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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특별조사단이 발표한 조사 결과는 충격 그 자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주요 재판을 놓고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심을 살 만한 정황이 있다고 한다.

이제 KTX 승무원 재판, 통상임금 재판, 통합진보당 재판 등의 사건에서 청와대 입맛에 맞게 판결을 거래했다면 법이 사람을 보호하는 장치인지, 억압의 수단인지 따져야 할 형편이다.

KTX 승무원 해고 무효 소송에서 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가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힌 재판 당사자 가운데 한 승무원은 자살했다. 잘못된 판결 때문에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났지만, 대법관들 중에 책임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정치 판사들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겠구나' 하는 걸 통감하는 순간이다. 이런 현실을 보며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한"(마25:43) 자들을 저주했던 예수님을 떠올려 본다.

예수님께서는 옥에 갇히신 적이 없는데도,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옥에 갇힌 자를 "지극히 작은 자"(마25:45) 중 하나라고 하셨다. 당시나 지금이나 옥에 갇힌 자들은 멸시를 받고 욕을 들으며 침 뱉음을 당하고 사회에서 격리돼도 당연하다고 보는 게 사회 통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법이 억울한 사람을 만드는 현실을 보셨던 모양이다. 생활고 때문에 혹은 우발적으로 지은 범죄 때문에 옥에 갇힌 이들, 변호사를 고용할 형편이 안 돼서 자신들의 지은 죄보다 훨씬 더 무거운 형벌을 받고 있다고 쳐 보자.

변호사가 있다 하더라도 판사가 법리를 잘못 해석하거나 외부 외압으로 판결을 잘못 내렸다면 어떡할 것인가? 무죄가 분명한데 옥살이 하는 사람, 집행유예를 줘도 되는데, 옥살이하는 사람, 1년이면 되는데, 10년을 옥살이 하는 사람 등등 억울해서 가슴을 치며 원한을 쌓아가는 사람을 돌아보라고 하신 이유를 이 시대는 곱씹어 봐야 한다.

우리는 흔히 교도소에 갇힌 자는 범죄자라고 말한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갇힌 것이니만큼 당연한 벌을 받는 것이라고 여기고, 그들을 달리 불쌍히 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내리는 판결은 어떤 방식으로든 허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재판정에서만 아니라 정치를 비롯한 사회 모든 영역에서 인간은 누구나 허점을 드러내며 산다. 정치와 법에 의해 희생되는 억울한 이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법에 명시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요구하고, 억울한 희생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적으로 교회의 정치력이 강력했던 시기일수록 작은 죄를 크게 부풀려 희생양을 삼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소한 종교적 문제로 교수형이나 화형에 처해지거나 추방을 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마녀사냥이 흔했던 중세시대가 대표적인 예다. 종교개혁자 칼빈이나 미국을 세웠던 청교도들 역시 비슷했다.

오제홍 지음, 생각비행 출판
▲ '한국 교회에 말한다' 책 표지 오제홍 지음, 생각비행 출판
ⓒ 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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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오늘날 한국 교회 역시 중세교회를 닮았다. 글자 하나도 오류가 없다고 보는 축자영감설에 기반한 근본주의의 득세는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과 맹목적 추종을 요구한다. 편협한 해석이 판을 치는 마당에서는 어떠한 아량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설 자리가 없다. <한국 교회에 말한다>는 이러한 한국 교회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열린 해석을 제시한다.

"영국 성공회는 성경은 '모두 옳다'라거나 '무조건 오류가 없다'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구원을 향한 메시지에는 오류가 없다"라고 명시한다. 기독교의 정통성을 지키되 각기 다른 분야에서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 25쪽

저자 오제홍은 한국 교회의 문제점과 사회와 교회 간에 쌓인 불신의 뿌리를 짚어온 젊은 신학자다. 그는 '성직자'라는 개념은 성경을 기반으로 해석된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정치 세력에 의해 확장된 오해에 불과하다며 목사가 강자가 된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한국 교회에서 목사가 강자가 된 것은 '성직자'로서의 역할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57쪽

저자의 분석처럼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지나친 성직주의는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력을 남용하게 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직분에 따른 위계적 질서를 당연시하기에 이르렀다. 만인제사장이라는 종교개혁의 산물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는 게 한국 교회 현실이다. 그 가운데 목사들이 종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이유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애초부터 평신도는 없었다"고 성직주의에 일침을 가한다.


"계급과 계층이 나뉜, 차별이 있는 사회를 지양하고, 모두가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다." - 202쪽

저자는 한국 교회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에만 갇혀 사회문제에 지나치게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지양할 것을 요구한다. 촛불 이후 우리사회는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시민들은 사회 곳곳에 켜켜이 쌓인 적폐를 청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형교회의 세습과 성범죄 등으로 지탄받는 교회 역시 이러한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액체와 같이 흘러야 한다. 워드는 고체 교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액체 교회의 형태로 역동적으로 흐르고 섞이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활동이 장이 되는 것이 곧 성경적인 참된 교회의 모델이라고 말한다." - 217쪽

정치와 사법제도의 억울한 희생자들을 돌보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는 교회야말로 영생에 들어가는 길이다. 억울한 자의 편을 들어주는 일을 감당하고, 약자를 위해 변호할 수 있는 교회야말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다.

교회는 약자를 돌아보고 변호하며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데 자원해서 나서야 한다. 그 길이 영화로운 길도 아니요, 힘이 든다 하더라도 교회는 그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 길이 거짓 속에서 진리를 찾는 방법이다.

책 표지에서 저자는 "한국 교회, 이대로는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동성애와 이슬람 등에 과잉 반응하는 모습은 중세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할지 모른다. '이대로' 갈 것인가, 변할 것인가! 중세교회보다 못한 한국 교회,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할 것인지 실천으로 보여야 할 때다.


한국 교회에 말한다 - 어떻게 거짓 속에서 진리를 찾아낼 것인가?

오제홍 지음, 생각비행(2018)


태그:#한국 교회, #기독교, #만인제사장, #평신도,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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