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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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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절뚝거리시네요. 다치셨어요?"
"오른쪽 다리가 불구에요."

깜짝 놀랐다.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이었다. 우리 사회에 복지국가 담론을 뿌리내리게 한 그가 4급 지체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른발 구두굽이 왼발 구두보다 훨씬 높았다.

"1967년 4살 때 버스에 치여 오른쪽 무릎 성장판이 망가졌고, 현재 오른쪽 다리는 왼쪽 다리보다 10cm가량 짧아요. 무릎 인대가 망가져 다리를 펼 수도 없죠."
"치료가 잘 안됐나 보네요?"
"집이 가난해서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았어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2년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직도 왜 돌아가셨는지 몰라요. 집이 가난하니, 할머니가 병원에 갈 수 없었거든요."

불행했던 시절을 겪은 그는 다시는 자신과 같은 불행을 겪는 사람이 없길 바랐다. 의대에 다니면서 판자촌 진료봉사활동을 한 것도, 의대 졸업 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국민 부담을 덜어주는 의료보험 통합을 위해 싸우는 시민운동가의 삶을 산 것도 그 때문이다.

이상이(53) 복지국가소사시어티 공동대표(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야기다. 그는 1990년대 시민운동을 하다가 김대중 정부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보건의료 정책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수백 개로 쪼개져있던 직장·지역의료보험조합을 하나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국민이 차별 없이 동일한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보편주의 의료보장제도를 성공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죠. 그때를 생각하면 꿈만 같아요."

그는 참여정부에도 몸담으면서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장을 지내면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전체 의료비 가운데 국민이 아닌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비율)을 65%까지 끌어올렸다.

이상이 대표는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정권교체를 앞두고 복지국가소사이어티를 만들었다. 생소한 역동적 복지국가 담론을 정치권에 전파했다. 10년이 지났다. 오는 11월 2일 국회에서 열리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창립 1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지난 23일 이상이 대표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10년] 천당과 지옥을 오가다

지난 10년 동안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그것도 여러 번이다. 단체는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물결에 대안을 내놓는 활동에 나섰다. 이상이 대표의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747정책(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 진입)은 작은 파이를 키워 나중에 나눠준다는 거였죠. 거짓말이었어요. 일정한 국민소득에 다다르면, 사람에 대한 보편적 복지와 적극적 복지가 이어져야 경제성장을 이를 수 있어요. 이를 알리는 노력을 했죠."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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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막막했다. 이명박 정부는 의료민영화를 비롯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다들 움츠러들었다. 다행히 지옥은 짧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몇 달 뒤 광우병 사태가 터지면서, 의료·교육 부문 등의 공공성 확보가 화두로 떠올랐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이를 바탕으로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국가 발전 모델을 연구해 세상에 알렸다.

단체는 2010년 3월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 제안대회를 열었고, 당시 민주당 등 야권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그해 6월 지방선거 때는 무상급식에서 촉발된 복지국가 논쟁이 한창 벌어졌고, 복지국가 담론은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미래권력으로 주목받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복지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때보다 기분 좋은 때는 없었죠. 이후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국민행복시대, 생애 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강조했고, 문재인 후보는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세웠어요. 그때만큼 복지국가 정책을 두고 치열하게 맞붙은 대선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지옥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또한 복지국가의 전제조건인 증세는 정치권에서 금기어가 되면서, 복지국가 담론은 힘을 잃었다.

그래서 이상이 대표는 직접 국민을 만나기로 했다. 2016년 팟캐스트방송을 시작했다. 이후 국민은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고, 광화문광장에서는 수많은 촛불이 타올랐다.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나왔다. 단체 출범 10년 만에 복지국가 기틀을 세울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앞으로는?]
"문재인 정부 성공을 돕겠다"


이상이 대표는 1년 전부터 시사·정치분야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새가 날아든다>를 비롯해, 직접 진행하는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등 팟캐스트 방송만 3곳에 출연하고 있다. 전국을 다니며 매달 5~10차례의 대중 강연을 진행하고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도 고정 출연하고 있다.

그는 대중을 만나면서 국민건강보험을 강화해 국민의 부담을 줄이는 '문재인 케어'를 비롯해 치매국가 책임제, 최저임금 등 문재인 정부의 복지·경제정책을 소개하고 반대 세력의 공격을 반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통해 포용적 복지국가를 만들려고 하죠. 이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주장한 내용이 바탕이 된 거예요. 실제 문재인 정부의 정권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우리 단체 회원들이 많이 들어갔어요."

이상이 대표는 어느새 소득주도 성장론 전도사로 변했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서는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제도적으로 튼튼하게 만들어야 해요. 이를 위해서는 보편적 복지, 공정한 시장, 경제 민주화 등 세 가지가 확립돼야 해요. 그러면 혁신 성장은 저절로 일어나죠."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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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복지국가가 좋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재원 마련이라는 벽에 막힌다. 문재인 정부는 증세 논란을 넘을 수 있을까. 그에게 물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의 국민 조세부담률은 25% 수준이에요. 우리나라는 19%로, OECD에 비교하면 6%포인트가 부족하죠. 100조 원의 세금을 덜 내고 있는 거예요. 그럼 지금 삶이 행복한가요? 그렇지 않다면 바꿔야죠. 지금 정치인들은 표 떨어질까봐 증세 얘기를 강하게 못하죠. 제가 할 일은 정치인들이 증세 얘기를 할 수 있도록, 증세하면 표 떨어지는 게 아니라 표를 얻는다는 상황을 만들어야죠."

이상이 대표는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돕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케어의 목표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70%로 올리는 거예요. OECD 평균이 81%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쉽죠. 이를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문재인 정부를 독려하면서 조금 더 앞으로 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게 중요하죠.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깨어 있는 시민들이 늘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정권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게 아니라, 정확한 내용으로 시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비전에 동의하는 유권자가 전체의 20%만 되면, 복지국가를 금방 되지 않을까요?"


태그:#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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