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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 책표지.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 책표지.
ⓒ 글담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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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죽다 살아나기도 했고, 쫄딱 망해도 봤는데 그래도 가장 힘들었던 때는 내 딸이 중환자실에 있던 그 며칠이야. 애가 힘들 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거 그거 정말 미치겠더라. 중환자실에 있으니 면회 밖에 못하잖아. 옆에서 손만 잡게 해줘도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더라.

정말 많이 후회했지. 공부가 전부인양 잔소리했던 것을. 공부 같은 건 못해도 좋으니 옆에만 있어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더라. '자식은 어떤 모습으로든 부모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한다. (신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싶고. 그런데, 그랬음에도 어느새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잔소리하고 있는 거야. 그때가 생각나 꾹꾹 참곤 하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은 자식 앞세운 부모들이란 생각이야. 세월호(희생자) 부모들처럼 사회적 문제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더더욱 그렇겠지. 전문가들에 의하면 한 사람의 죽음은 배우자나 다른 가족 등 주변 사람 여덟 명에게 죽음까지 선택하게 하는 그런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해. 그 말대로라면 세월호나 구의역 김군 사고, 제주도에서 일어난 현장 실습생의 죽음처럼 일부 사람들의 욕심이나 안전 불감증, 사회적 관리나 시스템 부족 등으로 걸핏하면 희생자가 나오는 우리 사회는 참 불행한 사회인 거지."

'부모에게 자식은 어떤 존재일까?' 단편적인 설명으로 절대 부족할 그런 존재이자 영원한 숙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내게 내 아이들은 어떤 존재일까?'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글담출판사 펴냄)에서 '폴 고갱'의 이야기를 읽노라니 몇 달 전 친구와 '자식'을 주제로 나눴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책에 의하면 폴 고갱이 이혼을 당하면서까지 선택했을 정도로 꿈꿨던 화가로서의 길, 그 길을 꺾게 한 것은 자식의 죽음이었다.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1897.보스턴미술관)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1897.보스턴미술관)
ⓒ 보스턴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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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은)1897년, 장녀 알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깊은 절망에 빠지면서 자살을 결심합니다. 그때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그는 한 달 만에 그림을 완성하고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칩니다. 그로부터 6년 후 고갱은 1903년 55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화가로서의 20년은 고갱에게 외로운 사투였습니다. 얼핏 보면 그는 자유롭게 산 사람처럼 보입니다. 가족도, 친구도 버리고 고향을 떠나 원시의 섬으로 들어간 화가니까요. 하지만 그런 고갱에게 딸의 죽음은 엄청난 고통과 상실감을 주었습니다. 고갱은 이 작품에서 죽은 딸을 추모하면서 인간의 일대기를 한 화면에 담았습니다.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오른쪽의 아기는 탄생기, 중간은 선악과를 따는 장년기, 그리고 왼쪽은 노년기입니다. 뒷편의 푸른 동상은 타히티의 죽음의 신 '히나'의 동상으로, 동상을 등지고 두 손을 모은 여인은 죽은 딸 알린입니다. 오른쪽의 검은 개는 고갱 자신이고요. - 163~166쪽


화가의 길을 선택하기 이전 주식중매인이었던 폴 고갱(1848~1903, 아래 고갱)은 남다른 촉을 발휘해 당시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많은 돈을 번 유능한 직장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화가로 먹고 살겠다'며 직장을 그만두고 만다.

그동안 취미로만 즐기던 그림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살았으며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고흐(1853~1890) 살아생전 판매된 작품은 단 한 점뿐(178쪽)일 정도로 그림이 돈이 되지 않은 시대였다. 모든 화가들이 가난했던 것만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부인의 반대는 당연했다. 그럼에도 직장을 그만 두었다는 이유로 이혼 당한다. 넷째를 임신한 상태로 이혼을 했다니 부인의 반대가 얼마나 심했을까 상상이 쉽다. 고갱의 대표적 그림인,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움과 휴식, 인간으로서 순수한 무언가 등을 느끼기도 한다는 '타히티의 여인들'은 이와 같은 진통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예술가들의 가십은 늘 흥미롭다. 작품을 이해하는데 좋은 힌트가 되기도 하고, 가십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이야깃거리다. 언젠가 고갱에 관한 짧은 몇 편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부자가 된 것은 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돈 많은 네덜란드계 여성과 결혼했기 때문이라는 것. 타히티로 간 이유는 현대 문명에 대한 염증 때문만이 아니라 프랑스 식민지였던 타히티를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던 한 소설에서 지상낙원으로 그렸기 때문이라는 것.

타히티에서 자신보다 20세 어린 여성과 결혼했으나 나중에는 자신의 성공 때문에 가정을 버리고 파리로 돌아갔다는 것. 그림 '타히티의 여인'들이 가능했던 것은 고갱의 순수한 화풍에서가 아니라 어린신부 덕분이라는 것. 파리에서 화려한 재기를 꿈꾸며 부단하게 뛰어다녔으나 실패하고 타히티로 되돌아갔으나 그 여성은 이미 다른 사람과 재혼 했다(?)와 같은 복합적인 상황으로 그가 죽기 몇 년 전 자살을 선택했다(?) 등과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미술 전문가가 아니니 진실 판단이 쉽지 않다. 책의 내용과 좀 다르다 싶은 이야기도 있으니 책 내용에 대한 의심도 당연하겠다. 그럼에도 읽어볼 만한 책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일 년에 한 달은 해외에 살며 미술관 탐방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일본을 다녀왔으며 앞으로도 해외에서 한 달 살기'는 계속될 예정(프로필 중에서)'이란 저자의 특별한 이력 때문이다.

