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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훈 시인의 '몸의 중심'을 낭독하는 손석희 앵커.
 정세훈 시인의 "몸의 중심"을 낭독하는 손석희 앵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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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 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


(정세훈 시인의 시 '몸의 중심' 전부)

손석희 앵커는 지난해 2월 8일 방송된 JTBC '뉴스룸' 앵커 브리핑에서 정세훈(63)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몸의 중심>(삶창)의 표제 시 '몸의 중심'을 인용하면서 가슴 아픈 사연을 전했다.

손 앵커는 이날 브리핑에서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다 절도로 경찰에 붙잡힌 청년, 직장과 결혼을 포기한 채 15년 동안 돌봐왔던 친형을 흉기로 찌르고 경찰에 자수한 동생, 식당 일을 하는 어머니 대신 생업 전선에 뛰어든 열아홉 살 아들이 회사 창고에서 목을 매 숨진 사연 등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정 시인의 시 '몸의 중심'을 낭독했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중략)//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라고.

그리고는 "우리 사회의 아픈 곳, 세상이 보듬어야 하고 살펴야 할 사람들 대신,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는 이들은 지금도 자신이 제일 아프다며 소리를 지르는 중"이라며 정치인들의 괴성을 꾸짖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될 상처 난 몸의 중심. 세상이 어느새 뒷전으로 밀쳐내어 버린 가슴 저릿한 몸의 중심"의 현주소를 안타까워했다.

예순 셋, 시인의 아팠던 삶
 
영세 공장 생활 20년에 얻은 것은 직업병이었다.
 영세 공장 생활 20년에 얻은 것은 직업병이었다.
ⓒ 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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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버지는 광부였다. 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가 광부로 노역하다 귀국해서 여전히 광부로 일했다. 어머니는 일 년에 열 달을 누워 계셨다. 술 취한 남편의 폭력과 끔찍한 가난에다 전쟁 와중에 두 아들을 잃은 슬픔이 어머니를 병들게 했다. 시인의 어머니는 화병을 앓았다.

학창 시절, 그의 꿈은 소월처럼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공부도 무척 잘했다. 문교부장관상(현, 교육부장관상)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지만 가난 때문에 고교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1972년 여름, 열여섯 소년은 좌절의 눈물을 훔치면서 홍성역에서 장항선 열차를 타고 상경했다.

어머니의 약값을 대드리고 가난한 아버지를 도와드리고 싶어 상경한 소년은 식당과 술집 종업원 생활을 하며 객지를 떠돌았다. 하지만 어머니 약값은 벌지 못하고 타관객지 서러움만 겪었다. 이듬해, 서울을 떠나 부산의 남성복 전문매장에서 일하던 열일곱 소년은 취객과 매장 종업원 간의 싸움에 휘말리면서 두 달 보름을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불쌍한 부모님의 노고를 덜어드린답시고 돈 벌러 나온 놈이 되레 커다란 짐만 되어 드리다니….'

출소한 그는 서러운 고향을 다시 떠나 서울 중랑천 소재 영세 공장에 취직했다. 12시간 주야로 교대 근무하면서 가느다란 동선을 열처리 해 특수 도료로 피복을 입혀 전자석선을 만드는 중노동이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열기와 신나 등 화공약품이 진동하는 열악한 작업 환경만 괴로운 게 아니었다. 선배 노동자들은 망치와 스패너 등 공구를 집어던지기 일쑤였다. 병든 어머니에게 약값을 보내야 했기에 참고 견뎠다.

시인이 공장 생활 20년에 얻은 것은 직업병이었다. 온 몸에 진물이 생기고 피부가 벗겨지는 등 나환자 증세가 나타났지만 당시 영세 공장 노동자에게 산재는 어림없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모아둔 몇 푼의 돈은 치료비로 날아갔다. 병이 진폐증으로 판명 났지만 보상은커녕 치료비조차 가난한 노동자의 몫이었다. 노동자의 비참한 삶 위로 죽음의 기운이 덮쳤다.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
저 하늘의 해와 달과 별 무리로 뿌려지지 말고
뿌려지어 뿌려지어
외롭지 않은
이 산천에 뿌려지거라
 

(정세훈 시인의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 중 일부)

시인은 죽음 문턱까지 갔다. 아프고 아팠던 인생을 두고 떠날 채비를 하면서 유고시를 썼다. 시인의 간구가 하늘에 닿았을까. 신은 시인의 생명을 거두어 가지 않았다. 2006년, 가망 없다고 했지만 어려운 수술 끝에 소생했다. 오랜 투병 생활을 이겨낸 시인은 2012년부터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 고공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며 아프지 말라, 제발 아프지 말라고 노래하고 있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픈 사랑 이야기
 
정세훈 시인의 '부평4공단 여공' 시를 이동수 작가가 디지털로 작업하고 현수막으로 출력했다.
 정세훈 시인의 "부평4공단 여공" 시를 이동수 작가가 디지털로 작업하고 현수막으로 출력했다.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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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팔 업체로부터 소개받은 그녀는
부평 4공단에서 여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립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연장 작업, 휴일 특근 작업, 36시간 교대 작업,
공장 생활의 고단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아프지만 병원 갈 돈이 없다는 소식이 오고갔다

"아프지만"이란 소식에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병원 갈 돈이 없다"는 소식에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정세훈 시인의 '부평 4공단 여공' 중의 일부)

가방 끈 짧은 노동자라고 해서 왜 사랑하고 싶지 않겠는가. 영세 공장 노동자였던 시인도 어여쁜 아가씨와 데이트하며 달콤하게 속삭이고 싶었지만 여성이 싫어하는 조건을 두루 갖춘 탓에 여성 앞에 서면 주눅 들었다. 그래서 주간지 펜팔 광고를 통해 얼굴도 모르는 여성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상대는 부평공단에서 여공으로 일하는 한 살 연상의 여성으로 고향이 충남 홍성으로 같았다.

