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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기 등 사무기기를 생산하는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반월공단 소재)에서 사내하청으로 일하는 유천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고용이 산 넘어 산의 시련을 겪고 있다. 유천산업은 캐논 안산공장에서 복합기 부품 조립·검사업무를 담당하는 사내하청업체다.

캐논과 도급계약을 맺은 협력업체 중 한 곳인 유천산업 노동자 41명은 올해 1월 22일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 불법파견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자신들은 원청인 캐논의 지휘 속에 일을 하고 있는 만큼, 캐논이 자신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요구했다. 

유천산업 노동자들이 5일 오전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과의 협상에 앞서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을 찾아 이삼근 지청장 면담과 퇴직금 승계 해결 등을 요구하고 있다.
 유천산업 노동자들이 5일 오전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과의 협상에 앞서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을 찾아 이삼근 지청장 면담과 퇴직금 승계 해결 등을 요구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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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지청은 2월 21일 캐논에 41명을 모두 직접 고용하라고 시정 지시했다. 이와 함께 41명의 직접고용 시한을 3월 30일로 못 박고, 이때까지 이행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 1인당 1천만 원, 총 4억100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결정했다.

안산지청이 이 같은 조치를 내린 것은 캐논이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파견법)을 위반하고 노골적으로 불법파견을 한 것으로 판정했기 때문이다.

유천산업 노동자들이 낸 진정서를 보면 유천산업은 독자적 기술 없이 캐논이 작성한 작업표준서에 따라 작업을 수행했다. 기계설비 또한 모두 캐논에서 무상 제공했다. 이름만 하청업체일 뿐 사실상 불법파견업체였던 셈이다.

캐논, 근로조건 서명해야 vs 노동자, 근속 등 승계해야

유천산업 노사협의회 노측위원은 3월 6일 캐논에 교섭을 요청했다. 같은 달 23일 사측은 유천산업 노동자들에게 27일까지 '캐논 1년 계약직'과 '자회사 정규직'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모두 캐논 1년 계약직으로 채용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유천산업 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하자 캐논은 전원 정규직 채용으로 계획을 바꾸고 28일 채용 공고를 냈다. 캐논은 공고문을 게시할 때 노동부에서 지시한 취업규칙과 임금체계를 공개하지 않은 채 사측의 근로조건을 제시하며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유천산업 노동자들은 캐논에 ▲근속 인정(경력인정) ▲퇴직금 승계 ▲캐논 정규직과의 임금차액 환수 ▲캐논 정규직 임금체계와 취업규칙 공개를 요구했다.

캐논이 정규직 고용 외에 어떤 조건도 들어줄 수 없다고 밝혔다는 게 노동자들의 설명이다. 유천산업 노동자들에게는 신입연봉(55세부터 임금피크제)을 적용하고, 퇴직금은 승계 책임이 없으며, 차별임금은 차후에 법적으로 해결하라고 통보했다.

그러면서 캐논은 유천산업 노동자들의 이 같은 요구를 근로계약 거부로 간주하고 4월 2일부터 이들의 출근을 가로막았다.

'피해 현격하다' 주장하는 캐논코리아

유천산업 노동자들이 손팻말을 통해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에 퇴직금 승계 등응 포함한 정규직 고용을 촉구하고 있다.
▲ "불법파견, 사과부터 하세요" 유천산업 노동자들이 손팻말을 통해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에 퇴직금 승계 등응 포함한 정규직 고용을 촉구하고 있다.
ⓒ 박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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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봉쇄당한 유천산업 노동자들은 안산지청을 찾아가 이삼근 지청장 면담을 요구하며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안산지청의 중재로 3일 오전 캐논 인삼담당자와 유천산업 과장, 노동자 대표가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하지만 캐논은 이튿날인 4일 유천산업 노동자들에게 보낸 개별 문자를 통해 '퇴직금 승계, 근속연수의 소급 적용, 경력직금 별도운영은 당사 정규직과의 형평성 문제로 수용이 불가능하다'며 '이미 생산차질에 대한 피해가 현격히 나타나고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어 '6일까지 정규직 고용에 대한 의사표현이 없는 경우 신규인원에 대한 채용절차를 게시하겠다'고 통보했다.

캐논코리아가 유천산업 노동자 측에 보낸 공고문 내용.
 캐논코리아가 유천산업 노동자 측에 보낸 공고문 내용.
ⓒ 제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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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에서 제시한 근로계약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별도로 신규채용을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유천산업 노동자들은 정규직 고용에 대해서만 동의하고 있는 상태다. 노동자들은 일단 오는 9일 출근해 사측과 정규직 고용을 확인하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예정이다.

유천산업의 한 노동자는 "불법 사내하청 문제에 대해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며 "그동안 일한 근속도, 퇴직금도, 차별임금도 모두 포기하지 않으면 정규직이 될 수 없다는 캐논 입장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태그:#유천산업 노동자,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불법파견, #사내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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