미술관 탐방이나 예술가들이 살았던 미술 현장 가까이에 자주 머무는 그만큼 발로 뛰며 얻은 것들이나, 다른 책들은 들려주지 않는 것들을 그 어떤 책보다 많이 들려줄 것이란 기대는 당연하지 않을까?

고갱은 서머셋 모옴(1874~1965)이 <달과 6펜스>란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을 정도로 소설 같은 삶을 살았던 화가로도 유명하다. 고갱 이야기는 4장 '특별한 그림' 편에. 3쪽의 글과 두 편의 작품으로 고갱의 일생을 인상 깊게 들려준다.

 고갱 '언제 결혼할래?'(1892). 100년 가까이 루돌프 스태첼린 가문(스위스)에서 소유, 50년간 쿤스트박물관(스위스) 대여 전시되어 오다가 2015년 2월에 중동 카타르 왕족에게 약 3억 달러에 판매되었다고 한다.
 고갱 '언제 결혼할래?'(1892). 100년 가까이 루돌프 스태첼린 가문(스위스)에서 소유, 50년간 쿤스트박물관(스위스) 대여 전시되어 오다가 2015년 2월에 중동 카타르 왕족에게 약 3억 달러에 판매되었다고 한다.
ⓒ 카타르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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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현재 고갱의 '언제 결혼할래?'가 미술품 거래 사상 최고가인 3억 달러(약 3272억 원)에 거래,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이라는데, 미술을 모르기 때문일까? '그림만의 어떤? 무언가?'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고갱의 '언제 결혼할래?'처럼 화제의 주인공이 되곤 하는 그림들을 종종 접하곤 한다. 그처럼 비싸게 팔리는 가치나 이유가, 뉴스 주인공이 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술을 모르기 때문일까? 그런 뉴스나 그림을 접할 때마다 '작품의 가치보다 그 유명한 누가 그렸기 때문에?'와 같은 생각이 앞서곤 한다.

아울러 돈 많은 호사가들의 돈 자랑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유명한 그림이라는데 '나도 저 정도는 그릴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유치해 보이는 그림도, 유명한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는 그림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솔직한 고백이다.

이 책을 읽어볼 만한 책으로 권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유명한 화가들의 사소한 이야기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 설명은 물론 그 그림에 얽힌 사소한 이야기까지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모든 글들은 5분 남짓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모네 '인상,해돋이'(1872, 파리 마르모탕 모네미술관), '비난과 조롱으로 시작된 그림이지만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미술이 된 '인상주의', 그 용어를 낳게했다는 모네의 그림.
 모네 '인상,해돋이'(1872, 파리 마르모탕 모네미술관), '비난과 조롱으로 시작된 그림이지만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미술이 된 '인상주의', 그 용어를 낳게했다는 모네의 그림.
ⓒ 모네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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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의 눈동자를 특수 카메라로 확대해 보면 왼쪽은 'L', 오른쪽은 'S'자가 적혀 있는데 'L'은 'Leonardo', 'S'는 'Salai'라고 추측합니다. 이런 증거를 바탕으로 '모나리자'의 모델이 살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모나리자'의 모델이 누구인지는 추측만 난무할 뿐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정말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로는 새로운 재료인 유화로 그려진 데다 경계선을 흐리게 그리는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했고, 배경에는 풍경을 그렸으니까요. - 17~19쪽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의 작품들은 '인상에 의존해서 순간적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비난과 공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특히 모네(1840~1926)의 '인상, 해돋이'가 가장 심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인상'이라는 말은 이때 모네의 작품을 야유한 데서 나온 말인데, 아이러니하게 '인상주의'라는 미술용어가 됐습니다. - 132~135쪽

외에도 ▲셀카는 진짜 내 모습일까? ▲18세기 유럽 부자들의 쇼핑 목록 1순위는?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어떻게 프랑스로 갔을까? ▲빅뱅의 뮤직비디오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화 한 점이 차용됐다? ▲어떻게 똥 통조림이 다이아몬드보다 비싼 값에 팔리게 되었을까? ▲아이들의 낙서와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이는 그림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될까? ▲인상주의 화가는 미친 사람들? ▲정선이 죽마고우에게 바친 '인왕제색도' ▲조각 작품은 어떻게 진짜 스커트를 입게 되었을까? ▲물감을 뿌렸을 뿐인데 피카소만큼 유명하다고? ▲자신 부부의 성행위 장면을 사실에 가까운 조각으로 표현해 전시까지 한 미술가가 있다? ▲변기가 어떻게 미술작품이 되었을까?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덧붙이는 글 |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박혜성) | 글담출판 | 2018-01-25 ㅣ정가 15,000원



어쨌든 미술은 재밌다 - 그림을 어렵게 느끼는 입문자를 위한 5분 교양 미술

박혜성 지음, 글담출판(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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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에디터만 아는 TMI'를 연재합니다.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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