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임흥순 작가,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필름엔 비디오 시청각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다
 임흥순 작가,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필름엔 비디오 시청각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현대차가 후원하고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개최하는 현대차시리즈 2017 '임흥순_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5, 7 전시실과 미디어랩 및 서울박스에서 오는 4월 8일까지 열린다.

임흥순(1969~) 작가는 한국, 베트남, 캄보디아 여성노동자의 삶을 2만2000㎞를 이동하면서 제작한 <위로공단>이라는 작품으로 2015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작가로는 국제적으로 가장 큰 상을 받은 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10여 점의 신작이 소개된다.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희생되고 소외된 여성의 삶을 서사적 이미지로 복원하고 있다. 전시회에는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사랑'했으나 '배신' 당하고 '증오'와 '공포'에 사로잡힌 '유령'이라는,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7가지 표제어가 나열되어 있다. 작가는 이번 전을 준비하면서 고민했던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역사는 수백만 명의 개인의 사적 경험으로 만들어져왔다. 그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한국사회는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해왔다. 또한 우리시대 미술의 역할을 고민해왔고 그 과정을 통해서 일상과 미술, 영화와 미술의 경계에서 생동하는 예술의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그동안 작품을 하면서 한국의 근현대사 낳은 전쟁과 분단을 마주쳐야 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 풀릴 것 같지 않은 실타래를 네 여자의 삶을 통해 풀어보고자 했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이념, 젠더, 정치, 세대 등 극단적으로 나뉜 우리사회를 구술, 심리, 공간, 이미지 등을 통해 새로운 역사쓰기를 시도했다."

전래 민담 속 꼬부랑 할머니 연상

이번 전시를 보는 순간, 민담에서 나오는 '꼬부랑 할머니'가 연상되었다. 어설픈 고통을 당하면 비관하지만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 오히려 낙관하듯, 꼬부랑 할머니는 곡절 많은 아리랑 고개를 넘으면서 어떤 두려움도 없는 역사의 맹렬한 전사가 된다.

지난한 우리의 20세기 역사를 넘어서는 데 기여한 주역은 사실 무명의 할머니들이다. 그들은 '생활 전사'였다. 일제의 '위안부(성노예)' 피해로 처참하게 인권을 유린 당한 김복동 할머니 등이 바로 그런 예다.

그러나 대부분 할머니의 삶은 숨겨져 있다. 임 작가는 보이지 않게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그들을 통해 역사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찾는 것이다.

임흥순 I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 43분 영화 스틸 2017
 임흥순 I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 43분 영화 스틸 2017
ⓒ 임흥순

관련사진보기


전태일 열사가 1970년 노동자 선언을 한 이후, 거의 50년 만에 노동문제를 주제로 한 세계적인 수준의 작가가 한국 화단에 출현했다는 것은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전태일은 당시 참혹한 노동 환경에서 참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었다면, 임흥순 작가도 그에 못지않게 한국 근현대사를 열심히 탐구하는 예술가라는 인상을 준다.

1970년에 시작한 한국의 노동운동은 그마저도 남성 위주였다. 그러나 1976년부터 동일방직노조 등 여성노동운동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임흥순 작가는 특히 여성노동자에 주목하고 있다. 그들이 바로 작가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40년간 봉제공장에서 시다(보조원)였고 여동생은 밥 먹기도 편치 않은 백화점 여러 매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임흥순 작가는 영화를 찍을 때 이런 여성노동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원자료로 삼는다. 그들이 체험한 사연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품을 구상한다. 여성의 입장을 예민하게 감지해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거기엔 시대정신인 '여성주의'도 담겨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회문제를 단지 고발하거나 비판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관객에게 노동이란 무엇이고 내가 입은 옷을 누가 만든 것이며 어떤 유통과정을 통해서 들어왔는지, 인간의 존엄이 뭔지 등을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임흥순 작가는 적극적으로 '경청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다. 인터뷰하면서 갑자기 머리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작품에 활용하기도 한다. 혹은 그들이 미처 못한 말이나 안한 이야기마저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작품에 반영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영화는 '개념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일에 대한 철학적 빈곤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번에 주인공은 여성노동자가 아니라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네 할머니다. 이들은 목숨 걸고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전달했고, 경찰의 도민살해에 격분해 제주 4.3항쟁에 참가했고,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지리산에 올랐다가 '빨치산'이 되었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비참함을 목격한 산 증인이었다.

