이하로서,

고등학교 이하 졸업(예정)자 중 비진학 미취업 청년, 대학교(전문대 포함) 졸업후 미취업 청년, 고교 3학년 2학기 재학생, 대학교(대학원 포함) 마지막 학기 재학생(휴학생 포함)

2) 중장년층 참여대상자: 만 35∼69세 이하로서,

①중위소득 100% 이하의 가구원으로서 실업급여 수급 종료 이후 미취업자, 고용보험 가입이력은 있으나 수급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미취업자, 고용보험 가입이력이 없는 자
②영세자영업자 (연간매출액 1억5천만원 이하 사업자) 등

취준생 A씨는 영상 디자이너가 꿈이다. 사실 꿈이라기보다 살기 위해 선택한 대안이다. 본래 꿈은 고등학교 윤리교사였다. 서울 소재의 사범대학을 나와 임용시험을 세 번이나 쳤지만,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사립학교 취업도 녹록지 않았다. 결국 꿈을 포기하고 관할 노동청을 찾아 취성패를 신청해 영상디자인을 가르치는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지만 "여러분들은 마이너잖아요" "취업을 못 해서 왔으면 (수업을) 열심히라도 해야죠"등과 같은 강사들이 수업 중 무심코 내뱉은 언행에 상처를 받아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고 있다. 

취준생 B씨는 현재 프론트엔드(Front end) 개발자 지망생이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3년간 달려왔지만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나이는 '3·1절(31세까지 무직이면 절대 취업 못 한다는 뜻의 은어)'에 해당했다. 노심초사하고 있는 찰나 SNS를 통해 모 사단법인에서 운영하는 취업률 90%의 '프론트엔드 교육 과정' 광고를 보았다. 부모님의 합산소득 때문에 취성패 2유형에 해당해 자비 부담금이 90만 원 발생했지만 B씨는 취업에 대한 열망 때문에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학원은 B씨의 자기소개서와 개인 포트폴리오를 교구재로 사용하기를 원했다. B씨가 거절했음에도 학원은 "취업하기 싫어?" 한마디로 사건을 정당화됐다.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B씨는 현재 취업 하나만 바라보며 참고 견디고 있다.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한 C씨는 학부과정을 모두 마쳤지만 취업을 하지 못해 졸업을 미룬 졸업 유예생이다. HRD-NET을 통해 편집 디자인 과정을 알아보던 중 마침 C씨가 목표로 하는 잡지사의 근무 경력을 가진 강사가 출강하는 학원을 찾았다. 그러나 경력만 비슷한 다른 강사가 나오는 황당한 해프닝을 겪었다. 

화가 난 C씨가 항의하자 학원은 "포트폴리오만 제대로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 듣기 싫으면 (수강) 취소하고 환불받아라 했다. 결국 C씨는 수강 취소 후 다른 학원에 등록하기까지 두 달이라는 공백기를 가졌다.

'취'업만 '성'사 시키면 '패'도 상관없다?

하지만 이들의 말 못 할 고충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강의 평가제도가 있지만 한 클래스당 20명 남짓의 소규모로 진행되기 때문에 익명성은 크게 보장되지 않는다. 또 솔직한 점수를 줄 수 없어 수업의 질 또한 개선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일부 학원은 반드시 '만족'에 체크할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매년 이 악순환의 고리는 반복된다.
 
 사회관계에서의 갑질 평가(%), 고려대 SSK 불평등과 민주주의연구센터 한국리서치 조사(2018)
 사회관계에서의 갑질 평가(%), 고려대 SSK 불평등과 민주주의연구센터 한국리서치 조사(2018)
ⓒ 한국정치학회(정한울, 조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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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취업을 미끼로 한 '갑질'에 대해 담당 노동청에 신고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인정보 보호법 상 녹취도 불가능할뿐더러 피해를 입증해 줄 증인 역시 철저한 '을'의 위치에 있어 선뜻 나서기 어렵다. 

정한울 불평등과민주주의연구센터(CSID) 연구원은 <한국 사회의 '갑질' 문화에 대한 경험적 연구>에서 "취준생들이 취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미끼로 이들의 노동력을 값싸게 이용하는 과정에서 수련생이 열악한 노동 조건에 내몰리고 있다"면서 "'갑의 횡포'를 제어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공적인 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흔히 취준생들은 취업을 위해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고 말한다. 일부 학원들이 자행하는 갑질에 대해 아무런 저항도 못 하는 현실은 어쩌면 취준생 개인의 영혼은 자신도 모르게 취성패 신청서 한 장에 팔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취준생들은 오늘도 갑의 횡포를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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