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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부터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하는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가 되었습니다. 문학 코디네이터로 작은서점의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연재는 그 기록입니다. - 기자말
 
한길문고 어린이날 특별 프로그램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 한길문고 어린이날 특별 프로그램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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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신체 부위에서 가장 심술궂은 곳은 똥꼬다. 어린이가 재미있게 노는 꼴을 못 본다. 피구를 할 때도, 플라잉 디스크를 날릴 때도, 레고를 맞출 때도, 딱지를 칠 때도, 포켓몬 카드 게임을 할 때도, 모처럼 마음잡고 책을 읽을 때도 똥꼬는 활약한다. 어린이의 팬티를 야금야금 먹어버린다.

어린이는 똥꼬의 공격을 견디며 깨닫는다. 찝찝한 간지럼을 참다보면 고통만 남는다는 것을. 어린이로 성장한 이상, 아기 때처럼 무조건 울 수만은 없다는 것을. 눈치 보지 않고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어린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똑바로 선다. 똥꼬가 먹어버린 팬티를 재빨리 구해낸다.

"1시간 동안은 절대로 못 앉아 있어. 똥꼬에 팬티가 낀다고요."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는 초등학교 남학생 세 명이 나한테 말했다. 독서를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적이 똥꼬라고 간파한 참가자들은 뜻밖에도 의연해 보였다. 다가올 적의 공격에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엄마가 심사위원이니까 나랑 시후랑 지후랑(우리 윗집 사는 형제)은 봐줄 거지?"
"놉!" 

 
 한길문고. 어린이날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한길문고. 어린이날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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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어린이날. 군산 한길문고에 모인 어린이들은 먼저 할 일이 있었다. 1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책을 읽기 위해서 오줌을 누고, 물을 마시고, 또 오줌을 누러 갔다 왔다. 엄격한 대회를 추구하지만 어린이날이라는 특수성을 먼저 헤아렸다. 우리는 오후 2시 7분에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를 시작했다.

단언컨대 작고 평범한 내 눈에 레이더를 장착한 적은 없다. 하지만 책 읽기를 시작한 지 3분 만에 무언가를 감지하고 말았다. 창가 쪽에 앉은 어린이 두 명이 수상했다. 책을 읽어야 하는 임무를 가진 그 어린이들의 눈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치 엄마라도 찾는 눈빛이었다.

'뭐지? 초등학생이 아닌 것 같네. 유치원생들은 참가자격 없는데 어떡해야 할까.'

그래도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의 고유성을 지키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다. 어린이들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는지만 살폈다. 맙소사! 10분쯤 쯤 지나자 '무자격 참가자'로 보이는 어린이 서너 명이 더 보였다. 나랑 눈을 마주치면 고개를 15도쯤 젖히면서 "힝, 봐 주세요" 하는 표정을 지었다. 몸을 배배 꼬고, 목이 너무 마렵다고도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의 독서. 엄마를 찾으려고 두리번 거리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초등학생 클라스!
 초등학교 1학년의 독서. 엄마를 찾으려고 두리번 거리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초등학생 클라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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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세워야 한다. 하지만 세상에 온 지 몇 년 밖에 안 된 어린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악역을 맡기도 싫다. 나는 대회장 바깥의 서가에 있는 한길문고 문지영 대표님을 찾아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서점에 찾아와준 사람들 덕분에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문지영 대표님은 말했다.

"으하하하! 어린이날이니까 그냥 넘어가자. 좋잖아."

냉철한 심사위원 역할을 포기한 나한테 젊은 아버지가 다가왔다. 그는 서점 입구의 벤치를 가리켰다. 젊은 어머니와 초등학교 3~4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계속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에 신청은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정중한 태도였다.

원래는 안 된다. 선착순 30명인데 책 읽고 있는 어린이는 33명이다. 자리도 없다. 그런데 이 특별한 날에 서점까지 온 어린이가 상처 입는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한길문고 상주작가라면 책 읽는 어린이를 '모셔야' 하는 게 도리겠지. 노트북과 가방을 치우고 내 자리에 앉게 했다.
  
 1시간 동안 엉덩이로 책을 읽는 건 너무나 어렵다.  똥꼬에 팬티가 끼었다고, 책 한 권을 다 읽었다는 표현을 몸으로 한다.
 1시간 동안 엉덩이로 책을 읽는 건 너무나 어렵다. 똥꼬에 팬티가 끼었다고, 책 한 권을 다 읽었다는 표현을 몸으로 한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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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를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들은 새로운 신호 체계를 만들었다. 머리에 책을 얹는 건 다 읽었다는 뜻이었다. 손가락 열 개를 쫙 펴서 하나씩 접는 건 몇 분 남았냐는 질문이었다. 의자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치는 건 똥꼬가 팬티를 먹어서 간지럽다는 신호였다. 한 손으로 목을 잡고 혀를 내미는 건 너무나도 물을 마시고 싶다는 몸부림이었다.

