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 후보 선거 사무실에서 지방선거 캠프해단식에 참석해 발언을 마치고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안 후보 선거 사무실에서 지방선거 캠프해단식에 참석해 발언을 마치고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자유한국당 심판 선거라고 하지만 우리는 아예 존재감조차 없었다는 게 더 뼈아프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여러모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 최고의 선대본부장"이란 페이스북 글로 논란을 불렀던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이 22일 원내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내놓은 일성이다.

국민의당 시절부터 "조리사는 그냥 동네 아줌마", (파업하는 이들은) 미친놈들"과 같은 막말로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냈던 그 이언주 의원이 "당의 존재감이 아예 사라진 상황"이라며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저 일성이 누구를 질타하는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다시 바른미래당으로, 이 의원이 당적을 옮길 때 한배를 탔던 안철수 전 서울시장 후보, 그와 더불어 6.13 지방 선거 직후부터 '잠행' 중인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말이다. 진보정당인 정의당보다 못한 성적표를 든 바른미래당 내에서 이렇게 합당의 지분을 나눠가진 두 사람에 대한 질타와 내부고발이 끊이질 않고 있다. 

바른미래당 동작구청장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장진영 변호사의 '안철수 책임론'이 한차례 강하게 휩쓸고 지나갔으며, 당 안팎에서는 책임론과 더불어 "안철수 은퇴"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한 때 안 후보의 책사로 불렸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나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까지 안 전 후보의 "정치 은퇴"를 거론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에 '젊은 보수'를 대표하는 이준석 바른미래당 노원병 당협위원장 역시 안철수 책임론에 동참했다. 이준석 위원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전 후보와 유승민 전 공동대표 간 공천파동의 당사자이자 피해자 중 한 명이다. 헌데 안 후보를 겨냥한 비토 방식이 꽤나 독특하다. 방송을 통해 공개편지를 띄운 것이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고찰'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의 가치'

22일 방송된 jtbc <정치부회의>의 한 장면.
 22일 방송된 jtbc <정치부회의>의 한 장면.
ⓒ JTBC

관련사진보기


사람들만이 생각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지는 마세요/ 나무와 바위 작은 새들조차/ 세상을 느낄 수가 있어요

자기와 다른 모습 가졌다고/ 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달을 보고 우는 늑대 울음소리는/ 뭘 말하려는 건지 아나요/ 그 한적 깊은 산속 숲소리와/ 바람의 빛깔이 뭔지 아나요/ 바람의 아름다운 저 빛깔을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가 없죠/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죠/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이 필요 한 거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오연준의 <바람의 빛깔> 가사)

충정에서 나온 진심은 아닐 듯싶다. 진중하지만 풍자가 배인 고도의 '돌려까기'로 봐야 할까. 지난 6.13 재보궐선거에서 2위로 낙선한 이준석 바른미래당 노원병 당협위원장이 안철수 전 서울시장 후보에게 '공개편지'를 썼다.

22일 JTBC <비정상회담>을 통해 공개한 이 편지는 오연준이 부른 '바람의 빛깔'이란 노래 가사를 빗대 '안철수 정치'에 대한 일침을 놓는 내용이었다. 이준석 위원장의 정중한 말투가 꽤나 인상적인 편지의 서두는 이랬다.  

"일부 호사가들의 정계 은퇴와 같은 이야기는 흘려 들으시고 안철수의 변화된 모습을 바라는 민심에 주목해서 앞으로 우리 바른미래당의 화합을 위해 더 큰 정치 해주시리라 믿고 응원합니다."

일단 그 응원이 꼭 '정치 은퇴'를 적시하는 것은 아닐 듯싶다. 그럼에도 편지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아니 그보다 더 날카롭게 안 전 후보의 마음을 후벼 파는 글일 수 있다. 이 위원장이 가리킨 '인간의 탐욕에 대한 고찰'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의 가치' 속 '인간'은 안철수 전 후보일 것이요, '다른 사람'은 아마도 '억울하게' 공천파동을 겪은 본인과 낙선한 상계동의 구의원·시의원 후보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님, 이제 선거가 끝난 지도 1주일 여가 되었는데 마음은 추슬러지셨는지요? 저는 물론 실력이 부족해 낙선했지만, 우리 상계동의 구의원·시의원 후보들이 불필요한 공천 파동 속에 억울하게 주민들께 봉사할 기회를 잃었다는 생각에 아직 저는 밤잠을 설칩니다.

