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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꿈꾸는 퇴사! 새해 첫날 좌천 통보를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무기력한 40대 회사원이던 제가 딴짓을 하면서 퇴사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과연 퇴사할 수 있을까요? - 기자 말
 
내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내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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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기사] 찰나의 실수 덕분에...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내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하루하루를 말년 병장의 심정으로 시계를 바라보며 책이 세상에 나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계약 이후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딴지일보>에서 연락이 왔다.

"모 케이블 방송사에서 선생님 연재 글을 보시고 저희 쪽으로 연락이 와서요. 혹시 핸드폰 번호를 알려 드려도 될까요?"
"그런 건 굳이 저에게 확인을 하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바로 알려주세요! 어서요!"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XX방송 작가입니다. 저희가 두 달 후에 역사 토크쇼를 방영하려고 하는데 작가님이 패널로 참가하면 어떨까 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방송에 나갈 기회가 찾아왔지만...

우리는 사흘 후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출연자 후보 중 한 명일 뿐이지만, 이런 일이 17년 차 평범한 직장인에게 일어났다는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다. 미팅 날짜가 잡히고 나서부터 아내 앞에서 밤늦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방송사 쪽에서 만나면 역사 이야기를 물어볼 게 뻔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방송사 작가들과의 미팅 날. 두 명의 작가분이 참석했고 나는 역사 속 왕과 여자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그분들에게 들려주었다.

"작가님! 글도 재미있지만 말씀도 너무 잘하셔요. 솔직히 저희 둘은 작가님이랑 꼭 같이하고 싶어요. 그런데 카메라 감독님과 PD님, 캐스팅 권한을 가진 이사님의 결재가 나야 해서요. 최종 결정이 나면 저희가 연락드릴게요. 바쁘신데 귀한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솔직히 엄청나게 고대하고 기대했다. 꼭 출연하고 싶었다. 출판사 편집장도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 책도 덩달아 잘 될 거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인생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면 무슨 재미가 있으랴.

며칠 후, 아내는 나를 위해 위로 만찬을 준비했다.

"방송사 사람들이 큰 실수 한 거야. 당신 글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더군다나 말도 잘하는데 말이야. 케이블 말고... 공중파! 공중파에서 연락이 올 거야. 상심하지 마!"
"그래. 괜찮아. 그냥. 조금 아쉬운 정도야."
"다행이네. 난 근데 솔직히 당신이 TV 나가는 거 별로야. 사실 마스크는 좀 그렇잖아..."
"..."


아내의 냉철한 분석에 헛웃음이 났지만, 훗날 그 방송에 패널로 참가한 분들의 외모를 보니 내가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결정하고 노력해 얻은 결과물
 
<찌라시 한국사>, 샘앤파커스
 <찌라시 한국사>, 샘앤파커스
ⓒ 샘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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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와 계약 후 퇴고 작업에 온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다. 매일 원고 작업을 마치고 나면 얼굴로 열이 올라오는 홍조 현상이 한 시간 이상씩 지속됐다. 이 현상은 계속 심해져서 결국 200만 원 상당의 한약을 먹은 후에서야 치료됐다.

최종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그해 연말부터 다시 교정 작업을 3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그리고 표지 디자인에 대한 검토 작업도 마쳤다. 모든 과정들이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정식 출간을 앞두고 포털 사이트에 '출간 전 연재'라는 타이틀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소개됐는데, 반응이 좋았다.

"작가님! 출간 전부터 방송사에서 연락도 오고 포털사이트에서도 반응이 좋습니다."

편집장의 격려에 한껏 고무됐지만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빨리 내가 쓴 글이 책으로 나와 광화문 교보문고에 놓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 평생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2016년 1월 첫 출근 날 회사로부터 좌천 통보를 받고, 그해 5월에 제주 자전거 여행을 다녀온 후 역사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듬해 3월에 출판사와 정식 계약을 하고 2018년 2월 23일 내 인생의 첫 책 <찌라시 한국사>가 드디어 출간됐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범한 하루였지만, 나에게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온전히 나의 자유의지로 시작해 힘든 과정을 거쳐 얻어낸 인생의 첫 결과물이 책이라니. 더욱더 감격스러웠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광화문 교보문고로 달려갔다. 그곳에 내 이름 석 자가 저자로 인쇄된, 내 책이 있었다. 꿈만 같았다. 책 실물은 출판사로부터 이미 받았지만, 대형 서점에 진열된 내 책을 보는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40대 중반의 아저씨는 점심도 거른 채 대낮부터 서점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 한 권의 책이 나에게 준, 또는 줄 물질적 보상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으로 인해서 -44살이 돼서야- 비로소 내 인생극장의 주인공이 된 것만으로도 극한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초판도 다 못 팔리는 책이 절반을 넘는 시장 상황과 수많은 책들이 한 달 안에 구석진 서가로 치워진다는 현실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단언컨대 내가 태어나서 해낸 일 중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타인이 시키는 대로 해서 얻어낸 모든 결과물을 다 합친 질량보다 더 큰 기쁨을 딴짓 한 번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다.

책이 배본도 되기 전부터 시골에 하나 있는 작은 서점에 전화를 해 내 책을 찾으신다는 부모님 생각이 떠올랐다.

"<찌라시 한국사> 없어요? 다음 주에 나올 거요. 그 책 참말로 재미있어요. 우리 아들이 쓴 책이라 하는 말이 아니고."

부모님을 뵐 생각을 하니 눈물 한 방울이 추가됐다.

태그:#찌라시한국사, #퇴사프로젝트,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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