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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남 순천과 광양의 동네 슈퍼와 대형마트 입구에는 어김없이 '에이스'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10월 31일이 바로 그날(?)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에이스데이'라고 불리는 이날은,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에 버금가는 기념일이다. '빼빼로'를 주고받는 '빼빼로데이'와 비슷한 기념일이라고 보면 된다.

평소 좋아하는 친구와 사랑과 우정을 확인하며 서로 '에이스'를 선물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이 지역에 살면서 '에이스데이'를 모른다면 간첩이나 다름없다. 진짜 그럴까? 일단 과자의 포장지부터 살펴보자. 해태제과에서 만든 에이스의 겉면에는 '에이스데이, 10월 31일. 에이스로 마음을 전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리고 함께 보내고 받는 사람의 이름을 쓰고 사연까지 적을 수 있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에이스데이'가 실제 전국적으로 알려진 기념일일까? 포장지에 적힌 설명대로라면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또 그렇지 않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에이스데이'라는 기념일을 들어본 적도 없다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굳이 억지로 가져다 붙인다 해도 '시월의 마지막 날에 사서 커피와 함께 찍어 먹는 과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해태제과 "1977년 '에이스데이' 처음 유래", 광양시 "1984년 광양여중에서 시작"

지난 28일 전남광양의 한 대형마트에 산더미처럼 쌓인 '에이스'
 지난 28일 전남광양의 한 대형마트에 산더미처럼 쌓인 '에이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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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떻게 이 지역에서는 매년 10월 31일이 친구, 가족, 동료들과 '에이스'를 나눠 먹으며 친분을 확인하는 기념일이 되었을까. 국민과자 '에이스'는 1974년에 처음 출시됐다. 해태제과 측은 지역별로 독특한 문화의 '에이스데이'가 여러 곳에서 시작됐으나, 처음은 1977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제조(2017년 10월 12일 생산)된 '에이스' 소형포장 15개 묶음 제품(364g)의 겉면에는 '에이스데이'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977년부터 지역마다 자생적으로 기념되어 오고 있는 '에이스데이'는 10월 마지막 날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남녀 학생들 간에 '에이스'를 선물하여 짝사랑이 이루어졌다는 소문에서 유래한 '에이스데이'가 있고, 감사와 사랑을 전하기 위해 친구에게 에이스 1개, 선생님 2개, 사랑하는 사람에게 3개를 선물하는 유래를 가진 에이스데이도 있다. 에이스데이는 오늘날 각 지역별로 독특한 문화로 정착되어 기념되고 있다."

'에이스' 포장지 겉면에 적힌 '에이스데이' 소개와 유래. 실제로 광양지역에서는 1984년 10월의 마지막 날, 광양여중의 한 여학생이 짝사랑하던 광양중 남학생에게 ‘에이스’를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면서 처음 시작됐다고 알려지고 있다.
 '에이스' 포장지 겉면에 적힌 '에이스데이' 소개와 유래. 실제로 광양지역에서는 1984년 10월의 마지막 날, 광양여중의 한 여학생이 짝사랑하던 광양중 남학생에게 ‘에이스’를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면서 처음 시작됐다고 알려지고 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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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에이스데이'의 정확한 유래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전남지역에서는 광양에서 시작된 것이 거의 정설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광양시 공식 페이스북도 '에이스데이'가 광양에서 처음 유래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원래 이 과자는 커피믹스를 즐기던 대학생들 사이에서 커피와 함께 먹는 과자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순천과 광양지역에서 내려오는 입소문에 의하면 '에이스데이'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1984년 10월의 마지막 날, 광양여중의 한 여학생이 짝사랑하던 광양중 남학생에게 '에이스'를 선물하면서 사랑을 고백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용기 있는 여학생의 소원대로 그 남학생과 사랑이 결국 이뤄졌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에이스의 힘이 컸다. 사랑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에이스'는 이름값을 제대로 해냈다.