이들은 바로 임흥순 작가의 또 다른 어머니이기도 하다. 작가의 어머니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도 회사에서 가불을 하거나 남에게 돈을 빌려서 아들이 하고픈 미술을 하도록 적극 밀어주었단다. 작가는 이에 대해 미안함이 컸고, 그걸 가족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보답하고자 했다고 털어놓았다.

임흥순 예술영화의 차별성

임흥순 I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 43분 영화 스틸 2017. 빨치산 은신처에서 두 소녀가 만나는 장면
 임흥순 I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 43분 영화 스틸 2017. 빨치산 은신처에서 두 소녀가 만나는 장면
ⓒ 임흥순

관련사진보기


임흥순 작가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영화 감독이다. 그렇다면 예술영화와 일반영화는 뭐가 다른가. 예술영화는 우선 형식이나 내용에서 자유롭다. 틀도 범위도 없다. 서로 다른 주제라 하더라도 동시에 상영할 수도 있다. 스크린을 하나만 쓰는 것이 아니라 2채널, 3채널, 4채널도 가능하다. 영화 형식이 기존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게다가 임흥순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합치는 방식이다. 그의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과 다르다. 현장성이 높아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관객과 직접 소통할 수도 있다. 스토리 전개도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방식이라 관객의 호기심을 최대로 끌어올린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제5전시실에서 선보이는 43분짜리 영화 <우리는 갈라놓은 것들>이다. 네 할머니의 이야기다. 이전의 어떤 영화와도 비교가 안 되는 3채널 대형스크린 방식의 작품이다.

임흥순 작가의 창의적인 연출력도 대단하지만 분단과 식민이 낳은 비극적 역사가 무엇보다 풍부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는 제주와 명산 중 명산인 지리산에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으니 더욱 기가 막히다. 영화는 어두울수록 더 잘 보인다고, 역사도 어두울수록 더 할 이야기가 많고 예술화하기가 좋은지 모른다.

임흥순 I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 43분 영화 스틸 2017
 임흥순 I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 43분 영화 스틸 2017
ⓒ 임흥순

관련사진보기


영화의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김동일 할머니는 지리산에서 발에 동상에 걸려 걸을 수 없었다. 근데 별안간 나타난 토벌대가 나타나 총을 쐈고, 물 속으로 도망쳤다. 그는 그들이 쏜 총알이 빗나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영화 말미에서 김 할머니가 운명을 한탄하지 말라고 낭송하는 자작시 '억울한 죽음을 슬퍼 마세요!'로 관객을 위로하는 장면 역시 압권이다.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언제나 긍정의 일면을 부각시키는 게 임 감독의 연출법이다. 그는 영화를 마치 그림 그리듯 그렇게 유도해간다. 리얼리티에 시적의 요소가 가미되어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사람이나 자연도 아닌 정령이 그 작품의 주인공이 되는, 즉 천지인이 위계 없이 평등하게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세계도 보여준다.

예술 영화라면 그 작가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누구도 따라서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일반 영화가 된다. 영화 속에서 혼란스럽고 낯선 요소를 가미해 관객으로 하여금 질문을 하도록 유도한다. 꽁꽁 묶인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면서 거대 서사로의 몫도 감당한다.

제5전시실은 이렇게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세계로 건너가기 위한 중간 플랫폼을 설정하고 있다. 마치 샤먼이 굿을 통해 죽은 넋을 불러 산자와 만나게 해 못 다한 말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을 기회를 마련해 화해시킨다는 개념과 비슷하다. 그리고 여기 전시장에 고목과 나룻배를 재현해놓았다. 이건 하늘과 땅,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물을 상징한다.

색채에 대한 통념 깨기

임흥순 작가, 서울박스에 전시된 붉은 색 벽화에 대해 설명하다
 임흥순 작가, 서울박스에 전시된 붉은 색 벽화에 대해 설명하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번에는 첫 번째 전시장인 '서울박스'로 가보자. 상당히 넓은 공간인데 아무런 작품도 설치돼있지 않다. 다만 벽을 그저 붉은 색으로 칠했을 뿐이다. 일종의 개념미술이다. 우리에게 '레드콤플렉스'가 있는 걸 작가는 염두에 둔 것 같다. 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불식시키는 장치로 보인다. 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사유를 촉발시킨다.

