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방학 중 교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는 학급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일이다.
 방학 중 교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는 학급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일이다.
ⓒ 픽사베이

관련사진보기


2018년 새해와 함께 겨울방학이 시작됐지만, 아이들 대부분은 학기 중과 마찬가지로 등교를 한다. 학교마다 방학 중 보충수업이 계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일과 역시 학기 중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하루 수업량이 네다섯 시간 안팎으로 줄었다는 것과 밤늦게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그런데, 방학 중 교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업무는 보충수업이 아니다. 학급 아이들의 학교생활기록부(아래 생기부)를 작성하는 일이다. 생기부가 완결되어야 비로소 한 해 농사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아래 학종)의 비중이 날로 커지면서 생기부는 위력에 있어서 수능을 이미 능가하고 있다.

대학입시 결과로 증명되고 있듯, 생기부의 '품질'에 따라서 내신 성적의 한 등급 차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극복해낼 수 있다. 아이들도 교사들도 생기부 작성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겨울방학 중에 교사와 아이들의 만남이 부쩍 늘어나는 것도 그래서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짜느라 오로지 생기부 작성을 위한 과목 개설까지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생기부 시즌이 되면 교무실은 들락거리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들 손에는 자신이 한 해 동안 했던 교내외 활동을 빼곡하게 적은 A4지가 들려 있다. 일부 교사가 생기부 작성을 위해 부러 적어오라고 시킨 것도 있고, 스스로 작성해 생기부에 기록해달라며 가져오는 것도 있다. 교사들은 그것들을 종합해 생기부의 빈칸을 하나둘 채워나간다.

덧붙일 게 있으면 메일을 통해 교사에게 보내기도 한다. 이맘때쯤 교사들의 책상 위는 아이들이 건넨 종이뭉치들로 수북하다. 우체국의 집배원처럼 건네받은 자료들을 내용에 따라 분류하고 요약하면서 생기부 작성을 위한 원자료가 생성되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전국 대부분의 학교가 이런 방식으로 생기부를 작성해나가고 있다.

언뜻 뭐가 문제인가 싶지만, 아이들의 손을 거치는 순간 생기부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교사로서 확인할 수 없는 자화자찬의 내용들이 많고, 심지어는 누군가에 의해 작성된 듯 의심이 가는 것들도 더러 있다. 듣자니까, 학교에서의 활동 내용을 간략히 적어오면 생기부의 형식에 맞게 대신 기록해주는 사교육도 실제 성업 중이라고 한다.

설령 사교육의 손을 빌린 것이라 해도 웬만하면 그대로 옮겨주게 된다. 그것들을 부러 걸러 내거나 무질러버리는 매몰찬 교사는 거의 없다. 교사가 일일이 다 기억할 수도 없는 노릇일뿐더러 본인이 그렇다는데 굳이 아이와 얼굴 붉힐 일 없지 않느냐는 생각에서다. 결국, 생기부는 화자만 달라졌을 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자기소개서와 하등 다를 바가 없게 된다.

다짜고짜 생기부 고쳐달라는 아이, 학부모까지 전화 걸어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한 아이가 자신의 생기부를 열람한 뒤 기록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수정해달라고 요구해왔다. 다른 곳도 아닌, 행동특성과 종합의견 항목에서다. 행동특성과 종합의견은 담임교사로서 한 해 동안 아이를 지켜본 뒤 그의 생활습관과 태도의 변화 등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최장 A4지 한 장 분량 정도로 기록하는 생기부 항목이다.

그는 자신을 잘못 본 것이라며 다짜고짜 고쳐달라고 했다. 자기 성격은 본인이 더 잘 안다면서, 생기부 기록만 보면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칭찬이었다면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이었을지라도 그렇게 발끈하지 않았을 텐데,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의 서술이 눈에 거슬린 것이다. 담임교사로서 문구 하나를 두고 아이와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조금은 참담했다.