이후 광양에서 매년 10월의 마지막 날에 그동안 짝사랑했던 이성에게 '에이스'로 사랑을 고백하기 시작했고, 결국 인근의 순천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를 거듭하면서 광주와 울산 등 영호남 지역까지 알려졌고 강원도와 충청 일부 지역에서도 이 '에이스데이'를 지키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 시작된 광양과 순천만큼 널리 정착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많은 과자 중에 '에이스'였을까? 그것은 1982년 호남지역을 연고로 출범, 1986년 한국시리즈 왕조의 막을 연 해태 타이거즈의 인기와 무관치 않다. '호랑이'로 대표되는 해태 과자의 상징인 에이스의 생명은 해태 타이거즈의 인기와 비례하며 이 지역에서 30여 년 동안 유지된 것이라고 보면 맞다.

못 받으면 소외감에 상처 입기도... 인기 과시나 무의미한 과자 교환의 날로 변질


지난 28일, 순천시 조례동의 한 동네 슈퍼 입구에 '에이스'가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다.
 지난 28일, 순천시 조례동의 한 동네 슈퍼 입구에 '에이스'가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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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로 이 지역에서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에이스데이'를 기리고 있는 것일까? 지난 28일, 광양과 순천지역의 대형마트와 동네 슈퍼를 돌아보니 실제로 매장 입구에서부터 '에이스'를 쌓아놓고 대대적인 행사를 하고 있었다. 특히 '에이스데이'가 임박했음을 강조하며 평소 가격보다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형마트에 들른 손님 중에서 아무나 붙잡고 '에이스데이'에 대해 한번 물어봤다.

"지금은 구경만 왔어요. 월요일(30일)에 낱개로 10개 정도 사갈 거예요. 거의 주는 만큼 받아요. 많이 받는 아이는 30개까지 받은 것도 봤어요. 이날은 거의 인기 투표하는 날이나 마찬가지예요. 저도 벌써 두근거려요."
-순천A초 5학년 여학생


"
그거 '초딩'때나 하는 거지 중학생부터는 거의 그냥 지나가요. 저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정말 열심히 주고받았어요. 그런데 그것도 어렸을 때 한때예요. 중학교 올라가면 '밸런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 같은 다른 기념일이 많아서 그것까지 신경 못쓰죠." -광양B중 3학년 남학생

"여기서는 그래도 '에이스데이'라고 하면 다 아는데... 서울에 사는 친척들이 '에이스데이'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하니 좀 웃겼어요. '빼빼로데이'처럼 모두 다 아는 기념일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중학교 1~2학년 때까지만 주고받은 걸 보면, 점점 시들어지는 것도 같아요." -순천C고 3학년 남학생

"학교에서는 아직도 '에이스데이'는 여러모로 힘들어요. 제발 서로 '에이스'를 주고받지 말라고 하고 있어요. 많이 받은 아이들은 수십 개씩 받지만, 하나도 못 받은 아이들은 소외감은 물론 오히려 상처를 받기도 해요. 오죽하면 못 받은 아이들에게는 선생님들이 몰래 한두 개씩 일부러 챙겨주기도 했을까요. 어디 그뿐인가요. 학교 이곳저곳에 에이스 포장지에 남은 과자까지 굴러다니고, 아무렇게나 버려 쓰레기가 넘쳐납니다. 게다가 용돈도 얼마나 많이 지출하는지 모르겠어요. 제발 이런 날 좀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광양D초 학부모

대형마트에 진열된 여러가지 종류의 '에이스'.
 대형마트에 진열된 여러가지 종류의 '에이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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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마트에서 만난 이 지역의 사람들 중 '에이스데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우정과 사랑을 확인한다는 이 '에이스데이'가 실제로는 인기를 확인하거나 무의미한 과자 교환의 날로 변질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이번 '에이스데이'만큼은 정말 소외당하고 사랑이 꼭 필요한 친구에게 꼭 '에이스'가 쥐어지길 바란다.

10월의 마지막 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당신은 혹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번 31일에는 사랑하는 가족, 동료, 그리고 가족에게 두 달 남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낭만적 엔딩을 한번 선물해보자. 꼭 '에이스'가 아니면 또 어떠한가.



태그:#에이스데이, #순천, #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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