작가는 개인적으로 붉은 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주인공 중 한 분인 김동희 할머니가 붉은 색을 너무 좋아하는 걸 알게 되면서 이 색을 쓰게 되었단다. 어떤 색에 대한 일체의 편견을 버릴 때 그 색을 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지론이다.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는 관객이 직접 뜨개질 해볼 수 있는 붉은 실도 마련해놓고 있었다(아래 슬라이드 참조).

이번 전시에서는 '정정화, 김동일, 고계연, 이정숙' 네 할머니가 남긴 유품이나 작품, 아카이브도 같이 선보인다. 작가는 그들의 숨겨진 삶을 발굴해 다시 해석하고 그것을 설치미술로 재배치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 할머니들의 흩뿌려진 시간을 '믿음, 신념, 사랑, 배신, 증오, 공포, 유령'이라는 7가지 키워드로 조명하여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름도 없이 명예도 없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전사들이다. 아니 천사들이다. 보이지 않는 역사를 건져서 그걸 다시 자리매김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부터 할머니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차례로 알아보도록 하자.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제5전시실에서 선보인 정정화 할머니 유품들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제5전시실에서 선보인 정정화 할머니 유품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첫 번째로 충남 예산 출신의 '정정화'(1900~1991) 할머니다. 대지주 출신인 아버지가 공부를 반대해 오빠의 어깨너머로 <천자문>, <소학> 등을 어려서부터 다 익힌 총명한 소녀였다.

11살에 안동 김씨 명문가 김가진의 맏이인 '의한'과 혼인한 뒤 신학문도 배웠다. 독립운동가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1920년 상해로 망명했다. 26년간 조선과 중국을 오가며 임시정부의 자금전달을 해왔다. 이번 영화에서 손녀인 김선현님이 할머니 역할을 맡았다.

두 번째는 제주 조천 출신인 '김동일'(1932~2017) 할머니다. 항일운동가의 자녀로, 제주 4.3항쟁(1948) 당시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에 올라갔고, 그 이후에는 지리산에도 올라갔다, 일본 오사카로 밀항해 주로 일본에서 살았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중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유족들이 유품 4000점을 이번 전시에 기증했다.

이번에 선보인 김동일 할머니의 유품은 고통의 삶과 역사의 아픔을 감내하면서 만든 수공예 작품이다. 작품 수도 많지만 그 수준 또한 높다. 모던한 감각도 엿보인다. 한 시대를 앞서간 무명의 예술가 같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90세가 넘도록 세계적 명성을 누리며 "내 예술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했던 '루이즈 부르주아'가 생각났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제5전시실에서 선보인 김동일 할머니 수공예품 콜렉션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제5전시실에서 선보인 김동일 할머니 수공예품 콜렉션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 할머니의 공예품을 보면서 작가도 많은 자극을 받고 상상력의 폭도 크게 넓힌 것 같다. 어찌 보면 숨겨진 보물창고를 공개한 셈이다. 생활용품인 김동일 할머니의 구두 콜렉션, 옷가지, 액세서리도 멋지다. 아름다움을 살 줄 아는 김동일 할머니의 삶의 태도도 놀랍지만 이를 발굴한 작가의 안목 또한 대단하다.

세 번째는 경남 삼천포 출신의 '고계연'(1932~) 할머니다. 1950년 토벌대를 피해 지리산으로 올라간 아버지, 오빠, 동생을 찾아 3년간 헤맸다. 그러나 가족을 산에서 다 잃었다. 일본으로 간 둘째 오빠는 생사를 모른다. 이 할머니는 이런 시름을 달래려고 낚시를 즐겼다.

이런 취미가 있었다는 건 할머니가 부잣집 딸임을 알 수 있다. 할머니는 삼천포 '고기룡 백화점' 막내딸이었다. 낚시도구와 장비 그리고 할머니의 물고기 그림도 전시된다.

네 번째는 경기도 파주 출신의 '이정숙'(1944~) 할머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한강 다리를 건넜다. 20대에는 베트남에 참전한 한국군 위문공연단이었다. 그래서 3년간 전역을 돌았다. 이후, 귀국하지 않고 중동의 파리라고 하는 테헤란에 정착했다. 그런데 거기서 또 이란·이라크 전쟁을 겪으면서 고생했다. 지금도 테헤란에 살고 있다.

제7전시실에서는 바로 이정숙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만든 2채널 영화 '환생(2015년 작, 퐁피두센터 소장품)'도 선보인다. 한 채널은 이란·이라크 전쟁, 다른 채널을 베트남전쟁 여성 피해자를 그렸다. 베트남 영상 중에는 한국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도 고발한다.

