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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의 높은 자리를 차지한 권력자들이 부패나 비리 또는 사적 관계와 얽힌 정책 실패 등 큼직한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시민 사회와 언론에서 공무원을 질타하면서 사용하는 단골 메뉴가 '영혼 없는 공무원'이다. 근래 영혼 없는 공무원이 기록한 상한가는 단연 박근혜 정부 시절 벌어진 국정 농단 사건이며 그 후순위는 이명박 정부의 '사자방'으로 대표되는 대형 비리이다. 큰 권력을 가진 대통령과 장관 등의 고위관료들이 불합리한 지시와 명령을 내리더라도 실무를 담당한 공무원이 공직자로서 저항하고, 거부했더라면 그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대로 국민들은 비판을 했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적절한 충격을 주는 표현으로 영혼 없는 공무원을 선택한 것이다. 왜 공무원들은 영혼이 없다는 듣기 거북한 비판을 들어야 할까? 무엇이 문제일까?

공무원이 신념과 소신대로 일하지 못하는 '영혼 없음'은 많은 부분 현재의 법과 제도가 가진 속성에서 기인한다. 먼저 우리 헌법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하고 있고, 공직선거법에서는 공무원의 정치적 표현을 제한하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법적 환경은 공무원이 정부 권력자들의 불합리한 지시를 거부하는 것조차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하는 태도로 오도하게 만들었다. 국가 권력을 잡은 정권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공무원에게는 정치적 행위를 한다고 낙인을 찍기도 한다. 또한 '국가공무원법'에서는 공무원이 지켜야 할 '복종의 의무'도 명시하고 있다. 공무원이 소신을 가지고 일하기보다는 상급자의 지시에 순응하도록 하는 법적인 환경이 공무원의 영혼 없음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공무원의 근무 여건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장치들도 공무원의 영혼과 관계된다. 가장 강력한 장치는 성과주의제도이다. 성과주의제도는 공직 사회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도입되었으나 그동안 많은 논란만 일으켰을 뿐 효과는 의문이다. 성과연봉제, 성과상여금으로 대표되는 성과주의제도는 평가를 하는 상급자의 눈에 잘 들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그들의 눈에 잘 들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 가능하다. 하위직 공무원들이 영혼을 갖고 신념에 넘쳐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넘기 버거운 현실의 장벽이 존재하고 있다. 소신과 당당함이 만드는 소음보다는 평온한 침묵을 낳게 된다. 제도가 만든 공직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한 업무보고에서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이에 동의하지 않을 공무원과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우리의 법·제도적 환경을 점검해야 한다. 공무원들에게 소신과 신념, 열정과 자부심을 강조하기 이전에 그것이 가능한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영혼 있는 공무원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동반자가 되길 기대한다.


태그:#공무원, #문재인 정부, #성과주의, #공무원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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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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