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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사진은 2018년 12월 3일 국회에서 이른바 '유치원3법' 논의 등을 위해 열린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사진은 2018년 12월 3일 국회에서 이른바 "유치원3법" 논의 등을 위해 열린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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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무산'이라고 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와 자유한국당에 양육자들이 '졌다'고도 했다. 사회적 공분과 쉬이 사그라지지 않은 관심에도 비리 유치원 근절을 위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은 결국 연내 국회 처리가 불발됐다.

지난 12월 27일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의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합의를 통해 유치원3법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상정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바른미래당의 절충안도 끝내 거부한 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의 법안을 고집하다가 회의장을 떠났다.

이찬열(바른미래당․경기수원갑) 교육위원장은 이날 "유치원3법은 우리 아이들이 올바르게 교육받을 권리, 학부모가 안심하고 아이들을 기관에 보낼 수 있는 권리를 위한 것으로 정쟁의 대상이 된다는 일은 이해가 안 된다"라며 "7차 소위까지 의견 접근이 이뤄지지 않는 데에 위원장으로서 자책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한표 (한국당) 간사도 손자, 손녀가 있을 것이고, 다른 의원들도 조카가 있을 것인데 교육위에서 법안이 안 만들어져 아이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미래이기 때문이다"라고 신속처리안건 상정 이유를 밝혔다.

신속처리안건은 2012년 정당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심사가 지연되는 법안 처리를 위해 도입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교섭단체간 이견으로 사안이 합리적으로 논의가 되지 않고 법안 통과가 어려울 때 해당 상임위원회 재적의원 3/5 이상의 동의를 얻어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상임위원장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 표결 처리하게 된다.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참사법)이 이 과정을 거쳤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더라도 법안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최장 330일까지 걸릴 수 있다. 그래서 '신속하지 않은 처리'라는 말도 나온다. 구체적으로 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 본회의 부의 60일 등이 소요된다. 사회적참사법은 336일이 지나서야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때문에 법안 처리 기간을 최대한 당겨 현재의 동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유치원 현장의 태업을 막고, 양육당사자들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대책이 필요하게 됐다.

비리유치원 문제 재발 막기 힘든 '유치원3법 중재안' 
 
2017년 12월 27일 오후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찬열 교육위원장이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을 신속처리(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처리하려 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반발해 회의장을 떠나 의석(오른쪽)이 비어 있다. 왼쪽에서 이찬열 교육위원장(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간사(가운데), 바른미래당 임재훈 간사가 얘기하고 있다.
▲ 한국당 떠난 교육위 회의장 2017년 12월 27일 오후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찬열 교육위원장이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을 신속처리(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처리하려 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반발해 회의장을 떠나 의석(오른쪽)이 비어 있다. 왼쪽에서 이찬열 교육위원장(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간사(가운데), 바른미래당 임재훈 간사가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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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본회의를 통과해도 '유치원3법 중재안'으로는 지금까지 드러난 비리유치원 문제를 해결하고 재발을 막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이 제시한 유치원 3법 중재안은 법안 시행 시기를 법안 공포 뒤 1년이 지난 뒤 적용하기로 했다. '교비 회계의 교육 목적 외 부정사용'에 대한 형사상 처벌이 사실상 앞으로 2년 뒤에나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또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인 처벌 수위에 대해서도 횡령죄나 사립학교법의 같은 행위의 처벌보다 수위가 낮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이 중재안은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빠졌다. 누리과정 지원금은 그대로 두고 차후 잘못된 사용 내역이 드러나면 처벌하도록 했다. 당초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유치원3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목은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정확하게 못 박아서 교비를 사적으로 유용하는 일을 막고, 잘못 사용했을 경우 횡령죄로 처벌하도록 하는 부분임을 강조해 왔다.

지원금 형태는 유치원 회계 부정이 발생해도 처벌이 어렵지만 보조금으로 전환하면 이를 유용할 경우 처벌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에듀파인 도입 의무화와 학교급식법 적용대상에 유치원을 포함시켜 급식 부정 피해를 막는 내용은 반영됐다.

이처럼 유치원3법 처리과정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당은 가뜩이나 만연한 '정치 불신' 풍조를 확산하는 데 다시 한 번 이바지했다. 유치원3법 심사에 발목을 잡고, 정쟁으로 시간을 끌다가 정작 자체 법안이라며 유치원 '회계분리'로 한유총의 입장을 대변했다. 민의를 대변하라고 뽑아줬더니 이익단체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그들의 정치란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보다 더 확실하게 증명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언론보도를 통해 한유총이 쪼개기 후원을 통해 한국당 소속 일부 의원들에게 입법 로비를 시도했다는 점이 알려지기도 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해당 의혹과 관련된 국회의원 7명(한국당 곽상도·권성동·김한표·이장우·전희경, 민주당 오제세,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에 대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아울러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고도, 해당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여당의 정치력과 합의 기능을 상실한 국회 역시 비판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말로는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한다면서..." 분노의 노래 
 
