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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던가. 강산이 네 번은 더 바뀌었을 격동의 시간을 지나왔지만, 그 무엇도 바느질을 향한 정순자 선생의 애정과 뚝심을 바꾸지는 못했다. 바늘을 벗으로 살아온 40여 년의 세월 동안, 그녀의 손을 거쳐 간 의복과 고객의 숫자는 셀 수조차 없을 정도다.

바느질 인생의 외길을 걸어오며 '장인'이라는 칭호를 얻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겸허한 자세로 새로운 바느질의 세계를 천착한다. 깊은 연륜과 내공으로 우리 전통의 명맥을 이어온 바느질 역사의 산증인, 정순자 선생을 만나 그녀의 바느질 인생사(人生史)를 꿰어보았다.

대담한 시도로 활동의 폭을 넓히다  

지난 11월 23일은 종로문화재단에서 운영한 '우리 옷, 한복이 보이는 보의낭(褓衣囊)' 프로그램 중 하나인 '배자 만들기' 수업이 막을 내리는 날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촌재에서 4주간 진행되었다.

박정욱 한복 디자이너의 지휘 아래 부지런히 재단하고, 바느질해 완성한 배자를 입은 수강생들의 얼굴에는 환희가 넘쳤다. 타고난 감각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박정욱 디자이너가 수업을 이끌어갈 때, 수강생들의 옆을 지키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것은 바느질 장인으로 손꼽히는 정순자 선생이었다. 바느질에 어려움을 겪는 수강생들의 옆에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고, 조언을 들려주기도 하면서 수업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었다.

직접 시범을 보여주며 바느질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정순자 장인
 직접 시범을 보여주며 바느질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정순자 장인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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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욱 한복디자이너와 함께해온 세월도 10년이 넘은 만큼, 두 사람은 눈빛만 봐도 통할 정도로 끈끈한 호흡을 자랑한다. 박정욱 선생이 디자인으로 큰 그림을 그리면, 정순자 선생은 그 그림의 폭과 깊이를 채우는 역할을 도맡아 한다.

"한복집을 하면서 박정욱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지금은 박 선생님의 작업들만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어요. 오랜 인연으로 이어지다 보니 이제는 박 선생님이 대충 그림만 그려줘도 다 만들어낼 수가 있어요. 서로 간에 쌓인 신뢰도 깊죠. 제가 손이 하나다 보니 많은 작업을 다 하지 못할 때도 있고, 기간 내에 완성을 못 할 때도 있는데 박 선생님은 절대 재촉하는 법이 없어요. 믿고 기다려주는 게 참 고맙죠."

오랜 인연으로 이어진 박정욱 한복 디자이너와 정순자 장인
 오랜 인연으로 이어진 박정욱 한복 디자이너와 정순자 장인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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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욱한복'의 대표이자, 국악인으로 활동하는 박정욱 선생과 함께 일하며 그녀는 자신이 펼쳐내는 바느질의 세계가 더 확장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박 선생님 부탁으로 공연 의상도 만들고 하다 보니 공연장에 선생님과 같이 갈 기회도 많았는데 막상 가보면 당장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이 보이잖아요. 그러면 즉흥적으로 뚝딱 만들어내시더라고요. 제가 그런 것들을 눈으로 보고, 겪으면서 영향을 참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시야도 넓어졌죠. 시대가 변하듯이 의복을 만드는 방식도 바뀌기 마련이잖아요. 선생님을 만나 색다르게 응용하는 방법도 배우고, 다양한 작업들을 많이 하면서 제 활동 영역의 폭도 넓어질 수 있었어요."

배자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는 수강생들
 배자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는 수강생들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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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분야에 매몰되지 않고, 변화무쌍하고 대담한 시도를 이어오며 그녀의 바느질 인생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었다.

"바느질 의뢰를 받으면,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해요. 원하는 바에 최대한 맞춰서 해주려고 하죠. 제 주변만 봐도 고객이 원하는 대로 다 소화해줄 수 있는 사람이 드물어요. 그에 반해 저는 다양한 작업들에 열려 있어요. 도전하고,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기질이 있다고나 할까요."

수업 이후 최종 완성된 배자
 수업 이후 최종 완성된 배자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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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녀는 자신의 손길로 만들어진 공연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른 예인(藝人)들을 볼 때면, 남다른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공연을 보러 가면, 제가 바느질한 의상을 입은 예술인들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제가 보고도 '내가 어떻게 저렇게 했을까?' 생각할 정도로 신기해요. '소재도 다르고, 디자인도 각양각색인 옷들을 그래도 내가 잘 만들어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게 돼요."

"남편과 다투는 시간도 아까웠다, 일 더 하고 싶어서" 

이번 배자 수업을 도우면서 그녀는 바느질을 배우던 지난 시절의 자신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어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한다.

"수강생 분들을 보니 문득 제가 바느질을 배우던 그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처음에는 모르는 것들이 많아서 부지런히 배우고, 시도해보곤 했었거든요. 수강생 분들이 열심히 배우면서 잘 해내시는 것을 보니 그때의 제 모습이 겹쳐지더군요."

