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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주간이었다. 시립도서관에서 사흘간 군산 동네 작가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작가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솜사탕 위를 걷는 것 같다. 문장으로만 만났던 작가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설렘은 사춘기 소녀들의 팬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에 강연을 하는 군산 작가들 중에는 처음 뵙는 분도 있고, 심지어 아직 책을 읽어보지 못한 분도 있다. 그리고 작년에 동네 소아과에서 마주친 이후 벚꽃이 예쁘다며 셀카도 같이 찍는 동네 언니처럼 곁을 내어주는 분도 있다. 이제 나도 군산 사람. 군산의 작가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나가 한 자리를 채우고 앉았다.

글이 쓰고 싶다. 하지만 글을 쓰기는 어렵다. 그 길을 먼저 걸어가는 동네 작가들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군산에 살고 있을 뿐 아니라 글쓰기의 소재가 되는 군산. 작가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군산을 이야기했다. <탁류>를 떠올리며 과거와 연결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군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들려주기도 하고, 바다를 시작으로 가봐야 할 군산의 곳곳을 소개하기도 했다.

광주 사람인 나는 군산에 대해 더 알고 싶다. 6년 전 이사 올 적에는 관광도시로 왔으니 여행하듯 살아보자고 다짐했지만, 1박 2일 관광객보다 가보지 않은 곳이 많다. 가끔 이마트로 장을 보러 가지만, 경암동 철길은 걸어보지 않았다. 여행자가 아닌 그저 일상을 사는 군산 사람.

군산 작가들의 군산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 충격적인 일이 하나 있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신랑이 막내와 놀아주다 안경이 틀어졌다. 안경점에 가봐야겠다고 급하게 저녁을 먹으며 "어디로 가야 되나?" 하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일곡 사거리에서 보람산부인과 쪽으로 한 블록 더 내려가면..." 말을 하다 말고 당황했다. 군산 나운동이나 수송동이 아닌 광주 일곡동 모습이 먼저 떠오른 거다. 집밖 군산의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아 더욱 놀랐다. 혼자서 심각했다.

마지막 강연이 있던 날. 동네 언니가 아들의 책과 옷을 물려 준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차를 몰고 가 짐을 받아왔다. 기분도 좋고, 날씨도 좋고, 군산이 좋아서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에는 많이 아쉬웠다. '어디를 가볼까?' 집 앞 마지막 신호 대기 중에 문자가 하나 왔다.

[Web발신]
[마리서사] 예약하신 김영하 <여행의 이유> 특별판 입고되었습니다.
편하신 때에 들러주세요 :)


며칠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특별판 구입을 신청했는데, 군산은 마리서사가 유일했다.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작은 서점에 드디어 가보는구나. 이렇게 타이밍까지 절묘하다니. 글로 남겨놓지 않고는 도저히 이 하루를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구나.
 
마리서사 군산 마리서사 입구. 군산시민보다 관광객이 많은 시간여행거리에 위치.
▲ 마리서사 군산 마리서사 입구. 군산시민보다 관광객이 많은 시간여행거리에 위치.
ⓒ 박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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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창문을 내리고 봄바람을 맞으며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마리서사. 1945년 박인환 시인이 종로에 오픈했던 서점의 이름을 따온 아기자기한 서점이었다. 내부를 구경하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 사이로 골목을 걷다가 신흥동 가옥에 들어갔다.

"여기까지 들어 가실게요. 한 번에 열두 명 씩 들어가시거든요."

안내를 돕는 관리자가 내 뒤에 선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쥐어주며 여기까지가 다음에 들어가는 표시라고 했다.

"어디서 오셨어요?"

내 앞으로 목에 이름표를 차고 있는 단체 관광객들은 서울에서 왔다고 답했다. 내 차례였다. 요즘 어디 사람인지 스스로 던져보는 질문인데, 그 질문을 받으니 한 마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저 군산 살아요. 이사 왔거든요."

그렇게 히로쓰 가옥으로 알고 있던 <장군의 아들> 촬영지에 들어가 관광객들에 섞여 해설을 들었다. 나와서 정원을 걸어보며 혼자 셀카도 찍어 보았다. 낯설지만 신나는 일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군산도 그렇다


지난달 한길문고에도 오셔서 강의했던 나태주 시인의 유명한 시 '풀꽃'을 인용해 본다. 나도 그렇게 오늘을 살고 싶다. 군산의 오늘을. <여행의 이유>를 읽어봐야겠지만, 오늘의 일상 자체가 새로운 코스의 여행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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