전시실 외벽에는 네 할머니의 시대별 활동을 비교해서 정리한 '시나리오그래프'도 보인다. 임흥순 작가의 근현대사 공부에 대한 치열성을 엿볼수 있다(아래 슬라이드 참고).

악령을 추방하는 '유령'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제5전시실 입구에 서 있는 '사천왕상'. 유령을 연상시키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제5전시실 입구에 서 있는 '사천왕상'. 유령을 연상시키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여기 설치미술 중 '사천왕상'을 보니 이번 전시에서 임흥순 작가가 자주 인용한 '유령'이라는 용어가 생각난다. 여기서 유령이란 누구인가 아마도 시대의 악령을 쫓아내는 전령사가 아닌가싶다. 하여간 여기서 유령은 중의적 의미를 띤다.

유령은 단지 역사의 트라우마와 싸우는 자일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것을 끌어안고 치유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게 임흥순이 생각하는 예술가의 역할인가. 임흥순 작가는 모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나는 역사의 희생자들을 위한 장의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작가는 역사가는 아니지만 역사의 보이지 않는 뒷면에 많은 사연을 황금광맥처럼 발굴해 낸다. 그렇게 작가는 특히 그 억울함으로 죽어서도 죽음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지천을 떠도는 사람들의 아우성 같은 소리가 들리나 보다. 아니면 세상을 갈라놓은 세력에 정신을 잃고 진실과 거짓의 간극 사이에서 부유하는 수많은 사람이 보이나 보다.

더 부언하면 역사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민초들의 넋을 기리면서 작품을 통해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미학적 공간에서 그들의 대한 역사쓰기를 다시 시도한 것이다. 여기서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그런 분위기를 유도할 뿐이다.

그리고 '미디어랩'에 가면 임흥순 작가의 저서와 작업노트, 인터뷰 녹취록을 볼 수 있다. 또한 B. 커밍스 교수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 정정화 할머니가 쓴 <장강일기> 등 이번 영화에 참고한 책과 4·3사건을 다룬 영상작품 <비념>(2012), 여성노동자를 다룬 <위로공단>(2015)', 탈북여성을 다룬 <려행>(2016)의 등의 포스터도 볼 수 있다.

역사소통을 위한 미적 해방공간

모진 세월 속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아 할머니들, 그들이 남긴 유언 같은 절박한 발언이 다른 전시장으로 옭겨가는 샛길 창문에 영문번역과 함께 적혀 있다. 일종의 텍스트아트다.
 모진 세월 속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아 할머니들, 그들이 남긴 유언 같은 절박한 발언이 다른 전시장으로 옭겨가는 샛길 창문에 영문번역과 함께 적혀 있다. 일종의 텍스트아트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징은 주변 4대강국 사이에 끼여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변 강국들은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한반도를 두 동강냈다. 그럴듯한 통치자를 내세워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고조시키고 사회의 강자와 약자를 분열시키며 그들의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분단이후에 전쟁의 공포와 위협이 더 커지면서 사람들은 초긴장 속에 살아야 했다.

임흥순 작가는 이번 전시의 제목을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이라고 한 배경에는 이런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2번의 민주정권 이후에 거의 9년간 우리는 다시 감시와 처벌사회가 낳은 말도 안 되는 변종의 권위주의 시대를 겪어야 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바로 예이다. 임흥순 작가가 그런 피해를 봤다.

그는 한반도 출신의 예술가로서 이런 사회적 악령을 추방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봤으리라. 그렇지만 그런 걸 증오하거나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그 고통을 치유할 수 없다. 그래서 작가는 보다 많은 역사자료와 인물의 발굴을 통해 보다 미래지향적 사회의 출현을 꿈꾸는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닌가. 너무 오랫동안 사무친 역사의 상처를 꿰매고 싶었을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 추가하면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번 전시공간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관객이 매번 전시장을 찾을 때마다 전시의 변화된 모습을 보이겠다는 각오다. 그래서 작가는 사전공개와 관객과 워크숍을 통해 함께 만들어가는 전시 형식을 취한다. 오늘 3월에는 이런 모든 과정을 집약해서 장편영화형식으로 상영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전시설명회는 제5전시실 앞에서 매일 오후 2시에 열린다.



태그:#임흥순, #정정화, #김동일, #고계연, #이정숙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