최종 수업 후 기념촬영을 가진 박정욱 디자이너, 정순자 장인과 수강생들
 최종 수업 후 기념촬영을 가진 박정욱 디자이너, 정순자 장인과 수강생들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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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27대손으로 뼈대 깊은 가문에서 태어난 그녀는 전라남도 광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바느질을 보며 자란 그녀는 한복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다. 한복을 배우겠다는 뜻을 밝히자 어머니는 힘들다며 극구 반대했지만, 그녀의 의지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학원 선생님을 집에 모셔서 배우다가 나중에는 그것도 부족하다 싶어서 광주 시내에 가서 학원에 정식으로 등록을 했어요. 학원에 다니면서 전문적으로 한복에 대해서 배웠죠. 그런데 막상 나와서 배운 공식대로 하려고 하니까 실제 한복을 만드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더라고요."

배운 것들을 재료로 실력을 쌓아나갔고, 부지런히 바느질에 전념했다. 많은 일감으로 밤을 새우며 일하는 그녀를 보며 가족들은 안쓰러워하기 일쑤였다. 결혼 후에 남편이 바느질을 만류하자 그녀는 남편이 출근한 이후에 몰래 꺼내서 할 정도로 바느질이 '천직'이었다고 말한다.

"지겨울 새가 없더라고요. 일을 더 하고 싶어서 남편하고 다투는 시간도 아깝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언쟁을 하다 보면, 일할 시간을 뺏기잖아요. 타고난 거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좋아했으니까 오랜 시간 할 수 있었던 거죠. 사실 제가 굉장히 털털한 성격인데 바늘만 손에 잡으면, 차분해지더라고요. 그렇게 조용히 집중해서 일하는 시간이 참 좋았어요."

정순자 바느질 장인
 정순자 바느질 장인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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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잉태하고도 바느질을 멈추지 않았고, 아이들이 한창 자라는 시기에도 바느질에 열중했다. 늘 일에 집중해 있는 그녀의 모습은 자녀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됐고, 두 아들도 속 썩이는 일 없이 바르게 자라주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공부를 봐줘야 하는데 저는 바느질하느라 바빠서 그러지 못했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깨우쳐서 잘 커 줬어요. 그 덕분에 저도 제 일을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고요."

"나이 들어도, 바느질만큼은 계속 하고 싶어"

그러나 오랜 세월 바느질을 하며 전통을 이어온 그녀에게도 한복은 여전히 넘기 힘든 난제로 다가온다.

"한복이 그전에는 제일 쉬운 거 같았거든요. 보기에는 직선이니까 수월해 보여도 저고리 만드는 데에는 엄청난 내공이 필요해요. 옷이 편하고, 예뻐지는 차이는 바로 그 내공에서 나와요. 제대로 하려면 굉장히 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그 정성은 어떤 대가로도 바꿀 수가 없어요.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10년 이상 꾸준히 하면, 기술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랄까요. 장인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게 바로 이 일이에요."

그녀의 기술력은 모두가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증수표가 됐고, 지금까지 일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경영하던 한복집을 넓히지 않고, 박정욱 선생의 일을 전문적으로 맡아서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단골들로 인해 한복집이 유지가 됐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한복을 제대로 하려면, 시대 흐름에 따라 모든 시설을 다 갖춰야 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기술만 있지, 상술은 전혀 없다고 봐야죠. 애초부터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요. 잘 해내야겠다는 사명감으로 계속해올 수 있었어요."

바느질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정순자 바느질 장인
 바느질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정순자 바느질 장인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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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을 하면서 누린 행복감은 그 어떤 물질적인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것이었다.

"바느질은 시작도 재밌고, 마무리도 재밌어요. 다 완성하고 나서 완성품을 보면, 또 행복감이 크고요. 그런데 정작 저를 위해서는 안 해요. 남의 것도 못 해주는데 제 것을 할 새가 어디 있겠어요. 저보고 기술이 좋다고 부럽다고 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는데 저는 저 같은 사람 부러워하지 말라고 그래요. 세상 어떤 일에도 완전한 만족이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얼마만큼 즐기면서 사는가가 중요한 거죠. 막상 하고 싶다고 시작해도 잘 못 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이제는 그만 바느질을 놓으라는 가족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느질을 놓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스스로가 즐기면서 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나이가 아쉽죠. 나이가 들면서 예전만큼 밤을 새우면서 일을 하지는 못하니까요. 그래도 바느질만큼은 끝까지 놓지 않고 계속하고 싶어요."

남다른 장인정신으로 걸어온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땀과 정성으로 이룩해온 성과들이 전통을 잇는 보루가 되고, 많은 이들에게 깊은 전통의 울림으로 전해지기를 기원해본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종로문화재단에서 제공받았습니다.



태그:#무지개다리사업, #종로문화재단, #문화다양성, #종로의 기록, 손의 기억, #정순자 바느질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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