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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우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개 때문에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 안타까운 일도 종종 벌어지고, 이웃 간의 갈등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좋지만,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쓴다.

'행운이'는 우리 집에서 기르는 개 이름이다. 우리 가족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몇 해 전 전혀 뜻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우리에게 왔다. 어느 날 각시가 회사 직원에게 선물로 받았다며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온 것이다.

주말이면 가끔 각시와 함께 한강 둔치로 산책하러 나가는데 개를 데리고 나온 애견인들이 많다. 하루는 유난히도 귀엽고 예쁜 개를 본 각시가 "우리도 강아지 한 마리 기를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즉각 손사래를 치며 싫다고 했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 동네 개에게 물린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기에 개를 보면 나도 모르게 바싹 긴장한다. 개 주인은 "우리 개는 안 무니까 괜찮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곧바로 내 종아리를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버렸다. 그 후 개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가 생겼다. 

내가 개를 싫어한다는 것을 각시도 알고 있었다. 신혼 때 살았던 전셋집은 신공덕동 용마루고개 근처의 달동네였다. 제법 마당이 넓었던 그 집에서 함께 살던 다른 세입자가 마당에 개를 묶어놓고 키웠다. 전형적인 잡종견으로 황구였다.

개 비린내와 지린내가 너무 심하게 났다. 그런데도 개 주인은 목욕 한 번 시키지 않았고 마당 청소 한 번 하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개 냄새는 더욱 심했다. 그 냄새를 견디지 못해 아침마다 내가 마당 청소를 했다. 세제를 뿌려 충분히 거품을 내 열심히 물청소해도 역겨운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쌓이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마을에는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는 허리가 기역자로 꼬부라진 할머니도 있었다. 목줄도 안 한 크고 작은 개들이 할머니를 따라 좁은 골목길을 오르내렸다.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이 개들에게 물릴까 봐 여간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바로 아랫집에 세 들어 사는 여자는 백구를 한 마리 키웠는데, 개가 똥오줌을 누려고 하면 슬그머니 집 밖으로 내놓았다. 백구가 골목길에 제멋대로 싸놓은 개똥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둬 오가는 사람이 밟기 일쑤였다. 참 개념 없이 개를 키우는 사람들 때문에 애꿎은 개까지 싫어졌었다.

그러고서 세월이 20년도 더 흘렀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지만 각시 입에서 이따금 애완견을 길러보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그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싫다고 말했다. 어느 날 밥상머리에서 각시가 딸에게 강아지 말을 꺼냈다. 예쁜 강아지가 집에서 쫄랑거리고 다니면 얼마나 귀엽겠냐며 꼬드겼다. 딸은 내 눈치를 보면서 '귀엽기는 하겠다'고 살짝궁 맞장구를 쳤다. 모녀가 짜고서 나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가 분명했다. 나는 인상까지 쓰면서 집에서 개를 키우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엉겁결에 우리 곁으로 온 '행운'

그 후로도 비슷한 말이 여러 번 나왔다. 천둥이 잦으면 비가 온다는 말이 있다. 애완견 이야기가 자꾸 나오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꾸 반대만 하는 것도 민주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 하루는 조건을 내걸었다. 정말로 강아지를 키우고 싶으면 두 사람 모두 각서를 쓰라고 했다. 똥오줌 잘 치우고, 산책과 목욕을 자주 시키고, 집안에 털이 안 날리게 청소 철저히 하고, 이웃에 피해를 주지 말며, 절대로 내가 신경 쓰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꺼낸 것이 실수였다. 각시와 딸은 우스갯소리로 "우리 각서 쓸까?" 하면서 깔깔거리다가 말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해 집에 오니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던 것이었다.

사연은 이러했다. 각시가 애완견을 파는 가게 앞을 지나가다가 값을 물어봤더니 몇 십만 원을 불러 너무 비싸더라는 이야기를 직원들에게 했던 적이 있는데, 한 직원이 그 말이 생각나서 길거리에서 파는 강아지를 사 왔다는 것이다.

시츄(자료사진)
 시츄(자료사진)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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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도 안 뗀 주먹만 한 녀석이었다. 시추라고 했다. 쫄랑거리고 다니는 모습이 앙증맞고 귀여웠다. 아들과 딸아이도 데리고 놀며 좋아했다. 딸아이가 '행운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렇게 행운이는 각서도 쓰지 않은 상태에서 엉겁결에 우리 집에 들어왔다.

행운이는 건강하게 쑥쑥 자랐다. 처음에는 시추인 줄 알았는데, 자라는 것을 보니 다른 종과 많이 섞인 것이 분명했다. 몰티즈 모습도 보이고, 달마티안도 섞였는지 거무스름한 무늬도 여러 개 있다. 이빨이 자랄 즈음에 나무의자를 완전히 갉아 못쓰게 만들었고 신발 등도 물어뜯었다. 똥오줌 치우고, 목욕시키고, 청소를 자주 하는 등 뒷손이 여간 많이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각시와 딸은 행운이를 예뻐하기만 했지 귀찮은 일은 대충대충 건성으로 했다. 우려했던 대로 행운이의 뒤치다꺼리는 내 몫이 됐다.