정치하는엄마들이 2018년 12월 5일 오후 국회 본관 앞에서 '유아교육의 주인은 바로 아이들입니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펼치고 있는 모습.
▲ 정치하는엄마들 "유아교육의 주인은 바로 아이들입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2018년 12월 5일 오후 국회 본관 앞에서 "유아교육의 주인은 바로 아이들입니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펼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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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는엄마들 진유경 활동가는 구한 말 장지연 선생이 나라 잃은 설움을 적은 '시일야방성대곡'에 빗대 '시일야방성대노'로 양육자의 참담함을 전했다.

진유경 활동가는 "말로는 저출생을 걱정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한다면서 뒤로는 이익집단과 야합하는 자유한국당의 본래 뜻은 어디에 있을꼬"라면서 "아이사랑카드를 자르며 통곡하지도 못하고 그따위 비리유치원 안 다니고 가정 보육한다며 육아휴직을 던지지도 못하는 세상에 다시 섰으니 무슨 면목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을 다시 마주할 것인가, 아아 원통하고 아아 분하도다, 이 땅에서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여,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국회를 보며 좌절만 할 것인가, 원통 원통하다, 부모들이여, 엄마들이여"라고 호소했다.

'무산'은 안개가 걷히듯 흩어져 없어지거나 또는 그렇게 흐지부지 취소됨을 말한다. 유치원 교육 정상화에 대한 열망과 요구는 흩어지거나 없어질 수가 없다. 취소는 더욱 안 될 일이다. 그런 점에서 법안이 무산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양육자들은 지지 않았다. 당초 여당의 당론으로 발의됐던 유치원3법 내용 중 상당 부분이 바른미래당의 중재안에 포함될 수 있었던 데는 '정치하는엄마들' 회원은 물론 뜻을 함께 한 시민들의 전화․문자행동, 다양한 참여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단언한다.

당사자들이 생생한 정치현장을 보고 배운 점도 성과다. 교과서 내용으로만 스쳐간 법안 발의 및 처리과정을 새롭게 체감했다. 또 마음을 모아 행동으로 실천하면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신념을 확인받는 과정이 되기도 했다.

지지 않았다, 그래도 불안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소속 회원들이 2018년 12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바른미래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치원 비리 사태에 이후 바른미래당의 입장이 모호하다”라며 유아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바른미래당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소속 회원들이 2018년 12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바른미래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치원 비리 사태에 이후 바른미래당의 입장이 모호하다”라며 유아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바른미래당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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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기간 동안 실력행사를 통해 유아교육을 쥐고 흔들어 온 한유총이라는 단체의 민낯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평범한 양육자들 덕분이다. 내외부의 비판 여론에 직면하면서 이들 조직이 나뉘게 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교육부 등 행정당국도 단체의 무력행사에 뾰족한 수를 내지 못했던 과거에 비춰보면 결코 사소하다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육자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사립유치원의 '나몰라 식' 폐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이들의 권리는 계속 위협받고 있다. 현재까지 폐원을 신청한 사립유치원은 총 106곳이다.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통보에 양육자들은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대안으로 제시된 부모협동조합형유치원 설립도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유총은 아직도 본질에서 벗어나는 '사유 재산' 프레임을 제기하며, 합리성에 상관없이 여전히 우리 사회 한 구석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 변화를 발목 잡는 낡은 이념을 증명했다.

유아기 교육에 국가재원이 투여되고, 공공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에는 공동체의 연속을 위해서도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고, 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란다. 그래서 우리에겐 다음 단계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이는 양육당사자는 물론 시민들의 정치 참여와 관심, 연대로 이뤄진다.

유치원3법과 관련한 한국당의 행태는 가히 '침대축구'다. 축구 전략이 나온 김에 지난 석 달여 간 유치원3법 통과에 희망을 걸고, 한편 비리유치원으로 어려움에 직면하서도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이들에게 연대의 마음으로 축구 구단인 리버풀의 응원가 <유 윌 네버 워크 얼론>(You will never walk alone)을 전하고 싶다.

"폭풍을 헤쳐 나갈 때 고개를 높이 들라
그리고 어둠을 두려워 마라
이 폭풍 끝엔 금빛 하늘과 종달새의 달콤한 은색 노래가 있을 것이다
바람을 헤쳐나가라
폭풍우를 헤쳐나가라
네 꿈이 던져지고 날아가도 계속 나아가라
가슴에 희망을 품고
그러면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것이다(You will never walk alone)"


당신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것이다. 함께 걸을 때 정치하는 엄마, 아빠, 유권자가 결국 이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백운희씨는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입니다.


태그:#정치하는엄마들, #유치원3법, #박용진, #자유한국당, #한유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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