다시는 누군가가 황당한 아집으로 우리가 같이 정치하는 동지들과 그 가족들의 선한 마음에 못을 박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노래 한 곡을 신청합니다. 오연준 군이 부른 '바람의 빛깔'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번안곡은 누가 가사를 옮겼는지 인간의 탐욕에 대한 고찰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의 가치를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꽤나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글이 아닐 수 없다. 톤만 달랐지 '황당한 아집'이나 '선한 마음에 못을 박았다'는 표현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 위원장은 바른미래당을 이끌 '안철수의 변화'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을까. 그러기엔, 갈등의 골이 무척이나 깊어 보인다. 지난 21일 방송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한 이준석 위원장, 박종진 바른미래당 송파을 전 후보 등의 신랄함을 보면 딱 그랬다.

"먹고 살 걱정 없는 안철수, 밑바닥부터 훑으시라"

21일 방송된 JTBC <정치부회의>의 한 장면.
 21일 방송된 JTBC <정치부회의>의 한 장면.
ⓒ JTBC

관련사진보기


"(노원병에 공천) 신청을 (이준석 위원장이)혼자 했거든요. 그럼 당연히 줬어야 돼요. 그걸 안 주려고 계속 시간을 끌고. 이 두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왜 생겼느냐면, (노원병은) 안철수 후보가 나가서 된 거고요, 또 한 지역은 최명길 후보가 옷을 벗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몫은 국민의당 출신에서 가져가야 된다고 근본적으로 생각한 겁니다."-

"좋게 표현하면, 안철수 후보가 자기 사람에 대한 갈증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 지역이니까 내 사람을 심어야지, 어차피 내 사람이 안 될 이준석 후보한테 공천 줘봐야 나한테 도움 안 된다'라는 생각을 한 것 아닐까."

박종진 전 후보와 이날 <블랙하우스>에 함께 출연한 전 새누리당 예비후보 김태현 변호사는 각각 공천 파동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안철수 전 후보와 이준석 위원장은 지난 총선에서 노원병에서 맞대결을 펼쳤던 사이다. 결국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물리적 결합에서 비롯된 예고된 갈등이랄까. 

이들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 이후 전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사석에서 이준석 위원에 대해 "(공천이) 절대 안 될 것"이라거나 "(안 후보가 이 위원장을) 싫어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즉, 국민의당 출신 중에서는 '이준석은 절대 안 돼'라는 정서가 팽배했고, 그 중심에 지난 총선에서 상대 당으로 만나 치고받는 라이벌 관계일 수밖에 없었던 안철수 후보의 이준석 위원장을 향한 인간적인 앙금이 자리한다는 것이다.

물리적 결합은 완성됐으나 태생이 달랐던 두 정당의 한계는 그렇게 공천파동에 이어 지방선거 참패라는 결과를 낳았다. 합당의 최대 지분을 가진 안 전 후보는 칩거 중이다. 그 안 전 후보에게 이 위원장은 이러한 조언을 남겼다.

"이런 걸 한 번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먹고 살 걱정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정치라는 게 보여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걸 한 번 해 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안철수 후보의 지금 정치적 상황이라면, 부산에 가서 밑바닥부터 완전히 훑고 싶을 것 같아요.

동네에서 아이들이 와서 상담하면 상담도 해 주고, 하다 못해 동네 사람들이 와서 '밥 같이 먹자', '술 같이 먹자'하면 해주고. 이걸 한 번 보여줬으면 하는 게, 먹고 살 걱정 없는 사람이라면 도전해 볼만한 과제고, 전 그랬을 때 안철수 대표는 살 수 있다고 봅니다."


"먹고 살 걱정 없는 안철수, 밑바닥부터 훑으시라"는 이 위원장의 주문은 여러 차례 안 전 후보가 요구받았던 '험지 출마'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정치인 안철수'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이 위원장의 조언이, 안 전 후보에게 제대로 배달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새 원내대표 선출을 앞둔 '존재감 제로' 바른미래당의 변화와 함께. 


태그:#안철수, #이준석, #바른미래당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