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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에서 거론된 여성 시인들의 작품은 산문과는 결이 달라서 생경하지만 힘차고 거칠 것이 없었다.
 수업에서 거론된 여성 시인들의 작품은 산문과는 결이 달라서 생경하지만 힘차고 거칠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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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닐 때 현대 시문학사라는 이름의 강의를 들었다. 소설을 전공했고 시 쓰는 재주는 없지만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때 1980,90년대의 시 경향 가운데 하나였던 여성 시인들의 활약상을 처음 접했다.

수업에서 거론된 여성 시인들의 작품은 산문과는 결이 달라서 생경하지만 힘차고 거칠 것이 없었다. 좁고 궁색한 기숙사방에서도 시집을 펼쳐 들면 그 강인한 자아가 말을 걸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나도 드문드문하게나마 음성이 들리는 까닭은, 시인들의 용기와 담대가 시를 매개로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시와는 멀어진 채로 살면서도 내가 사랑한 시인들이 시의 세계에서 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난 2010년 최승자 시인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내 순진한 믿음이 완전히 틀렸음을 알았다.

포항의 한 정신병원에서 치료 중인, 체중이 겨우 34킬로그램이라는 시인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한 시절 가장 박력 있는 시를 썼던 그, 군사문화와 가부장제에 반기를 들며 자본의 허구를 파헤쳤던 그가 사라졌는데 누구도 빈자리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최승자 시인이 정신이 쇠약해지고 병마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말부터였다고 한다.

비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6년 평론가 황현산씨의 트윗에 박서원 시인의 이름이 거론된 것을 보고 나는 또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시집 <난간 위의 고양이>, <이 완벽한 세계>를 통해서 여성으로서의 상처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인정받은 시인이었다.

한 신문이 나서서, 풍문으로 떠돌던 박서원 시인의 죽음을 확인해준 것이 지난해 5월. 시인이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5년이나 지난 후였다. 문인은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쓸쓸한 장례를 떠올리면서 울음을 삼켰다.

다음 차례는 문단의 센세이션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반향을 일으켰던 최영미 시인이었다. 이사가 넌덜머리 난다며 마포구 소재의 한 호텔에 방을 제공받을 수 있는지 가부를 묻는 시인의 장난스러운 제안에 메이저 언론이 나서서 '시인 갑질 논란'을 조장했다. 이 과정에서 최영미 시인의 생활고가 세간에 알려졌다.

시인은 자신이 연간소득 1300만 원 미만 무주택자, 빈곤층,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라고 밝혔다. 베스트셀러 시인이라는 선입견 없이 차별하지 않는 세무서의 컴퓨터가 기특하다는 말과 함께. 논란이 필요 이상으로 번지자 관련 기사가 마구 쏟아졌고 그 바람에 신현림 시인의 고충도 함께 알려졌다. 시집 <반지하 앨리스>를 출간하고 사진전을 연 시인이 볕도 안 드는 반지하에서 10년간 살았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최영미 시인이 등장했다.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폭로를 이어받아 문단의 성폭력에 관해서 목소리를 냈다. 인터뷰 영상을 지켜 보면서 그제서야 비보를 들을 때마다 북받치던 슬픔, 분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여성 시인들은 자의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거쳐 천천히, 문단의 주변부로 밀려나면서 잊혔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왜 사라졌는지, 소리 내서 알리지도 못했다.   

밀려나고, 잊히고, 종국에 죽임당한 여성들

 지난 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최영미 시인이 문학계 성추행 사실을 폭로 하고 있다
 지난 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최영미 시인이 문학계 성추행 사실을 폭로 하고 있다
ⓒ Jtbc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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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미투 운동은 2년 전 트위터를 휩쓸었던 'OO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서부터 태동했다. 그 무렵 피해자들의 증언을 따라가는 중에 그들과 내가 입은 피해 사실이 한 데 덮쳐 괴로웠던 기억이 선명하다. 몇몇 장면이 떠올랐다. 일감을 주겠다고 불러내서 취했으니 자신의 사무실이나 차로 가자고 하던 출판사 대표, 처음 본 자리에서 뜬금없이 '네 꿈은 돈 많은 유부남을 꼬시는 거냐'고 묻던 고학번 선배, 강의 시간에 술판을 벌이고 제자들에게 섹스해본 적 있냐고 묻던 교수.

피해 사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서 내가 확인한 것은 재능있고 의욕적이던 여성들이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서 문단과 업계의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반강제적인 탈출을 감행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

여성들은 실제로 죽었고 또, 사회적으로 천천히 죽어갔다. 하지만 문화계 전반의 성폭력 사건을 폭로한 해시태그 운동이 SNS를 휩쓴 후에도 가해자들의 위상에는 변함이 없었다. 가해자들은 지금도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선생님이자 권위자로서 존경받는다.

그리고 서지현이라는 용기 있는 여성에 의해서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 벌써부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거센 까닭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반성폭력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에서 뒤처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정 정치 세력의 음모라는 주장마저 제기되는 가운데 나는 이 글 또한 대세에 편승한 무리한 주장 내지 성급한 일반화에 기댄 주장이라고 공격당할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문단이 여성 문인들을 공식적으로 쫓아내거나 몰아냈다는 구체적인 정황을 나열할 수 없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차별과 억압, 폭력은 그와 같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적인 영역에서 매우 은밀하게, 무시와 배제를 무기로, 약자성을 타깃 삼아서, 오랜 시간 교묘하게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침묵하고 자책하다가 무기력해지고 종국에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

이것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여성 예술가들이 주류가 되지 못하고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은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진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여성 예술가들이 주류가 되지 못하고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은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진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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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예술가들이 주류가 되지 못하고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은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진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세대와 국적을 막론하고 수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넘치는 영감과 용기, 독보적인 재능을 품고도 미치거나 죽어갔다. 1세대 페미니즘 소설가 에리카 종은 소설 <비행공포>의 한 구절을 쓰며 비극에 통감했다. 

'여성 작가들, 여성 화가들은 대부분 수줍었고 위축되었으며 정신분열증을 앓았다. 삶에 있어서는 소심했고 오직 예술 세계에서만 대범했다. 에밀리 디킨슨이 그랬고 브론테 자매가 그랬으며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고 카슨 매컬러스가 그랬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공작새를 키우며 엄마와 살았다. 실비아 플라스는 오븐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서 전설이 됐다. 누구를 본보기 삼아야 하는가?'


여성 예술인의 비극적인 생애는 슬픈 개인사, 전설 따위가 아니다. 나는 하루빨리 이 가슴 아프고 낡은 서사가 막을 내리고 맥이 끊어지기를 소망한다. 한때는 독자들의 자랑이었고 지망생의 본보기였으나 사라진 여성 문인들, 남성 연대의 득세에 떠밀려서 이름도 없이 소멸한 여성 예술인의 비보를 다시는 듣고 싶지 않다.

대신, 한국의 문학사 안에서 여성 시인, 여성 소설가, 여성 평론가, 여성 편집인, 여성 교수, 여성 원로 작가가 그들의 몫을 성취해내는 모습을 반드시 지켜보고 싶다. 미투 운동은 이 새로운 여정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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