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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브 수확
 올리브 수확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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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가기로 마음 먹은 건 올리브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빵에 찍어 먹고, 샐러드 드레싱으로도 먹고 피자에 올려 먹기도 하는 올리브. 그토록 자주 먹는 올리브와 올리브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올리브 수확철인 11월에 이태리 동부에 있는 산타 마리아라는 농장에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 농장으로 떠날 때만 해도, 내 손으로 올리브유를 만든다는 부푼 꿈에 설렜다.

농장 주인 로사리아는 내가 농장 근처 마을 마리시아노 기차역에 도착 한 후 전화하면 마중을 나가겠다고 했다. 로사리아의 말과는 달리, 인근 대도시 페루자에서 마리시아노에 가는 기차는 존재하지 않았고, 대신 고속버스가 있었다.

낌새가 좋지 않아, 버스에 오른 후에 연신 구글 지도를 보며 언제쯤 버스가 마리시아노에 가나 지켜보았다. 버스는 마리시아노 역에 정차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버스기사에게 "마리시아노!"라고 외치자, 기사는 허허벌판에 버스를 멈추고는 고개 짓으로 지금이라도 내려서 걸어가라는 시늉을 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 벌판에 내려 급한 마음에 농장 주인 로사리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영어 안내가 나왔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오후 4시, 일몰까지는 겨우 두 시간이 남았다.

구글 지도로 확인해보니 내가 있는 허허 벌판에서 농장까지 걸어서 3시간이었다. 식은 땀이 났다. 사람은 커녕 개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허허벌판, 해 질 시간은 다가오고, 농장 주인이 실존하는 사람인지 조차 확인이 안 됐다. 이러다 이탈리아 소도시에서 행방불명 되는 건 아닐까.

구글 지도를 계속 뒤져보니 한 시간을 걸으면 어린이 놀이터와 동네 마트에 닿을 수 있었다. 거기서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구하려고 10kg짜리 배낭을 매고 한 시간을 걸었다. 놀이터에 도착하니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있었다.

할 줄 아는 이탈리아어는 피자, 파스타, 젤라또 뿐이지만, 오늘 밤에 지붕 있는 곳에서 잠을 자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 상황을 짧은 스페인어로, 영어로 혹은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운 좋게도, 동네 아저씨 중 한 명이 나를 산타 마리아 농장에 데려다 주었다. 여기서 상황 종료! 오늘 밤 안심하고 잘 수 있겠어! 라고 이야기가 끝나면 좋았을 텐데, 농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누구 없냐고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기를 한 시간쯤 후, 겨우 농장 직원을 만났다. 농장 직원의 핸드폰을 빌려 수십 번의 전화를 한 끝에 농장 주인 로사리아와 통화를 했다.

"로사리아, 저 한국인자원 봉사자예요. 지금 농장에 도착했어요"
"뭐? 한국인? 넌 누구니?"

로사리아는 내가 누구인지 기억조차 못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농장일꾼 숙소 중 빈방이 있었다.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잘 곳을 찾았다. '일단 도착했으면 됐지. 이제 올리브 수확하고 올리브 유도 만들고, 통조림도 만들자! 재미있겠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무너진 계획,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산타마리아 농장의 풍경
 산타마리아 농장의 풍경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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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다. 농장 주인 로사리아는 손으로 올리브유를 만드는 게 아니라, 농장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올리브 가공공장에 수확한 올리브를 가지고 간다. 따라서 주유비를 보상할 만큼의 많은 올리브 유를 생산해야 했다.

농장에는 2000천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있었지만, 흉작이었다. 흔히 보던 엄지손가락 반 만한 올리브 대신, 새끼 손톱만큼 작은 올리브만 가득했다. 농장에서 열흘 동안 매일 5시간씩 올리브를 수확했지만, 충분한 양을 수확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올리브유를 만들어보겠다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올리브유를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올리브 통조림은 만들수 있지 않을까? 자원봉사자 모집 안내 글에 로사리아는 '우리농장에서는 직접 손으로 파스타, 피자, 올리브 통조림을 만듭니다. 일하는 동안 이탈리아 요리법을 배울 수 있어요'라고 했다.

농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로사리아의 남편은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로사리아가 고용한 4명의 농장 직원들은 한 명 빼고 병가를 내거나 휴가 중이었다. 로사리아는 혼자서 농장을 운영하며 자폐증 아들까지 돌보느라 식탁에 앉을 시간도 없이 선 채로 음식을 10분 안에 입 속에 쓸어 넣다시피 먹었다. 자원봉사자들과 같이 여유 있게 올리브 통조림을 만들고, 손 반죽 파스타를 만들 시간 따위 없었다. 내 계획은 또 무너졌다.

내 기대와 계획이 무너졌다고 열흘 동안 농장에서 툴툴 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애써 이탈리아까지 온 내 노력이 아까웠다. '이 농장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뭘 하면 조금이라도 만족스럽게 보낼까' 머리를 굴렸다.

그때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5명의 자원봉사자와 로사리아를 위해 매일 이탈리아 요리를 했다. 로사리아가 가르쳐줄 수 없다면, 레시피를 검색해서라도 요리를 했다. 이탈리아의 수분이 적은 감자를 활용한 이탈리아식 감자 수제비 뇨끼와 동네 슈퍼에서 산 파스타 전용 밀가루 세몰리나로 수제 파스타를 만들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파는 것과는 모양도 맛도 많이 달랐지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것보다 나았다. 

11개월째 긴 여행 동안, 여행마저 보통의 일상처럼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 직후에는 신용카드를 도둑맞았다. 페루에서는 생태공동체인줄 알고 갔던 곳이, 알고보니 힌두교 사원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는 떼 쓰는 어린아이처럼 SNS에 '생태 공동체를 가겠다고 해놓고는 힌두교 사원에 와버렸다. 뭘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글을 남겼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한 시간이 넘도록 버스가 도착하지 않아 눈물, 콧물을 쏟으며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 있기도 했다.

여행이 거의 끝날 무렵이 되니, 버스 기사 아저씨가 허허벌판에 내려줘도 어떻게든 길을 찾았다. 허허벌판이라 당황스럽다고 주저앉아만 있어서는 당장 잘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목적지가 내 기대를 채우지 못 할 때 구시렁대기보다는 있는 환경을 받아들이고, 좋은 점이나 내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생활했다. 그게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다. 

여행이 끝난 후의 삶 역시, 분명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거다. 그럴 때마다 주저앉아 있기 보다는, 어떻게든 위기 돌파를 위해 주어진 상황을 살펴 숨쉴 구멍을 뚫는 게 지난한 삶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 아닐까. 이탈리아 농장에서 난데없이 올리브유가 아닌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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