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과도한 업무량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우체국 택배원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이러한 비극은 예전에도 발생했는데, 이번에도 피해자만 바뀌었을 뿐 사고의 원인과 내용은 그대로였다. 업무환경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과거 여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비가 살갗을 아프게 때릴 정도로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인터넷으로 화장품을 주문해서 금요일에 택배가 도착하기로 한 날이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짜증이 나려던 참에 택배 아저씨가 도착했다. 그런데 시계를 쳐다보고 깜짝 놀랐다. 무려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배송이 끝나가던 참이었는지 아저씨는 녹색 카트를 끌고 와 있었다. 당연히 몸은 비로 흠뻑 젖으신 채였다. 배송조회를 했을 때 낮 1시에 배송출발이라고 했었다. 그러니까 택배 아저씨는 낮 1시부터 밤 10시까지 택배를 배달하기 위해 온종일 뛰어다녔다는 말이었다. 택배 배송을 업으로 삼으시는 분들의 노고가 얼마나 큰지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이 부끄럽게, 나는 택배 배송 관련하여 갑질을 했던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배송 문의 센터 직원에게 항의를 했었다. 물품 받은 게 없는데 배송완료로 떠서 택배기사님께 연락해 보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엄연히 집에 사람이 있었는데 물품을 어디에 두고 간 건지 알 수 없어 화가 났고, 연락이 안 되는 건 더 화가 났다. 배송 문의 콜센터에 전화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물품이 경비실에 있었고, 그제야 내 행동이 참 개념 없는 짓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힘들게 일하시는 분을 한순간에 오해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경비실이 얼마나 멀다고 이런 걸로 화를 냈던 건지 얼굴이 뜨거워졌다. 만약 직장에서 타 부서와 협력하는 업무에서도 이렇게 행동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이런 일이 있었던 후에 밤 10시에 택배를 받았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택배일 하시는 분들께는 정말 감사드려야 한다. 안 그래도 요즘 총알배송을 외치는 곳이 있는데, 가만히 걸어 다녀도 땀이 줄줄 흘렀던 여름 날씨에 그 분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몸이 아파 출근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출근하라는 회사의 요구에 극단적 선택을 한 택배원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부당한 대우를 하는 곳을 그만두고 냉정하게 다른 직장을 선택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얼마나 서럽고 힘들었으면 그런 판단을 할 틈도 없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을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누군가 거리의 쓰레기를 청소해서 깨끗한 환경이 유지되고, 누군가 보안 업무를 해서 건물의 치안이 유지되고, 누군가 하루 종일 택배를 배송한 덕분에 내가 주문한 물건을 집 안에서 편하게 받아본다.

하루 쉬면 본인 몫의 배송량을 다른 직원이 맡아 일해야 한다는 사실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는 말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관련 업계 종사자 분들의 업무 환경이 하루빨리 개선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올해에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총알 배송이라는 구호에 둔감해졌으면 한다. 나에게는 택배 상자 1개이지만, 택배 아저씨에게는 밤 10시가 넘어서도 배달을 완료해야만 하는 몇 백 개 혹은 몇 천 개의 택배상자가 있을 테니까.  


태그:#사회이슈, #택배배송, #택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