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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아주 고약한 게 있다. "오래 살다보면 시어미 개수통에 빠져 죽는 것을 볼 날도 있다"라는 말이다. 이는 사람이 오래 살게 되면 별별 일을 다 보거나 겪는다는 말이다. 아무튼 내가 오래 산 탓일까?

2018년 4월 27일 하루는 감동, 감동, 감동의 연속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압권은 남북 양 정상이 처음 만나 다정히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 표지 시멘트 턱을 넘는 장면이었다.

2018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손을 잡고 건너고 있다.
▲ 손 잡고 군사분계선 넘는 남-북 정상 2018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손을 잡고 건너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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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29분 판문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한 지도자로서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으로 왔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을 반갑게 맞이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말한다.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김 위원장은 그 인사말에 즉답하면서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어었다.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정전 이후 남북을 갈라놓은 군사분계선(휴전선)을 남북의 양 정상은 마치 어린이들이 고무줄넘기 하듯이 넘나들면서 전 세계에 생중계로 보여주었다. 이날 남과 북 두 정상은 역사상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그 금단의 선을 두 번이나 함께 넘었다. 

내가 헤아려 보니 이 날 하루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군사분계선을 6차례나 넘나든 것이다. 아마도 후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군사분계선을 하루에 가장 많이 넘나든 정치지도자로, 그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오르지 않을까 싶다.

1969년 전방 소총소대장을 복무했던 나는 그 순간들이 그야 말로 천지개벽의 찰나처럼 느껴졌다. 지난 60여 년 동안 남북 양측은 서로 상대를 이 지상의 말 가운데 가장 험악한 말로써 비난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무장 게릴라로 체포된 김신조는 서슴없이 말했다.

"내레 000, 모가지 따러 왔시오."


군사분계선이 그어진 후 촉발된 남북간의 긴장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이 군사분계선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감옥에 갔다. 이 군사분계선은 우리 겨레에게 혈육간을 단절케 하는 원한의 선이요, 창자를 끊는 단장(斷腸)의 선이었다.

내가 군에 복무했던 부대의 주 임무는 '경계근무'로 병사들은 주간에는 잠을 자고, 야간에는 잠복근무를 했다. 날마다 부대지휘자들은 야간 근무자에게 군장검사 후 복창시키는 말은 "먼저 보고 먼저 쏘자" "졸면 죽는다" 등이었다.

그런 결과, 장마철 강물에 빠진 송아지가 살겠다고 강둑으로 나오다가 간첩으로 오인돼 총알을 벌집처럼 맞고 쓰러진, 결코 웃을 수만 없는 블랙코미디 같은 일도 있었다.(관련기사  : 무장간첩? 부대 비상태세 돌입! 결말은...)

부대 곳곳에는 '때려잡자 000' 등 적개심에 가득 찬 말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런 시절을 온몸으로 살았던 나는 두 정상이 다정히 손을 잡고서 군사분계선을 하루에 두 번이나 함께 넘는 장면을 보자 이 날은 '시어미 개수통에 빠져 죽는 것을 볼 날'보다 더 충격적이요, 또한 감동적인 날이었다.

나는 이 장면들을 TV 생중계로 보다가 너무나 느꺼운 마음에 언저리 몇 분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은 좋은 날입니다. 박도"

어제 자정까지 내 손전화에 온 문자 답신을 순서대로 적어본다.

"네. 오늘은 좋은 하루네요." - 김기중(구미 삼일문고대표)
"네. 좋은날입니다." - 이준호(오마이뉴스 기자)
"참 좋은 날로 역사에 남기를…." - 김병하(대구대학교 명예교수)
"예, 기쁜 날입니다." - 정운현(언론인)
"그렇습니다. 죽음과 고난의 세월 끝에 맞는 평화의 새날, 온 겨레가 힘을 모아 굳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 염무웅(문학평론가)
"꼭 성공적인 결과를 냈으면 합니다." - 장세윤(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
"오늘은 일을 해도 피곤치 않네요." - 김지현(오마이뉴스 기자)
"네, 재인님과 정은님이 만나 평화.번영.통일의 공동선언을 온 세계에 약속한 날입니다." - 김태동(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끝으로 강 건너 여주에 사는 농사꾼 홍일선 시인은 시를 한 수 지어 보냈다.

바로 옆
- 2018. 4. 27.
                   여강농인

저기 경계가 아스라하다
이 쪽과 저 쪽을 편 가르던
한 형제이면서
한 향제일 수 없는
일단정지! 발포 할 수 있다는
강고한 철책선들이 무안해 하는데
나 오늘 우리 집 바로 옆
도리 43번지 창식 아우네 밭
호미 들고 다녀왔다
감자 싹 잘 나왔나 보려구 슬쩍
다녀왔다
지척 경계 다녀왔다
그 때 알 품고 있던 어미닭 울음소리
실로 장엄하였다
애기똥풀꽃이 나 보더니 고개 숙였다   



태그:#판문점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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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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