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4일 새벽의 화재 현장
 4일 새벽의 화재 현장
ⓒ 송주연

관련사진보기


캐나다 밴쿠버 시각으로 4일 오전 5시 30분께였다. 그러니까 한국 시각으로는 며느리들의 고된 노동이 끝나갈 추석 당일 저녁 무렵이었을 거다. 곤히 자고 있는데 폭발음 소리와 함께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곧이어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우리 집 주변으로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거실에 나와 창밖을 보니 우리 집 한 블록 옆에 있는 건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잠시 놀라긴 했으나 소방차와 구급차가 왔으니 더 이상 불길이 번질 것 같지는 않아 다시 침대로 가서 억지로 누웠다. 그리고 2시간 후 쯤 알람 소리에 '진짜로' 잠에서 깼다.

뉴스에선 '재산 피해' 대신 '반려견 구조 상황' 보도해 

아침에 다시 창밖을 보니 많이 진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소방차가 물을 뿜고 있었고, 주변은 연기로 자욱했다. 화재가 난 블록은 폐쇄되었지만 이웃들의 일상은 정상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아침 준비를 하고 학교로 일터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날 우리 집 옆에서 발생한 화재는 밴쿠버시가 속한 주인 브리티시 콜롬비아주의 주요 뉴스거리 중 하나였다. 인터넷과 라디오, 텔레비전에서는 우리 집 옆의 광경이 실시간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나는 뉴스를 접하면서 인명피해가 없다는데 안도했고 다음으로 '저 건물 몽땅 다 탔는데 도대체 재산 피해는 얼마 정도나 하는 거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뉴스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떤 뉴스에도 내 물음에 대한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화재가 난 곳의 옆 건물이 '도그호텔' - 주인이 여행을 가거나 부재할 경우 반려견을 맡아 보살펴 주는 곳 - 이었는데, 그곳의 개들이 구조되는 상황에 대해 아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캐나다 국영방송 CBC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화재에서 실종된 개들의 구조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캐나다 국영방송 CBC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화재에서 실종된 개들의 구조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 송주연

관련사진보기


처음 화재를 신고한 목격자는 개 짖는 소리가 났다고 제보했고, 뉴스에서는 개들이 구조되는 사진들이 올라왔다. 현장에 있던 개들 10여 마리는 모두 구조되어 동물응급센터로 보내져서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 검진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한 마리가 사라졌는데 이것 역시 주요 뉴스로 다루어졌다. 캐나다 국영방송인 CBC는 홈페이지에 실종된 개의 사진을 링크했고 개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한 트위터에 개를 봤다는 제보가 올라왔고, 도그호텔 주인이 화재현장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개를 찾았다는 기사가 최종으로 업데이트됐다. 화재 보도가 나간 4일 하루 동안 뉴스들이 업데이트한 것은 재산손실에 대한 보도가 아니라 개들의 생명에 대한 것이었다.

그랬다. 중요한 건 '생명'이었다. 이곳에서 재해가 났을 때 중요한 건 재산피해 액수가 아니었다. 그것보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반려동물의 생명이 먼저였다. 그날 낮 삼삼오오 모인 동네 사람들의 대화에서는 잃어버린 개 한 마리를 찾은 것에 안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화재가 난 곳에 도그호텔이 있었음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재산손실을 먼저 떠올렸던 내 마음이 살짝 부끄러워지는 날이었다.

반려동물이 편한 도시, 밴쿠버 

밴쿠버시의 상점, 음식점, 은행 등은 출입문 앞에 반려견을 위한 물그릇을 늘 준비해둔다.
 밴쿠버시의 상점, 음식점, 은행 등은 출입문 앞에 반려견을 위한 물그릇을 늘 준비해둔다.
ⓒ 송주연

관련사진보기


사실 그동안 밴쿠버에서의 생활을 생각해보면 이 같은 뉴스의 초점과 시민들의 반응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긴 했다. 밴쿠버 시민들의 일상이 영위되는 곳들(마트, 식당, 은행, 각종 상점, 편의점 등)의 출입문 입구에는 대부분 개들을 위한 물통이 비치되어 있다.