내 집에 들어온 생명이라서 자주 눈길이 가고 손길이 갔다. 돈도 적잖게 들어갔다. 밥을 잘 안 먹고 힘이 없어 보이면 무슨 병이라도 든 것은 아닌가 걱정되고, 혼자 두고 가족이 외출할 일이 생길 때면 마음이 편치 못했다. 밥을 먹다가도 똥오줌을 싸면 치워줘야 했다. 녀석은 우리 집에 기생해 가족들에게 잘 적응했다. 저를 좋아하는 사람과 덜 좋아하는 사람을 아는 것 같기도 하다. 각시와 딸을 잘 따르고 그다음은 나, 버릇이 나빠진다고 냉정하게 대하는 아들하고는 거리감이 좀 있다.

개는 참 인간 친화적인 동물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껑충껑충 뛰면서 그렇게 반길 수가 없다. 꼬리를 마구 흔드는 것은 그만큼 주인을 많이 기다렸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겨우 십여 초 정도 그러다가 말지만, 세상에서 그토록 나를 반겨주는 존재는 행운이밖에 없다. 어떤 생각으로 나를 바라보는지는 모르지만 빤히 응시하는 동그란 눈이 참 예쁘다. "너는 무슨 인연이 있기에 우리에게 왔니?" 하고 실없이 묻곤 하지만, 대답할 리는 만무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개 중에는 영리하게 재주를 부리는 애완견도 많은데 우리 집 행운이는 한마디로 말해서 멍청하다. 수백 번의 훈련 끝에 겨우 '앉아, 기다려!' 등의 말을 가르쳤지만, 그것도 할 때보다 안 할 때가 더 많다. 툭하면 으르릉거리며 성깔을 드러낸다. 아내가 이발기를 사서 달마다 한 번 정도 털을 깎아주는데, 한 번은 이발기에 살이 집혔다. 그것을 빼낼 때 내가 잡아주다가 손을 물렸다. 왼손 집게손가락이 심하게 파여 피가 뚝뚝 떨어졌다. 병원에 가서 응급처치를 받고 여섯 바늘이나 꿰맨 후 3개월 동안 병원에 다녔다. 기르는 개에게 물려보니 더 아프고 더 기가 막혔다. 그러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 것 같다.

'개는 영물(靈物)'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역사와 전설 속에는 의견(義犬)이 많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에는 의견비(義犬碑)가 세워져 있다. 만취한 주인이 풀밭에 누워 잠든 사이 불이 나자 기르던 개가 개울에 몸을 적셔 주인을 구한 뒤 지쳐서 죽었다는 이야기는 교과서에도 수록된 것으로 기억한다. 오늘날에도 주인의 목숨을 구한 개 이야기가 심심찮게 보도된다. 세상은 넓고 명견은 많지만 우리 집 행운이는 영리한 견종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두뇌가 안 좋다고 생각하는 행운이에게도 놀라운 감각이 있다. 우리 가족이 외출복을 입고 출근할 때는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으면서 산책시켜 주려는 것은 기막히게 알아차리고 방방 뛰어다닌다. 게다가 주인의 기분도 알아차리는 것 같다. 기분이 좋을 때는 놀아달라고 마구 보채는데, 내심 화가 나 있을 때는 눈치를 슬금슬금 본다. 사람도 감지하지 못하는 어떤 미세한 뉘앙스, 감정선을 읽어내는 것일까? 녀석의 촉촉한 눈빛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짜증이 일던 마음이 스르르 사라지기도 한다. 

동물 애호가들은 집에서 기르는 '애완(愛玩)동물'을 '반려(伴侶)동물'로 부르자고 말한다. 애완동물이 '사람이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풀며 희롱할 수 있는 장난감 같은 존재'란 의미를 내포했다면, 반려동물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며 교감할 수 있는 존재'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생명을 존중하자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데, 여기에 무어라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그럴싸한 이름으로 불러도 애완동물은 인간 이기심의 대상일 뿐이다. 때에 따라서는 동물을 끝없이 괴롭히고 귀찮게 하는 학대자일 수도 있다.