그날 저녁 급기야 그의 학부모까지 전화를 걸어왔다.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 행동특성과 종합의견은 본래 담임교사의 주관이 일정 부분 개입될 수밖에 없는 항목인데, 그럼 어쩌란 말이냐며 반문했다. 생기부 기록의 문구 하나를 트집 잡아 학부모의 항의를 받아보기는 20년 가까운 교직생활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가장 눈 여겨 본다는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아래 세특)의 경우에는 요구가 더욱 노골적이다. 아이의 진로 희망에 따라 세특은 '기본 옵션'이 된다.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세특은 아이가 얼마나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의 내신 성적과 희망하는 진로가 무엇인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아이들의 성적과 진로에 따라 세특의 기록 여부와 내용이 일찌감치 결정된다. 솔직히 지방 사립대로 진학하는 많은 아이들에게는 세특이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 정원도 채우기 어려워 쩔쩔 매는 대학의 입장에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탓이다. 곧, 세특은 일부 상위권 대학에 한정된 문제로 좁혀지면서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한 아이가 자신의 진로를 고려해 필요한 사항을 글자 수에 맞춰 완벽한 글로 적어 보내왔다. 세특에 반영해달라는 것이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그런 내용을 수업한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수업태도가 좋았던 것도 아니어서 써줄 수 없다고 단박에 거절했다. 그랬더니 수업을 들은 후 스스로 찾아 공부한 내용이니 수업의 연장 아니냐며 거듭 요구를 해왔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재차 고개를 가로저었더니, 대뜸 '세특 때문에 명문대를 못 가면 억울할 것 같다'면서 울먹이는 표정을 지었다. 실상 '명문대 못 가면 책임질 수 있느냐'는 은근한 협박이었다. 적잖이 불쾌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한 명이라도 더 명문대를 진학시키려는 학교의 욕망이 생기부에 대한 아이들의 불안을 부추기는 숙주임을 알기 때문이다.

낯설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최상위권 아이들에게 학교는 철저히 '을'의 처지다. 설령 그들의 수업태도가 엉망일지라도 세특 항목이 비워져 있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진로에 맞춰 맞춤형 세특을 각 과목 교사들이 알아서 충실히 적어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그들이 다른 신경 쓰지 않고 수능 준비에 '올인'할 수 있도록 세특을 특별히 관리해준다고 한다.

교사가 생기부 고쳐 줄 수 밖에 없는 이유

급기야 아이들끼리 생기부의 양과 질을 비교하면서 요구가 날로 늘어만 가고 있다. 자율활동 항목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며 느닷없이 두툼한 자료를 보여주는가 하면, 뜬금없는 진로탐색 활동자료를 만들어 와서 기록해줄 수 없느냐며 부탁을 해오기도 한다. 누가 봐도 생기부 기록을 위해 급조된 티가 역력하지만, 한 줄이라도 써주지 않으면 토끼 눈을 부릅뜨게 될 것이다.

학교생활과 생기부의 기록은 공부와 시험 사이의 관계와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시험에 출제되지 않으면 공부를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기부 기록을 위해 학교생활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활동에 참여하기 전에 반드시 묻는 게 바로 생기부에 기록되는지 여부다. 생기부에 기록되지 않는 활동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고3이 되면 다급한 나머지 종종 앞뒤가 바뀌기도 한다. 학종에 대비해 필요한 기록을 먼저하고, 나중에 관련된 학교활동을 채워 넣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업 내용과 방식이 필요에 따라 즉흥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예정에 없던 수행 과제가 새로 부과되기도 한다. 이쯤 되면 학교생활기록부를 '학교기록생활부'로 순서를 뒤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생기부는 온전히 교사의 몫으로 남겨져야 한다. 아무도 기록 내용을 두고 간섭하거나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마감 전에 오·탈자 등의 오류를 찾아보라며 생기부 출력물을 아이들에게 열람하게 하는 것도 곤란하다. 그런 목적이라면 교사들끼리 교차 검토하면 될 일이다. 그것은 시험을 출제해놓고 아이들에게 교정을 맡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로부터 생기부에 기록할 자료를 건네받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학기 중이라면 또 모를까, 요즘 같은 겨울방학 때라면 아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교사가 수업시간이나 여러 창의적 체험활동 과정에서 지켜본 대로 메모하듯 그때그때 서술해야 의미 있는 생기부가 된다. 온갖 미사여구로 꾸며져 있다 한들 진솔함이 담겨있지 않다면 그건 판타지일 뿐이다.

기록해달라고 통사정하더니, 아이들은 자기 생기부를 자기가 스스로 썼다며 자랑한다. 그러면서 생기부는 이미 소설이 됐다고 조롱하며, 친구들 중에 생기부에 기록된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미 아이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한 생기부, 과연 그것이 아이들만의 탓일까. 교사들은 교권을 스스로 허물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태그:#학교생활기록부, #대학입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