식당은 야외좌석이 있어서 개를 동반한 사람들이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고, 일부 은행과 보험회사는 개를 데리고 들어와 상담을 받을 수 있게, 영업장 안에도 개를 위한 물과 간식, 심지어 작은 반려견 실내놀이터까지 마련해 둔다. 이런 시설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개는 주인과 함께 있는 것을 가장 편안해하는 본성을 가진 동물이므로 최대한 주인과 함께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 물통은 수분섭취가 중요한 개들이 주인과 함께 길을 가다가 언제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뿐만 아니다. 밴쿠버시에서는 주로 실내에서 생활하는 반려견이 마음 놓고 뛰놀 수 있도록 36곳의 반려견 전용 공원(개 목줄을 풀어 놓을 수 있는 공원)을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입양한 토리가 청와대 마당에 묶여 있는 사진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지만, 여기에서 반려견을 뒷마당에 묶어 놓고 키우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밴쿠버시는 Animal control by-law no.1950를 통해 '반려견의 주인은 적절한 좋은 음식과 물 안식처, 충분한 운동을 제공해야 한다'(5조1항), '개를 물체 등에 묶어 두어서는 안된다'(5조2항)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반려견 매너에 대한 규칙도 엄격하다. 개가 출입할 수 없는 곳(어린이 놀이터 등)과 목줄을 매고 다녀야 하는 구역, 풀어놔도 되는 구역은 법으로 정해져 있고, 어길 경우 벌금이 부과된다. 반려견의 배설물을 처리할 수 있는 배변봉투를 들고 다니고 지정된 휴지통에 버리는 것은 당연한 매너로 여겨진다.

동물과 사람의 상생

밴쿠버시에서 배포하는 반려견 잘 키우는 법에 관한 만화자료
 밴쿠버시에서 배포하는 반려견 잘 키우는 법에 관한 만화자료
ⓒ 송주연

관련사진보기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동물과 사람의 생명을 똑같이 존중하는 것. 아니 최소한, 재해가 닥쳤을 때 재산이나 물건보다는 함께 살고 있는 동물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주는 것. 그리고 그 동물의 타고난 특성을 존중하고 사람 위주의 세상에서 동물 고유의 본성이 위협받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배려해주는 것.

설령 그것이 조금은 귀찮고 번거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듯, 동물 역시 동물답게 살 권리가 있음을 알고 도와주는 것. 이런 것이 사람으로서의 도리이며, 함께 살고 있는 동물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싶다.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유기견을 입양했고, 이곳 밴쿠버에도 함께 왔다. 나름 우리 집 막내라 여기고 매우 귀하게 키우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바로 옆 화재 사건에서 그 건물 옆이 도그호텔임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동물의 생명' 보다 '재산 가치'가 먼저 떠올랐던 거다. 그날 뉴스들을 보며 동물과 사람의 상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했고 반성했다.

같은 날 오후. 난 다음 달 있을 여행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 강아지를 동네의 다른 도그호텔에 적응 연습을 시키려고 데려갔다. 이곳 호텔에선 반려견을 맡아주기 전에 주인과 분리된 반려견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확인하는 3~5시간의 적응시간을 갖는다. 강아지를 맡겨두고 돌아서는데 호텔직원이 말했다. "지켜보다 1시간 정도 지나도 불안해하거나 스트레스가 심해 보이면 연락드릴게요."

난 강하게 말했다. "5시간까지 된다면서요? 저 그사이에 아이 픽업해서 축구클럽 데려다 주고 해야 해서 못 오는데요?" 그러자 호텔직원은 어이없다는 투로 나에게 말했다. "그럼, 당신 개가 엄청 스트레스 받고 불안해하는데도 계속 여기 있어도 된다는 뜻인가요?" 순간 또 뜨끔했다. 오전에 화재 보도를 보면서 그토록 많이 고민한 직후인데도, 여전히 사람중심, 내 편의대로 우리 강아지를 대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원고는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태그:#반려동물, #밴쿠버화재, #반려견구조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