'반려견'으로 부르자? 문제는 그게 아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SBS 교양 프로그램 <동물농장>을 즐겨 시청한다. '강아지 농장편'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일명 '강아지 번식장'이라고 불리는 그곳의 광경은 개들에게는 지옥이었다. 강제 교배를 위해 발정 유도제 주사를 놓기도 하고, 빠른 출산을 위해 수의사 자격증도 없는 번식장 주인이 제왕절개 수술로 새끼를 빼내는 일을 예사로 했다. 더 이상 새끼를 낳지 못하는 개는 개소주 집에 팔거나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곳에는 생명의 존엄성 따위는 아예 없었다.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에서 철망에 갇힌 어미 개에게 끊임없이 새끼를 낳게 하는 종견장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강아지가 태어나 애견 가게나 인터넷 등에서 판매된다. 애견 가게에서도 그런 사정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모두가 우리 가게는 절대로 안 그런다고 하겠지만, 동물 애호가의 탈을 쓴 수많은 '개장사'들이 '반려견 운운하며' 돈벌이를 하는 현실이다.

인간과 애완동물의 만남은 처음부터 일방적이다. 애당초 동물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어느 순간 주인에게 선택되어 사랑을 받거나 학대를 당하면서 지내다가 귀찮아지거나 싫증이 나면 언제라도 거리에 버려질 수도 있는 가련한 존재이면서 '반려동물'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다.

길에는 매년 수많은 동물이 버려진다. 북한산 등산을 하다가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들을 볼 때가 있다. 야생화된 들개 떼를 볼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야생 들개의 대부분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반려견이었을 것이다. 책임지지 못할 바에는 처음부터 기르지 말아야 하는데, 함부로 기르고 함부로 버리면서 입으로만 동물을 사랑한다고 떠드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진짜 동물을 사랑하는 경우는 늙고 병들어 버려진 동물을 데려다가 보살펴주는 것인데, 그런 경우는 드물다.

동물은 인간 앞에서 철저히 약자이다. 주인이 밥을 챙겨주지 않으면 꼼짝없이 굶어야 한다. 말을 못 하는 하등한 동물에 대해 대단히 시혜적 태도로 대하면서 그것을 '사랑과 존중'이라고 한다. 차라리 솔직하게 측은지정(惻隱之情)을 입에 담는 편이 낫다. 주인의 생각에 따라 아무렇게나 휘둘릴 수 있는 가련한 존재에 대한 연민을 갖는 것이 동물 사랑의 출발점이다.

러시아의 동물학자 스티븐 부디안스키의 <개에 대하여>라는 책은 매우 날카롭고 정곡을 찌른다. 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하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과학에 중심을 두고 개를 설명하고 있어서 개에 대한 깊은 통찰의 눈을 뜨게 한다. 책 속에는 "개를 있는 그대로, 개다운 사고방식과 개다운 동기, 개다운 인식, 개다운 본능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것, 이것이 개의 진정한 본성과 진정한 능력에 대한 존중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견해다. 개를 사랑하려면 개를 있는 모습 그대로 '개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의 공동주택은 애완견을 기를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공동주택에서 애완견을 기르는 것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라서 동물병원 수의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교배를 못 해 생기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고 해 중성화 수술을 시켰지만, 벙어리 개로 만드는 성대 수술은 차마 할 짓이 못 되는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그것은 두고두고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나 시끄럽게 짖어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을까 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개는 짖는 것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일 텐데, 사람들은 듣기 싫어하므로 애써 단속을 시킨다.

활동 중인 개(자료사진)
 활동 중인 개(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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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가 좁은 방안에 갇혀 맘껏 활동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안쓰럽고 가엽게 여겨진다. 행운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산책이다. 산책하러 나갈 기미가 보이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목줄을 해 집 밖으로 나가면 그렇게 좋아할 수 없다. 출근하는 평일에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산책을 시켜줄 수 없지만, 가능한 한 주말이면 한강 둔치로 하여 상암동 하늘공원으로 올라가서 한 바퀴 빙 돈다. 원기가 왕성할 때는 양쪽 귀를 깃발처럼 날리면서 힘차게 걷다가 지치면 귀를 축 늘어뜨린다. 2시간 정도 산책을 시켜주면 그날은 피곤한지 잠도 잘 잔다.

행운이를 산책시키면서 늘 느끼는 것은 개념 없는 개 주인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에 개똥이 널브러져 있고 목줄도 하지 않은 채 돌아다니는 개도 있다.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지만 "우리 개는 안 물어요" 어쩌고 하면서 조금도 조심하는 기색조차 없다.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은 추호도 안 하는 것 같다. 공중도덕을 모르는, 알더라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개를 키울 자격조차 없다.

행운이를 기르면서 개를 싫어하던 마음이 많이 완화됐다. 그렇다고 개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동물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적절한 비유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이름의 두 마리 개를 키운다고 한다.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그 두 마리의 개를 단번에 쫓아낼 개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세간에 떠돌지만, 아닌 게 아니라 직접 길러 보니 선입견과 편견이 사라졌다. 행운이가 무슨 인연이 있어서 우리 집에 왔는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온 그 인연을 지중하게 생각한다. 모든 생명을 대하는 관점은 무엇보다도 사랑이 먼저다.


태그:#인간과 애완동물, #생명을 대하는 관점, #유기견을 보며, #개념 없는 개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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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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