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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온 지 5개월째. 만 9살 아이는 이곳에서 한 학년의 절반 정도를 마쳐가고 있다. 지난 수요일. 하굣길에 함께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오던 중 아이가 자못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엄마, 그런데 내가 예전에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인성시간에 '내가 소중한 이유'에 대해 적는 걸 했는데 그 때 내가 '나는 장애가 없어서' 라고 썼거든.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던 거 같아."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그러자 아이가 다시 말했다.

"우리 반에 장애인으로 보이는 친구가 두 명 있는데 그 친구들이라고 소중하지 않은 게 아니더라구. 한 친구는 보이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한 친구는 음 조금 다르게 행동하는데 다 같이 지내는데 별로 불편하고 그런 거 같진 않아. 그냥 다 똑같은 친구들이야."

그랬다. 대학 때 잠시나마 장애인 인권운동을 했었고, 나름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엄마와 지내느라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책도 읽어 온 아이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내던 시간 동안 아이에게 장애는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을 방해하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이가 한국의 수업시간에 했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소중하기 위해서 '장애는 없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아들이 이렇게 생각을 바꾸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들이 스스로 말했듯, 밴쿠버의 통합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느끼고 경험한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장애인 만나는 일 어색하지 않은 캐나다

아이의 학교 복도에 전시된 그림. 아이들이 장애인에게도 균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아이의 학교 복도에 전시된 그림. 아이들이 장애인에게도 균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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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는 원칙적으로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실시한다. 그래서 아이의 학급에도 2명의 장애학생이 있다. 장애 정도도 다양한데 경도의 자폐 아동부터 중증 신체장애까지 모두 일반학교를 다닌다. 아이의 반에도 한 명은 가벼운 자폐스펙트럼 아동이고, 한 명은 휠체어에서 생활하는 근무력증 아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거의 매일 있는 체육시간에도 근무력증 아이는 참석한다. 스스로 공을 잡을 수는 없지만, 아이들은 그 아이한테도 공을 전달하고, 아이 곁에 늘 함께하는 도우미 선생님이 아이를 도와 공에 손을 대게 한 뒤 다음 순서로 넘어가는 식으로 수업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 이런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각 반에는 담임선생님 외에 도우미 교사가 배치되고 도우미 교사는 이들의 학교생활을 바로 옆에서 돕는다.

특히, 발달장애가 있는 아동들은 1대1 컨설팅에 의해 일반학교 생활과 특수교육을 병행한다. 밴쿠버에서 자폐스펙트럼을 비롯한 발달장애아동으로 진단을 받으면, 장애아동 한명 당 전문 컨설턴트가 배치된다. 그리고 이 컨설턴트는 가정을 방문해 아이의 상태를 관찰하고 부모를 면담한 후 아이 한 명당 맞춤으로 교육계획을 짠다. 그 중에 일반학교 생활도 포함되어 있다.

아이의 상황에 따라 일정시간은 일반학교에 가고, 나머지 시간에는 특수교육센터나 가정에서 장애 정도에 따른 교육과 치료를 받는다. 이와 관련된 예산은 펀드를 통해 마련하고 각 가정에 매년 배정된다.

그런데 이 펀드를 통해 받은 보조금은 아무리 생계가 어려운 가정이라 하더라고 아이 교육과 치료 외에는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때문에, 밴쿠버의 장애아동은 양질의 치료와 교육을 가정형편과 무관하게 받을 수 있다(물론, 여기서도 사비를 들여 제공되는 교육 외에 다른 치료와 교육을 추가로 실시하는 가정도 있긴 하다).

이러한 맞춤식 통합교육을 통해 장애학생들은 자신에게 최적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보통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장애가 없는 학생들은 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장애인들을 동정하거나, 불편해하거나 하지 않고 그냥 나와 좀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인지, 밴쿠버 시에서는 장애인들을 만나는 일이 별로 어색하지 않다. 버스를 타도  휠체어를 타고 버스에 오르는 장애인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휠체어가 버스에 오르는 동안 버스 안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앞쪽 좌석에서 일어나 뒤로 이동해 휠체어를 놓을 공간을 마련한다.

밴쿠버의 버스 앞쪽 좌석은 휠체어나 유모차가 탑승할 수 있도록 접이식 의자로 되어 있고 버스 문턱이 매우 낮다. 때문에 장애인이나 아기엄마들도 휠체어와 유모차를 이용한 채로 버스에 탑승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물론, 다른 때보다 조금 오래 정차하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조급해 하지 않는다. 또한, 장애인이 탔다고 신기해거나 쳐다보거나 하지도 않고, 과도하게 도움을 주지도 않는다. 그냥 함께 생활하는 사람일 뿐인 것이다.

아들의 변화를 보고, 진정한 평등이 무엇인지, 함께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 아들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너는 네가 소중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아들이 답했다.

"그냥 나는 내가 있으니까 소중한 거 같아. 그 친구들도 그냥 우리랑 함께 있으니까, 우리 모두 살아 있으니까 소중한 거야."

우리 모두가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건,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건,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함께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평등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장애인, #통합교육, #밴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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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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