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성폭행 주변에서 종종 목격되는 침묵은 폭행한 사람의 권력을 더 강화한다. 그러므로 침묵을 깨고 가해자 -피해자 간에 소외된 관계를 다시 잇는 일은 종종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꼼짝 못하도록 묶어두고 불리하게 작용하는 권력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아주 중요한 발걸음이 된다. 이는 관계 안에서 보다 더 큰 정의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이자, 피해를 끼친 사람이나 피해를 받은 사람 모두를 변화시키고 치유하기 위한 발걸음이다." - 228쪽

여성.노동.시민단체가 미투운동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미투 운동의 본질을 축소시키려는 움직임에 범시민대책위의 의지 표명과 실천은 적절한 행동이다. 침묵의 카르텔이 깨져야 용서와 화해, 정의 실현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약자의 목소리 특히 여성의 목소리를 너무 오랫동안 외면해 왔다.

성추행애 대한 집단 은폐와 침묵을 고발한 논문 모음
▲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 성추행애 대한 집단 은폐와 침묵을 고발한 논문 모음
ⓒ 대장간

관련사진보기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불붙은 미투운동이, 2017년 10월 15일 미국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의 성범죄를 고백하고 그 심각성을 알린 데서 출발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저항하는 목소리는 있어 왔다.

한국에서도 2009년 영화배우 장자연이 성폭력과 성상납 강요를 주장하며 그들의 명단을 폭로하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권력과 금력, 언론과 법, 사회의 암묵적 침묵의 카르텔을 깨트리지 못했다. 그것은 서구 유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들 중 국제적인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 속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때문에 평화의 일을 수행함에 있어 여성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도록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그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침묵은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을 저버리고 운동의 방향성을 지속하지 못하도록 이끌고 있으며, 이 세상의 사람들 한가운데 꼭 필요한 평화를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 -190쪽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대장간)는 기독교 윤리학, 평화학, 교회론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존 하워드 요더(아래 요더)의 성추행과 성폭력 사건에 대해 다룬다. 그가 속했던 학교, 교회 지인들이 어떻게 부적절하고 미흡하게 대처해 피해자들의 상처를 깊게 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 논문과 보고서다.

요더는 교회공동체와 신학대학원이라는 특수성, 자신의 명성과 권위를 이용해 자신의 성추행과 성폭력을 교묘히 합리화하는 이론을 만들어 40여 명에 이르는 여성들을 성추행하고 8명에게는 성폭력을 행했다.

요더는 독신자들이 결혼한 이들 사이에 살며 비애정적 신체적 친밀감과 접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실험이라는 미명하에 제자, 지인들에게 성폭력을 저지른다.

당시 대학원 총장은 요더를 멘토로 생각하고 어려워했으며 학교와 공동체는 자기들의 명성을 지키고 싶어했다. 그들은 침묵의 카르텔을 견고히 하고 사건을 은폐하는 쪽으로 일을 진행한다.

8명의 피해자 고발에도 불구하고 요더가 몸담았던 학교, 교회와 기관들은 20년 요더의 행동을 비밀로 하는데 동의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정보를 통제하고 피해자들을 협박해 그들의 폭로를 무력화 시키는데 힘을 모은 것이다. 요더는 성추행과 성폭력 이후에도 근처 대학에서 강의를 계속했고 그가 출석하던 교회로 돌아가 생활했다.

해결되지 않은 요더의 성추행과 폭력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13년 존 하워드 요더의 성폭력이 남겨 놓은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분별하는 모임을 만든 여성평화주의자들 덕분이다.

그들은 '남성들은 여전히 성폭력 문제는 다른 평화 및 정의 관련 이슈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방관하는 태도에 낙심된다'고 안타까워 했다. 프란시스 교황은 오랫동안 종교 권력이 지켜왔던 침묵의 카르텔에 균열을 일으켰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그 백성 앞에서 희생자 여러분을 상대로 행해진 이 모든 죄들에 대해 슬픔을 표합니다. 그리고 겸손히 여러분께 용서를 구합니다. 여러분에게 행해진 성추행을 직접 고소하고 가족이 고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리더들이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한 점과 그들의 태만과 죄에 대해 여러분께 용서를 구합니다."


2014년 7월 7일 프란시스 교황은 성직자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섯 명의 희생자를 바티칸으로 초청해 용서를 구하는 설교를 했다. 성직자들이 저지른 성적 학대와 폭력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인 셈이다.

이제 성폭력에 대한 각층의 사회적 침묵의 카르텔은 깨져야 하고 용서와 화해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용서는 도덕적 채무를 변제해 주는 일이지만 무조건 '괜찮아'라고 말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변제를 위한 분명한 절차와 과정이 있어야 한다. 예수는 '주의 기도'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함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라'고 기도하고 있다. 때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기독교에 귀의해 신께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먼저 피해자에게 용서를 받지 않았다면 그는 용서를 받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용서라는 말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인지해야만 한다. 용서는 가해자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의 회복을 위한 노력과 배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용서는 게일 거버쿤츠 메노나이트 성경대학원 신학과 윤리학 명예교수의 말처럼 도덕적 정의를 바탕으로 '신의 자비에 근거한 회복적 정의를 실현한다'라는 의미인 것이다.

"용서는 정의를 추구하는 길이어야 하지, 정의를 저버리는 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 전 D 로스 편집/ 김복기 옮김/대장간/ 15,000원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 - 존 하워드 요더의 성추행과 권력남용에 대한 메노나이트의 반응

존 D. 로스 지음, 김복기 옮김, 대장간(2018)


태그:#성폭력, #존 하워드 요더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