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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부터 #WithYou까지, 간명한 해시태그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나도 말한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뜨거운 주목을 받는 것이 새로울 뿐, 낯선 풍경은 아닙니다. 여성들은 이전부터 온라인 공간에서 해시태그를 앞세우고 사회 곳곳에 숨겨져있던 성차별, 성폭력 문제에 대해 말해온 바 있습니다.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파편화됐던 여성의 목소리는 작은 태그 아래 모여 힘을 얻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3.8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의 해시태그>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그간 터져나온 여성들의 소중한 선언을 조명하고, 앞으로 전하고 싶은 목소리를 한 문장의 해시태그로 정리합니다. 해시태그는 프로그래밍 도구에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명령어' 앞에 사용하던 기호입니다. 우선,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시작'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5일 보도된 안희정 지사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서도 벌써 '정치 공작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성폭력 증언이 나오고, 피해자를 지지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공격이다.
 지난 5일 보도된 안희정 지사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서도 벌써 '정치 공작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성폭력 증언이 나오고, 피해자를 지지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공격이다.
ⓒ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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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괴롭지 않은 직업이 어디 있겠냐만 내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체 활동가다. 일을 해도 늦게 해도(안 하지는 않는다) 쓴소리를 듣는다. 가령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의 취임을 두고 비판을 했을 때, '젊은 날의 실수를 빌미로 능력있는 사람 발목을 잡는다'거나 '이제 막 출범한 정권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사소한 일로 발목 잡는다'는 식의 반응이 돌아왔다.

혹은 '홍준표한테는 한 마디도 못하더니 만만한 쪽만 공격한다'나 '안철수 쪽에는 왜 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느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지난 5일 보도된 안희정 지사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서도 벌써 '정치 공작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성폭력 증언이 나오고, 피해자를 지지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공격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단체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가려가며 성명을 내고, 활동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왜 이런 말들이 돌아오는 것일까.

여성단체 회원으로 활동하다 보면 한 번쯤은 듣게되는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는 '도대체 왜 여성단체가 이런 주장까지 하냐'는 거다. 남성중심 사회의 시선으로는 감지하기 어려운 은밀한 혐오나 차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때에 마주하는 볼멘소리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공교롭게도 대부분 남성이다.

이들은 여성단체가 사소하고 사적인 문제에 과잉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것도 폭력이면 무서워서 살겠냐'고 말한다. 평생 보지않던 눈치를 봐야하니 그것만으로도 '여성 상위 시대'가 도래했다고 투덜댄다. 그래도 요즘에는 조금 낫다. 정말 몰라서, 알고 싶어서 질문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예외의 여지가 없이 최악이다. '여성단체 뭐했냐'는 말이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앞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평소에 쓸데 없는 일로 남자들을 괴롭히더니) 여성단체 뭐했냐'다. 그나마 그 '쓸데 없는 일'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앙심을 품었다면 다행일 정도다. 대부분은 근거 없는 루머와 낭설을 듣고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며 비난한다.

기득권 박탈에 대한 짜증은 상식적인 판단까지 가로막는다. 두 번째는 '왜 우리만 괴롭혀' 유형이다. 어떤 일에는 벌떼처럼 즉각적으로 일어나더니 왜 다른 비슷한 사건에는 잠잠하냐는 식이다. 억측과 망상이 뒤따른다. 여성단체들이 특정 정치 세력과 야합을 하거나 그들로부터 이권을 얻기를 원해서 줄을 선다는 식이다.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미투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미투 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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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에 헛웃음이 나오는 이유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수사는 정치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낙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편과 네 편을 나눈 후, 누가 권력을 잡는가를 놓고 끝없이 대결을 벌이는 것 말이다. 그래서 성역없는 비판을 던지는 이들은 소신이 있는게 아니라 '배신자' 혹은 '적을 이롭게 하는 존재'가 된다.

