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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는 제주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입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여행 속에서 제주 4.3을 알리고 기억을 공유합니다. 제주를 찾는 국내외 사람들과 함께 제주 곳곳의 4.3 유적지를 방문하고 기록하며 알려나가는 작업을 합니다. 국경을 넘어 아시아 과거사 피해자들과도 연대합니다. 그 첫 시작으로 광주 5.18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여성들의 모임인 <오월민주여성회>가 제주를 방문했습니다. "5월의 광주 여성들, 제주 4.3과 만나다" 그 2박 3일의 이야기를 4회에 연속 게재합니다. - 기자 말

<오월민주여성회>의 제주다크투어 일정 마지막 셋째 날은 북촌포구에서 시작했습니다.

포구의 식당에서 아침식사로 맛있는 성게·보말 미역국을 든든하게 먹고 나와서 식당 바로 옆 바닷가에 있는 등명대를 둘러보았습니다. 등명대는 현대식 등대가 도입되기 전에 제주 지역에서 야간에 배들이 무사히 귀항할 수 있도록 항구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던 민간 등대입니다.

북촌리 도대불 (등명대)
 북촌리 도대불 (등명대)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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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불(道臺-)이라고도 불리는 이 등명대는 북촌리 포구 서쪽 지점 구짓모루 동산에 세워진 등대입니다. 북촌리 등명대는 1915년 12월에 건립된 것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대불이기도 합니다.

제주 4·3 당시 북촌 마을을 자주 들락거렸던 함덕 주둔 군인들은 북촌을 '폭도마을'이라며 여기저기 총질을 했습니다. 이 도대불 표석도 이 시기에 총에 맞아 비석 일부가 깨어졌고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광주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오월민주여성회> 회원분들은 북촌 도대불을 보면서 5.18 당시 총격의 흔적이 남아있는 광주 옛 도청 총자국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주민들이 살았던 곳을 복원한 낙선동 4.3 성터 

다음은 낙선동 4.3성(전략촌)으로 이동해서 선흘리의 4.3 유족 분과 만나서 간담회를 갖고, 낙선동 터에 대한 안내를 받았습니다. 낙선동 4.3성 사무소에는 4.3 유족 분이 상주해 계셔서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낙선동 4.3성 사무소에서 4.3 유족과의 간담회
 낙선동 4.3성 사무소에서 4.3 유족과의 간담회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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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이 한창이던 1948년 11월부터 중산간 마을들은 토벌군에 의해 초토화되었습니다. 이 곳 선흘리도 11월 21일 마을이 전소되어 수많은 주민들이 죽고 재산피해를 입었습니다. 선흘 주민들은 1949년 봄, 당국의 재건명령에 의해 길이 약 500m의 사각형 모양의 성(城)을 쌓고서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성을 쌓는 동안 성담 쌓기에 동원된 주민들은 돌을 나르느라 어깨와 등의 피부가 다 벗겨졌었다고 합니다.

낙선동 4.3성(전략촌) 내부
 낙선동 4.3성(전략촌) 내부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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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주도 전역에 쌓았던 성은 무장대 습격 차단이라는 명분과 함께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성 안에서의 집단생활 또한 가혹하게 힘들었다고 합니다. 주거지는 허름하고 좁은 가건물(함바집)이 전부였습니다. 주민들은 낮에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밤에는 보초를 서야 했습니다. 특히 젊은 남성들이 대거 희생당한 후, 성을 지키는 일은 여성들과 노인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 낙선동 성터는 2008년 4·3 중요 유적지로 지정되어 성담, 초소 등이 정비되었습니다. (성곽 292m, 가건물(함바) 1동, 초소, 막 5동, 화장실 4동). 그러나 성터는 잘 보존되었지만, 상세한 고증 없이 정비되어서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으며 돌담 등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낙선동 4.3성을 둘러보고 나와서
 낙선동 4.3성을 둘러보고 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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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동 4.3 성을 둘러보고 나온 <오월민주여성회> 회원들은 선흘에 계속 살고 계신 마을 삼춘들께 4.3을 겪은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흘 동백동산 습지센터에서 선흘 주민들과의 간담회
 선흘 동백동산 습지센터에서 선흘 주민들과의 간담회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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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당시를 증언하고 나누는 선흘 주민들
 4.3 당시를 증언하고 나누는 선흘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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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아픔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선흘 주민들은 비슷한 아픔을 지닌 광주 시민들을 보니 눈물이 난다고 하시며 한동안 눈물을 닦기도 하셨습니다.

4.3을 겪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힘들게 살아오신 이야기, 아버지를 찾으러 경찰서로 갔다가 어머니마저 경찰들에게 고초를 당하신 이야기, 그리고 4.3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가 섞여 살아온 시간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번에는 듣는 이들이 한참 눈물을 닦았습니다.

박수자 어르신은 너무 힘들어서 세상에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왜 나를 이렇게 힘든 세상에 낳으셔서 날 힘들게 했을까 원망할 정도로 괴로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행복합니다. 이제는 4.3을 말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그 아픔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역설적인 말씀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랜 세월동안 고통마저 말 못하고 지낼 수밖에 없었던 아득한 시간이 이 곳 제주에 있었습니다.  

선흘 주민들과 광주 <오월민주여성회>
 선흘 주민들과 광주 <오월민주여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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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흘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요리를 맡아 해주시고 있었다
 선흘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요리를 맡아 해주시고 있었다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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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가 끝난 후에는 바로 옆 식당에서 선흘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주신 도토리 칼국수를 다함께 먹었습니다. 조미료도 넣지 않으셨다는데, 듬뿍 들어간 버섯과 도토리가 깊은 맛을 내는 칼국수가 정말 맛있었습니다. 이 날은 주민들이 미리 준비해놓으시고 만들어주셨지만, 주민과 방문객들이 함께 칼국수를 만들어먹는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선흘 삼춘들이 직접 만들어주신 도토리 칼국수
 선흘 삼춘들이 직접 만들어주신 도토리 칼국수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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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따뜻한 눈물을 나누고, 따뜻한 국물을 나누었던 시간이 오래 기억날 것 같습니다.

광주가 제주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제주를 찾아왔다는 광주 사람들. 그 사람들을 눈물로 반겨준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숲의 이야기. <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도 그 이야기를 오래 간직하고 나누겠습니다.



태그:#광주, #선흘, #제주,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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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는 제주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입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여행 속에서 제주 4.3을 알리고 기억을 공유합니다. 제주를 찾는 국내외 사람들과 함께 제주 곳곳의 4.3 유적지를 방문하고 기록하며 알려나가는 작업을 합니다. 국경을 넘어 아시아 과거사 피해자들과도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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