가난한 노동자의 사랑은 왜 이렇게 아플까. 그 시절의 이토록 아픈 사랑을 아픔도 사랑도 저버린 이 시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타관살이에 서럽고 외로웠던 두 사람이 1년간 주고받은 편지는 200통에 달했다. 편지를 통해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린 연인이 병이 들었고, 병원 갈 돈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인의 사랑은 아픈 몸을 통해 이루어졌다. 

시인은 스물다섯이던 1979년 4월 15일. 개나리가 만발한 봄날에 부평4공단 여공 김상례와 혼례를 올렸다.

"삶의 동지인 아내와 39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결혼 첫날밤에 한 아내와의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혼하면 공순이 생활을 접게 해 준다고 약속했는데 아내는 공장 생활을 하면서 병든 나를 지켜주었고 아이들을 잘 키워 결혼시키면서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지켜주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나 나는 참으로 아내에게 미안합니다."

시력 30년 기금 마련 시화전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정세훈 시인의 시력 30년 시화집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푸른사상)
 정세훈 시인의 시력 30년 시화집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푸른사상)
ⓒ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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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잘난 꽃 되지 말고
못난 꽃 되자

함부로
남의 밥줄
끊어놓지 않는

이 세상의
가장 못난 꽃 되자


(정세훈 시인의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전문)

정세훈 시인이 시력 30년을 맞아 시화집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푸른사상)를 펴냈다. 시화집에는 표제작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를 비롯해 그동안 펴낸 8권의 시집에서 고른 53편의 시와 그림이 담겨 있다. 화가 김정렬, 판화가 류연복, 사진작가 박영환 등 52명의 작가들이 재능기부로 시화집에 참여했다.

이와 함께 '아프지 말라'는 제목의 기금마련 시화전이 서울, 홍성, 인천, 부평 등에서 순회 전시된다. 시화전에는 시화집에 참여한 화가, 서예가, 판화가, 전각가, 사진작가 등 52명의 작품이 전시 판매되며 수익금은 어려운 예술가 돕는 데 사용한다.
 
정세훈 시인이 '아프지 말라'는 제목으로 순회 시화전을 연다.
 정세훈 시인이 "아프지 말라"는 제목으로 순회 시화전을 연다.
ⓒ 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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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전시회는 4일부터 17일까지 인사동 '고은 갤러리', 두 번째 전시회는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시인의 고향인 홍성군 홍주문화회관, 세 번째 전시회는 11월 2일부터 2주간 인천 문화공간 '해시', 네 번째 전시회는 11월 19일부터 내년 2월말까지 부평역사박물관에서 공단과 공단마을 관련 작품을 선정해 열린다.

정세훈 시인은 지난 5일 기자를 통해 아픈 이웃들에게 아프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아픈 이웃들을 외면하는 이들에게 비인간적 행위를 중단하고 그 이웃들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권면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프고, 쫓겨난 노동자들이 아프고, 가난한 이웃들이 아프고, 집 없는 이웃이 아프고, 혼자 자식을 키우는 한 부모들이 아프고, 거리를 떠도는 소년들이 아프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아픈 이웃들이여, 아프지 마십시오. 제발, 아프지 마십시오. 가엾은 이웃들을 아프게 하는 정치권과 자본가와 갑질하는 사람들이여, 힘없는 이웃들을 괴롭히는 당신들의 죄가 하늘을 진노케 하고 있습니다. 비인간적 행위를 중단하고 아픈 이웃들에게 어서 용서를 구하십시오. "

8권의 시집 펴낸 정세훈 시인
 
4일 인사동 '고은갤러리'에서 시화전을 시작하며 축하 손님들에게 웃음으로 인사하고 있는 정세훈 시인.
 4일 인사동 "고은갤러리"에서 시화전을 시작하며 축하 손님들에게 웃음으로 인사하고 있는 정세훈 시인.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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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훈 시인은 1989년 <노동해방문학> 창간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손 하나로 아름다운 당신>, <맑은 하늘을 보면>, <저 별을 버리지 말아야지>, <끝내 술잔을 비우지 못하였습니다>, <그 옛날 별들이 생각났다>,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 <부평 4공단 여공>, <몸의 중심> 등 8권의 시집을 펴냈고 장편동화집 <세상 밖으로 나온 꼬마송사리 큰눈이>와 포엠에세이집 <소나기를 머금은 풀꽃향기> 등을 펴냈다.

인천작가회의 회장, 작가회의 이사, 제주4․3 제70주년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 한국민예총 이사장 대행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천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공동준비위원장, 소년희망센터 운영위원, 인천민예총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태그:#정세훈 시인, #몸의 중심, #시력 30년, #시화전, #시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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