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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이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정기주주총회가 끝나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이 부결과 관련해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경영권 박탈이 확정된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 현장에는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박창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이 모습을 보였다.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그는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이 부결된 것을 주주총회 현장에서 똑똑히 지켜봤다. 주주총회가 끝난 뒤 <오마이뉴스>는 박 지부장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박 지부장의 목소리는 의외로 덤덤했다.
 
박 지부장은 "많은 분들이 기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기쁨 보다는 암담한 기분이 든다"며 "대한항공이 이정도 밖에 안 되는 회사였나, 이렇게 주먹구구로 경영해왔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그는 이번 조 회장의 대한항공 경영권 박탈에 대해 "절대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 재벌 경영진에 대한 단죄가 이뤄진 것"이라며 "누가 봐도 부당하고 잘못된 것은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박 지부장은 이어 "대한항공 직원들이 앞으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활동에 매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최근 건강 상태를 묻자 박 지부장은 "전혀 안 좋습니다"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다음은 박 지부장과의 일문일답.
 
대한항공 정기주주 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이 부결된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이 밝은 모습으로 웃고 있다. ⓒ 이희훈
 
- 지금 심정은 어떤가?
"참 복잡 미묘하죠. 많은 분들이 기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기쁨보다는 슬프다고 하기도 그렇고, 암담한 기분이 든다. 대한항공이 이렇게 안되는 회사였나? 저는 대한항공 사랑하고 큰 회사로 봤는데 '이렇게 주먹구구로 경영해왔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땅콩회항 사건이 계기라 할 수 있지만, 그 이후 5년간 사회로부터 변화 요구가 있었고 진실된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전근대적 족벌 경영 체제가 가로막고 있고, 그대로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들이 오늘 강제 해임 결과로 나와서 안타깝고, 측은지심이 든다."
 
- 조양호 회장 등 경영진에게도 그런 생각이 드나?
"(경영진이 아닌) 우리 회사에게 드는 생각이다. 그들이 경영진이긴 하지만, 조양호 회장은 얼마나 자기 눈과 귀를 가리는 행동을 해왔나. 땅콩회항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조 회장은 '우리 딸은 잘못 없다'는 얘기를 해왔다. 큰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의 자질이나 기본 태도가 안돼 있는 말이다. 주먹구구 혼자서 하는 회사라면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대한항공이) 글로벌 회사고 한국서 손꼽히는 리딩그룹에 있다 하면서, 그런 행동을 해온 것이 안타깝다. 제가 25년 몸담은 회사였는데, 참담하다."
 
- 오늘 주주총회에 참석했다. 당시 주총장에서 대본을 읽으면서 회사편을 드는 주주도 있었고, 조양호 회장을 강하게 비판하는 시민단체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회사 경영진을 편드는) 그런 발언 할 때 우스개 소리로 '저분들 엑스트라들 아냐'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조합 대의원이 하는 말이 '네 맞습니다, 십수년 전 퇴임한 부장님이다'라고 하더라. 오래전에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이 앞잡이처럼 주총장에 왔던 것이다. 이게 우리나라의 경제적 수준인가 하는 생각에 너무 깜짝 놀랐다. 그게 용납돼 왔다는 것도 놀랍다. 주식회사는 극소 지분 외에 우리 국민이 낸 돈으로 운영되는 회사다. 그런데 주주권 행사나 권리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고, 방치돼 왔다. '변할 게 참 많은 나라구나, 내가 모르는 현실적 불합리함과 구조는 넘쳐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직원 연대 같은 지부들이 많이 활동해야 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계기가 됐다."
 
- 이번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 박탈을 두고 일부에선 촛불 혁명에 비유하기도 한다. 박 지부장의 생각은 어떤가?
"땅콩회항을 겪으면서 제가 특출난 사회적 개념이나 의식에 기대왔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발단이 불합리했고, 다른 누가 봐도 불합리하다는 공감대가 형성이 됐다. 제가 위대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당연히 했던 것들인데, 사람들은 '왜 저 사람이 피해를 봐야 하지'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대한항공, 절대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 재벌 경영진에 대한 단죄가 이뤄지면서, 잘못된 건 바뀌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 같다."
 
- 사실 이번 주총을 앞두고, 조양호 회장 일가가 회사 안팎에서 찬성표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원 연대 모임이 국민들로부터 소액 주주권 위임 받을 때 대한항공에서 내부 직원에게 조양호 찬성 위임해달라고 강요하거나 받았다. 회사가 잘못했다고 외치던 한 동료가 그때 회사의 위임 요구에 사인하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직원에게 '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했더니 '우리가 해봤자 바뀌지 않는다'는 자포자기의 말을 하더라. 저는 '적어도 바꾸려 해야 하지 않겠나, 행동하지 않고 그런 말을 하면 안된다'고 했다. 오늘 그 결과물을 보여줬다 생각한다. 땅콩회항도 마찬가지고, 오늘 사내이사 부결도 마찬가지다. 부당하고 잘못된 것은 정당한 의지를 갖고 정당한 방법을 행사한다면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 조 회장이 대한항공 경영에서 물러나게 됐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폭죽 터트릴 일도 아니다. (조양호 회장이) 물러났다고 해서 뒤에서 (경영을) 안할 것도 아니다. 끊임 없이 사회 의식이 변화를 하도록 하고, 변해가는 과정에 있다. "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자포자기의 자발적 복종, 자기 발에 쇠사슬을 2~3개씩 스스로 채우는 내부 노동자부터 정당한 권리에 대해 주장하도록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활동에 매진할 것이다. 내부적으로 조양호는 바뀌었지만, 그에게 부역했던 사람이 그대로 있는 이상,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땅콩회항 때 내가 2차 가해를 받은 것도 조현아는 물러났지만 그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갑자기 변한다고 생각 안한다. 앞으로도 행동을 통해 변화를 계속 이끌어나가려 한다."
 
- 조양호 등 총수 일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그 분에게 할 말은 없다. 개인 감정싸움은 할 생각 없다. 여러 차례 많은 말을 했지만 (조회장 등에게) 개인적 감정은 없다."
 
- 요즘 건강 상태 괜찮은가?
"전혀 안 좋습니다, 하하하"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을 비롯한 민변, 참여연대 회원등이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정기주주총회가 끝나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이 부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태그:#박창진, #대한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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