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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취임과 함께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서 엄숙히 선서"한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이중적이다. '개별적·독립적 헌법기관으로서의 의원'과 '정당 조직원으로서의 의원'이다. 두 역할은 상충한다.

무엇이 우선일까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홍문종-염동열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후, 염 의원이 밝은 표정으로 동료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체포동의안 부결... 표정 풀린 염동열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홍문종-염동열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후, 염 의원이 밝은 표정으로 동료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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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이 우선이다. 얼마전 있었던 자유한국당 두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은 독립적이며 개별적인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의 표결 결과였다. 당시 113석의 자유한국당 의석수를 넘어서는 반대표가 나왔다(홍문종 - 141표, 염동열 - 172표). '민주당에서 이탈표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지만 최소 20표 이상의 '반란표'가 나오지 않고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국회가 제 식구 감싸기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것은 자가당착이며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다"라고 했지만, 그게 사실이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동업자 의식'을 발휘한 셈이다. "이런 식이면 모든 국회의원이 조사대상"이라거나 "지역 민원 때문에 고민하는 건 국회의원의 고통"이라는 당사자들의 호소가 동료의원들의 심금을 울렸다.

당론 투표로 대표되는 정당집단주의가 '독점과 배제의 정치'는 물론 '대립과 교착의 의회정치'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원인이라면, '권고' 당론조차 따르지 않은 그들의 행동은 '헌법기관'으로서 바람직하다. 문제는 국민적 공감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느냐다. 국회의 자기 식구 지키기나 자정 노력 부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정말 그래야 할 때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제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많은 국회의원들이 당론에 충실한 '정당 조직원'으로서의 역할을 우선했다.

이미 시한을 넘긴 후반기 국회 원 구성부터 그렇다. 9월 정기국회까지 국회 지도부 공백 상태가 우려된다. 5월 말까지 국회 의장단 구성을 완료하도록 한 걸 헌법기관으로서 지키지 못했지만 어느 누구도 걱정하거나 사과하지 않는다. 직무유기다. 현재 국회에 1만여 건의 법안이 계류 중인 건 차치하더라도 청문회 없이 경찰청장이 바뀔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이 6.13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가운데 15일 오후 국회 예결위회의실에서 비상의총을 마친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현수막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 '잘못했습니다' 무릎 꿇는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이 6.13지방선거에서 참패한 가운데 15일 오후 국회 예결위회의실에서 비상의총을 마친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현수막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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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유기'와 '식물국회'의 일상화

대한민국 국회의 오래된 관행이 된 '합의 지향형 규정' 때문이다. 원내 교섭단체와 원내대표로 불리는 정파간 협의와 합의를 통해 법안 처리 여부와 의사일정이 정해진다. 법적 강제규정이라도 여야 협의와 합의가 없으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만장일치형 국회운영'이지만, 여야 합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국회'다. 새로운 국회가 구성될 때마다 "가장 빠른 개원"이니 "역대급 지연 개원"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건 개원조차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헌법기관이 헌법과 법률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책임의회'의 포기다. 책임의회는 '문제제기'의 국회가 아니라 '문제해결'의 국회다. 국민 삶의 문제해결을 위해 적절한 입법 선택과 결정이 적절한 시점에 이뤄지려면 '당론투표의 최소화'와 '다수결 원칙의 존중'이 필요한데 우리 국회에는 이게 없다. 당파적 이익이 국민적 이익에 앞서는 거다. 

이번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이 2017년 12월 13일 완료됐어야 했지만 올해 3월 초 예비후보 등록 때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예비후보들은 자신의 지역구도 모른 채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광역의원 정수와 선거구 그리고 시도별 기초의원 총 정수를 국회가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년 전 총선 때는 선거구 획정이 늦어져 선거구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헌법기관으로서 정해진 걸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 오늘 우리 정치와 정치인의 수준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민주화 30년의 한국 정치가 청산해야 할 '적폐 1호'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는 출발점은 정해진 걸 제때 행하고 제대로 지키는 일이다. 정치는 곧 약속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액션의 정치개혁과 개헌

정세균 국회의장이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정족수 미달로 대통령 개헌안 투표 불성립을 선포하고 산회를 선언하자 표결에 참여했던 여당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 대통령 개헌안 정족수 미달로 사실상 부결 정세균 국회의장이 24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정족수 미달로 대통령 개헌안 투표 불성립을 선포하고 산회를 선언하자 표결에 참여했던 여당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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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회 정치개혁특위와 그후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위'도 논의를 거듭하는 모습만 '연출'했다.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이 늦어진 건 광역의원 정수 때문인데 여야가 증원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몇 명을 늘릴지를 놓고 합의점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지방의원 총수를 유지하면서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의 기능을 조정하는 방향은 고려하지도 못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이 무엇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선거제도가 돼야 하는지는 아니었다. 광역의원 선거제도를 놓고 대립하는 거대 양당이 기존의 2인 선거구를 대폭 줄이고 3~4인 선거구를 늘리는 기초의원 선거제도 개선안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같은 입장인 걸 보면, 결국 무엇이 자신에게 유리하냐가 기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헌정특위는 3월 말 청와대 개헌안 제출 이후 사실상 논의가 중단됐다가 4월 16일 제14차 전체회의가 마지막 회의였다. 사개특위 위원장조차 "개혁과제에 대해 제대로 논의조차 어려웠다"라고 말할 정도로 사법과 정치 개혁 과제가 지난 2년간 제자리 걸음을 벗어나지 못했고 앞으로도 전망이 밝지 않다. 

국회의 개헌논의 실패는 '협상과 타협 그리고 제도설계능력의 부재'를 상징한다. 총론에 공감하면서도 구체화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과 자유한국당 개헌안의 목표는 '제왕적 대통령제'로부터의 탈피다. 모두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한 권력집중에서 수평적 분권을 지향한다. '대통령 권력의 분산과 국회권한과 기능의 확대'가 핵심이다.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정당 조직원으로서의 역할과 이익을 우선한 게 실패에 결정적이었다.

4.13 총선을 이틀 앞두고 11일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되고 있다.
▲ 주인 기다리는 배지 4.13 총선을 이틀 앞두고 11일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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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추천제가 출발점일 수도

'총리의 국회선출'(변형된 의원내각제) vs. '총리의 국회동의 대통령 임명'(제왕적 대통령제의 8년 연장)의 대립은 두 개의 상충되는 국회의원의 역할 중 어떤 게 우선됐느냐를 보여준다. 한쪽에서 총리는 대통령의 정치적 보조 장치다. '현재 권력'이자 미래 권력으로까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연한 정치적 선택이다. 다른 한쪽에서 총리는 독자성을 일부라도 갖는다. 당분간 대선승리는 어렵지만 원내 1당 가능성을 가진 정파의 합리적 선택이다.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 역할이 우선됐다면 '국민직선 대통령과 총리 추천제'는 개헌논의와 타협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다. 여야가 대통령 권력 분산에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정도의 차이기 때문에 총리 역할과 권한에 초점을 맞췄다면 분권 그리고 견제와 균형을 통한 협치의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가장 낮은 수준부터 출발한다면 '국회의 총리 복수추천과 대통령 지명 그리고 해임 건의권을 가진 총리'가 가능하기도 했다. 헌법기관이자 정당 조직원으로서의 국회의원의 이중적 역할, 이제는 균형을 찾아야 한다. 국회의원과 정당의 각성과 노력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명호님은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7-8월 합본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국회,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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