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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련도 폭염이다
 대련도 폭염이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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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빠네 큰 아이 용하가 중학교를 졸업하는 즈음, 이 멤버 조합으로 일본 도쿄로 배낭여행을 갈까 했었다. 휴양지 패키지여행만 두어 번 다녀온 오빠네 조카들이 자유여행 안 가냐고 계속 툴툴댄다는 말을 들어서 생각해 본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여행을 통한 배움에도 순서가 있을 텐데 일본보다는 고구려 유적지를 포함한 백두산에 먼저 다녀오는 게 맞겠다 싶었다.

인생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살아보니, 역사를 안다는 것은 인간사의 흐름을 보다 긴 호흡을 가지고 조망하게 해준다. 긴호흡의 의미는 한 발 물러서 뒷짐지고 '어차피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니까 치열하게 소리쳐봤자 의미 없어'라고 방관한다는 뜻이 아니라 보다 여유를 가지고 흐름을 보기에 인생을 살아갈 때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알게 해준다고 할까.

즉 역사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시류에 무분별하게 휩쓸리지 않고, 유행하는 모든 세태와 거리 두기를 한 후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하며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며 이것은 일신을 평안하게 영위할 때 매우 유용하다. 바로 이것이 엄마로서 내 딸, 조카들의 삶을 응원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양육하기 위해 실천하는 방법으로써 이번 여행을 계획한 첫 번째 이유이다.

나아가 아이들은 남한이란 영토를 벗어나 기원전 동이족의 역사까지 손 내미는 여행을 통해 인지하든, 못하든 살아가며 어떤 사건과 지식을 접하는 순간마다 이들의 관심, 생각, 지식의 범위는 백두산 이북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기회가 되리라. 이것이 두 번째 이유가 될 것이다.

20년 전 고등학생이던 당시 나의 관심은 고구려에 꽂혀 있었다. 관련 책을 보며 한민족으로서 나의 기상은 무용총 벽화의 말의 힘찬 질주와 같이 하늘까지 솟구쳐 올랐다. 우리 영토인 간도를 되찾을 수 있는 기한이 임박했던 '간도 협약 체결 100년 시효설'이 있던 2009년까지, 그것이 국제법상 효력이 있든 없든 내 일보다 국가의 역사와 영토 문제로 마음이 심란했던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조정래 키드'로 불려도 무리가 아닌 세대이다 보니 '역사'를 떠올리면 늘 나의 상상은 백두산 좌, 우쪽 어딘가 김좌진 장군, 이범석 장군의 진영에서 맴돌곤 했다. 지금도 한반도 지도를 그리거나 지구본을 볼 때면 독립운동을 위해 척박한 만주 땅으로 이주한 독립군들의 이야기,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중앙아시아로 이동하다 혹한의 추위에 가족을 잃어야 했던 슬픈 이야기가 읽혀 마음이 먹먹하다.

그러던 중 사회인이 되고 2006년, 고구려 유적지를 볼 기회가 생겼다. 장수왕릉으로 추정되는 무덤을 보며 교과서에서 본 모습과 비교해보고, 나아가 피라미드의 위용을 가늠해보기도 했다. 광대토대왕비는 당시 한국인 관광객에게 직접적인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등 예민하던 때라 그냥 비석에 새겨진 내용은 둘째치고 감정적으로 억울한 마음에 중국 정부를 욕하고 비석 관리인을 째려봤었다.

중국이란 땅은 가도 가도 옥수수밭이 끝이 나지 않았다. 이것이 대륙의 스케일이구나 놀라워하는 것도 잠시 정작 화장실이 급해 옥수수밭이 필요할 땐 땅콩밭만 보여 동료들과 멋쩍어하며 나직이 앉아 소변을 볼 수밖에 없었던 부끄러운 추억도 생각난다.

여행의 끝이 가까운 어느 날, 느닷없이 차를 세우고 현지인들과 물놀이를 했었지. 어린아이들은 홀딱 벗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고, 중년의 남성들은 새하얀 면 팬티를 입고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70년대 텔레비전에서 보았음직한 스타일이라 참 정겨웠었는데. 송화강 지류였는데. 현지 가이드가 드라마 주몽의 소서노 이야기를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미 동북공정이 시작된 후라서 어느 작은 성의 호적을 가졌을 재중동포 가이드는 고구려에 대한 설명을 마친 후 자신은 '중국인'이라고 못을 박았다. 비교적 순진했던 내 마음에도 총체적인 의미의 안타까움과 억울함의 못이 박혔다.

"메가실속 상품이야. 최대한 저렴한 값에 다녀오도록 애써 볼 테니 서둘러 입금해."

언니, 언니 아들 초2 정운, 오빠네 아들 중3 용하, 초6 용현, 우리 집 딸 초6 송현, 초5 송주, 그리고 나. 이렇게 백두산 탐방팀이 꾸려졌다. 여행을 계획하고 '광개토 대왕', '장수왕', '고구려', '고려', '독립운동' 등에 대한 책을 읽으라고 말은 했지만 정작 역사에 관심이 적은 내 딸들은 전혀 그와 관련한 책을 읽지도 않았다. 도서관이 바로 옆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아이들을 기르며 독서교육에 관해선 딱 포기한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책의 종류, 둘째는 책의 두께이다. 그러고 보니 송현, 송주 두 아이는 두께 상관없이 문학류만 읽는다. 5학년 송주가 백두산에 물이 있냐고 물어 엄마를 많이 당황스럽게 했다. 이로써 우리 집 두 딸의 역사 지식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여지며 이후 있을 '지식 자랑 대잔치'에 소극적으로 참여하겠지 싶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오빠네 용현이가 제법 역사적인 지식이 있을 터였다. 근래에는 역사 과목 문제풀이를 하는 용하형 옆에 앉아 세 살이나 어린 녀석이 딱 봐도 정답이 몇 번이네 어쩌네 잘난 척을 한다고 했다. 과장해서 말하면 용현이는 역사학자가 될까도 싶은데 이번 여행을 통해 진로에 대해 고민을 더 해보겠다나. 진로만 정해진다면 넉넉지 않은 살림에 학원비 모아 보내는 이번 여행 경비가 뭐가 아깝겠나 싶다.