그 순간, 의문에 사로잡혔다.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에 흐르는 지나친 긴장감은 좋은 건가? 재미랑 멀어져서 별로인 것 같았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 있는 것처럼 어린이들에게 시간을 주었다. 약 10초간만. 기지개를 켜라고도 하고, 똥꼬가 먹은 팬티도 일어서서 꺼내라고 했다. "물마시고 싶은 사람?" 물었더니 열 명쯤 되는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재미있게 책 읽자고 연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너무 센 긴장감이 흐르면 안 되니까 대회 중간에 기지개를 켜고, 물을 마신다.
 재미있게 책 읽자고 연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너무 센 긴장감이 흐르면 안 되니까 대회 중간에 기지개를 켜고, 물을 마신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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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영 대표님은 물병과 컵을 들고 대회장 안으로 난입했다. 꼴딱 꼴딱 꼴딱. 아이들이 한꺼번에 물 마시는 소리가 통쾌했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서 왕파리를 쫓아냈다. 왕파리는 어떤 억하심정이 있는지 한 어린이의 머리 위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7.6.5.4.3.2.1. 땡!"
 

아이들은 끝나기 직전에 카운트다운을 같이 셌다. '무자격 참가자'들은 끝나자마자 엄마들한테 자랑하러 갔다 오고, 진정한 참가자들은 들고 온 책을 정리하고는 물끄러미 나와 문지영 대표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1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고, 최저시급 상품권을 늠름하게 요구하는 자세였다.

"와! 근데 왜 상품권이 8350원이에요? 크리스마스에는 7530원이었잖아요."
"최저시급이 올라서 그래요. 1년에 한 번씩 오르는 거예요."
"내년에도요?"
"그럴 걸!"

  
다도체험 책을 읽은 엉덩이, 우전차 마시기에 도전하다!
▲ 다도체험 책을 읽은 엉덩이, 우전차 마시기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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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권을 받은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서가와 문구 코너로 사라지지 않았다. 1시간 동안 책을 읽고 나더니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를 깨우쳐 버린 것 같았다. 최저시급 상품권을 고이 들고 서점 안쪽에 차려놓은 다도 체험장으로 갔다. 많아야 스무 명일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전통차 예절 교육을 하는 정은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방석에 앉는 법부터 알려주었다. 금세 잠잠해진 아이들에게 차 마시는 도구를 설명했다. 주전자처럼 생긴 건 탕관, 대포 모양 같이 생긴 거는 다관, 물 식힘 그릇 숙우, 차를 담아놓은 차호, 찻잔을 데운 물이나 남은 차를 버리는 퇴수기 등을 알려주었다.

정은아 선생님은 차 우리는 모습을 느린 영상처럼 보여주었다. 차를 다 우린 선생님은 "친구들이 보기에 너무 느릴 것 같아서 속도를 빠르게 했어요"라고 했다. 뒷자리에서 달팽이보다 더 느린 것 같다고 평가했던 아이가 "헐!" 하면서 자기 입을 막았다.
  
 차와 같이 마시는 다식.
 차와 같이 마시는 다식.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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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녹차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는 우전차와 다식을 받았다. 그때까지 우아하게 잘 참았던 아이들은 다식으로 나온 떡을 조물조물 하고, 방울토마토는 싫다고 옆 자리 아이에게 떠넘기고, 우전차를 먼저 '원샷' 해버리기도 했다.

"선생님이랑 같이 마셔야 해요. 허리 펴고, 양반 다리! 녹차를 마시면 노폐물이 빠져나가요. (양쪽 겨드랑이를 가리키며) 여기 숨구멍으로 빠져나가요. 정말 맛이 없으면 안 마셔도 괜찮아요. 근데 맛있을 거예요. 눈으로 보고 향을 느껴보세요."

우전차가 고구마처럼 달다는 아이들도, 진짜 맛없다는 아이들도 다도체험이 끝나고는 똑같았다. 영화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새까만 먼지 귀신 '마크로 크로스케'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엇을 살 것인가.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읽어서 받은 최저시급 상품권을 들고 서가와 문구 코너를 오래오래 걸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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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립청춘>, <소년의 레시피>,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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