발언의 의도를 의심 받는다. 사실 여성단체는 어떤 조직보다도 정치적인 집단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 단체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명제는 여성주의적 가치 실현이라는 것뿐이다. 민주주의, 노동, 대중 문화를 망라한 모든 영역을 페미니즘의 시각을 통해 접근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30년이 넘는 여성 운동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많은 변화 속에서도 이 원칙이 기각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내 눈에 보이지 않냐고' 자신있게 외치는 것도 씁쓸하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정치적 약자와 소수의 목소리는 기득권의 위치에서는 절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남성들이 여성단체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래서 듣지 않던 목소리가 들리니 시끄럽다고 말하거나 왜 이런 때만 떠드냐고 분노한다.

이들은 권력 관계의 기본적인 속성에 대해 완벽하게 무지하다. 자신을 사회의 평균이자 보편이라고 생각하기에 보지 못하는 것이 있으리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찾아보고 말하려는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켰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여배우들>에 등장한 고현정의 명대사를 곱씹는다.

"내가 쉴 때도 네 눈에 보이게 쉬어야돼? 일할 때도 네 눈에 보이는 데서 일해야 돼?"

여성운동이 다져온 기반

사실 여성단체가 지금까지 뭘했나를 찾아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여성운동의 역사를 다룬 좋은 책들도 있고 심지어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참고할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그 역사는 매우 방대하고 역동적이다. 80년대 후반 여러 여성단체들이 생긴 이래로 많은 것이 최초였다. 몇몇 사건을 계기로 90년대 초반, 한국이 성폭력 문제에 취약하다는 최초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는 이후 성폭력 특별법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1994년에는 서울대 신 교수 성추행 사건에 많은 단체들이 연대했고 지원했다. 한국에선 최초로 직장 내 성추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은 일이었다. 6년이 넘는 싸움이 펼쳐졌고, 피해자의 승소와 더불어 이후의 법률적 변화도 이끌어졌다. 현재 문화계와 연예계의 성폭력 문제에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미 2009년부터 여성 연예인 인권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극히 일부분만 다룬 것도 이 정도다. 여성운동이 걸어온 길과 미친 영향을 모두 이야기 하자면 아마 분량은 끝도 없이 늘어날 것이다. 물론 이 활동들이 항상 완벽한 성취를 거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혐오의 벽은 너무도 견고했다. 하지만 이것은 성폭력이고 성추행이며, 배제이고 혐오라는 처음의 목소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어떤 언어를 가지고 저항을 할 수 있었을까.

이 문제들에 이름을 붙이고 문제 의식을 사회 전반에 공유하려는 시도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성적 폭력과 추행이라는게 대체 무슨 말이냐'는 소리나 듣고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들불처럼 번진 미투 운동의 가장 큰 원동력은 피해자들의 용기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이 담대하게 발을 디딜 최소한의 여건을 여성운동의 역사가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여성단체는 분명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경상남도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는 2월 26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 규탄 및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 지지" 선언을 하면서 '미투', '위드유'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경상남도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는 2월 26일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 규탄 및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 지지" 선언을 하면서 '미투', '위드유'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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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성평등한 사회를 열고 싶다면

여성단체들은 이렇게 이어져 활동을 앞장서서 견인하는 한편 여전히 새로운 운동의 토석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여성이 마주한 문제를 아직도 심각할 정도로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유일하게 우려하는 것은 활동가들의 건강 뿐이다. 매년 총회에 참석할 때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해낼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예정된 사업이 많다. 단체의 사무실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얼마나 열심히 활동에 매진하는지. 이곳저곳을 쫓아다니면서 얼마나 활발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지 말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여성단체 뭐했냐'는 말처럼 무의미한 소리도 없다. 그렇게 현안에 관심이 많고 문제의식을 느낀다면 누굴 탓할게 아니라 그냥 자기가 직접 발을 벗고 나서면 되기 때문이다. 원인은 성폭력을 저지르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성추행을 하고 성차별적인 구조를 지속시키는 사람들에게 있다. 그들이 부당한 일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으면 된다. 만약 그런 목표가 달성된 세상이 도래한다면, 목을 놓아 부르던 여성단체는 어쩌면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미래를 위해 이미 노력하고 있는 사람과 조직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3월은 세계여성의 날이 있는 달이다. 이를 기념해 여성단체 중 한 곳을 후원해보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참고로 정기적으로 소식지도 보내준다. 여성운동이 무엇을 하는지 더욱 잘 알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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