막내 정운이만 엄마와 이런저런 책을 빌려 읽는 눈치였다. 원래 정운이의 지식 자랑 영역은 '의료', '과학 상식'이다. 엄마가 의료인인 덕에 어릴 적부터 집에 있던 의료 서적을 자주 접하며 호기심을 보인다 했다. 자신이 읽은 과학 상식에 관해 꼭 잠자기 직전에 퀴즈를 내고 한바탕 설명을 한 후 졸음에 비몽사몽하는 엄마의 시원치 않은 답변에 타박을 한 후 자신의 지적 능력에 스스로 뿌듯해하며 잠에 드는 게 그 집의 일상이라나 뭐라나. 그러나 역사인물 중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에 대해선 공부해서 아는 체할 것이 있겠지.

한반도가 폭염에 끓던 날은 출국 3일 전이었다. 나름 역사교육을 주제로 떠나는 여행인데 사전교육을 너무나 하지 않은 거 같아 점심을 우리 집에서 간단히 먹고 사전연수를 갖기로 했다.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한창 낮에 요리를 해대니 있던 그나마 있던 총기가 다 달아날 것 같이 정신도, 눈빛도 몽롱하다. 어쨌거나 이번 여행을 계획한 당사자로서의 부채감을 줄이기 위해 지도를 그리고 동이족의 이야기부터 현재 우리나라의 통일 정책의 내용 중 하나인 시베리아 열차까지 얕은 지식을 쭉 나열했다. 지난 강릉 여행에서 오해가 생겨 나를 보면 입을 실죽 샐쭉대는 용현이 녀석이 보란 듯이 빨리 끝내라는 듯 집중을 안 했다. 녀석의 엄마, 나에겐 올케언니가 보고 있던 터라 내 체면이 좀 그렇지만 애써 태연한 척한다.

'좋다, 이 녀석아! 너랑 나랑 1 대 1이다.'

여행이 가까워질수록 그 코스를 이미 경험한 나로서도 슬슬 엄살기가 올라온다. 4시간 안팎으로 장시간 이동 거리에 허리가 온전할까 싶기도 하고, 멀미를 하는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참아내려나 싶고 걱정이 된다. 여행이 아니라 역사체험학습임을 누누이 말했음에도 한창 여자친구가 생겨 실시간 안부를 주고받아야 하는 용하는 재미는 없고 힘들기만 할 것 같은 여행에 대해 툴툴댄다. 괜히 간다고 했다나 뭐라나. 이미 돈 다 냈는데 어쩌란 것이냐고 따져 묻는 올케언니의 성화에 꼼짝없이 짐을 싸고 있다고 했다.

"이건 여행 아니야. 역사 공부하러 가는 거야. 하루에 4시간씩 차 타면 허리가 끊어지는 일정이야. 엄청 힘드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

우리 집 아이들은 4박 5일 여행에 맞추어 당일 입을 옷을 봉지 봉지 담아 짐을 꾸렸다. 속옷과 양말도 모든 봉지마다 담겼다. 며칠 후면 17~26도의 날씨 속으로 장소를 이동하니 오늘의 역사적인 폭염도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우리 가족 7명을 포함하여 총 5팀, 23명이다. 하필 내가 가장 먼저 예약을 했다는 이유로 단체비자 1번이다. 단체비자를 가졌다는 책임감으로 출국장, 탑승 게이트, 시간 등의 과정을 잘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무사히 중국에 도착해서 현지 가이드를 보니 반갑다.

그러나 아뿔싸! 도착한 대련은 너무 더웠다. 바닥에 들러붙을 것만 같았다. 12년 전에 왔을 땐 성해 광장 경사지에서 미끄럼도 재미있게 탔었는데... 관광이 전혀 의미 없을 정도로 생존이 위협받는 더위다. 언니는 자꾸 체구가 작을수록 열사병에 취약하다고 겁을 준다. 9살 정운과 11살 송주의 작은 체구가 마음에 걸린다. 대충 단체사진을 찍은 후 전망 좋은 곳에 으리으리하게 지어진 아파트값이 5억 안팎 하지 않겠냐는 가이드 말을 들으며 아이스크림을 빨고 천국으로 올랐다. 여행 내내 우리에겐 에어컨 빵빵한 버스가 천국이었다.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우리를 태워 나른다 해도. 에어컨이 너무 빵빵해 냉방병에 걸려 훗날 복통에 여러 날 시달려야 했음에도...

원기충전! 내일부터 북쪽으로 Go!

 성해 광장 너무 덥다. 내려와라!
 성해 광장 너무 덥다. 내려와라!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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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모, 고모, 조카, 딸, 아들로 불리는 7명의 가족이 고구려유적지와 백두산 탐방길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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