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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없이 긴 연휴입니다. 하지만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긴 연휴에 추석이라는 큰 명절이 끼어 있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긴 휴가를 즐길 계획에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긴 연휴 가운데 명절을 보내게 될 것에 벌써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결혼하기 전엔 명절이 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행사는 아니었습니다. 집안에서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았기에 다섯 명의 한 가족과 인사를 오는 가족·친지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면 되었습니다. 물론 이 음식의 양이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주도하에 가족들이 조금씩 도우며 명절 음식을 차리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힘에 부치는데도 자식들과 조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싸줄 생각에 넉넉히 음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메뉴는 하네 마네, 떡은 얼만큼을 하네 정도의 실랑이로 짜증을 내긴 했지만 큰 스트레스는 아니었습니다. 챙겨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만 했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 음식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하기는 했지만 막상 상을 차려놓으면 우리는 맛있게 배를 채웠습니다. 물론 밤늦게까지 준비하는 음식들도, 그것을 차려내는 일도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당시엔 어머니의 수고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바라본 명절, 이상했다

 추석입니다
 추석입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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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나자 명절을 보내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게 되었습니다. 명절엔 남편(나) 부모님 집부터 방문해야 하는 것이 암묵적 원칙이었고, 남편 집 명절음식을 며느리(아내)가 준비해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을 들으며 공기처럼 마시며 살아온 이 당연한 일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명절을 보내는 것이 그리 편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명절을 보내는 풍경을 바라보자 이상한 점들이 많았습니다. 왜 장인·장모님은 매번 명절 당일 저녁 때까지 귀한 딸이 집에 오길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우리 가족 친지들 상을 왜 어머니와 아내가 애쓰며 차려줘야 하는 것인지 이상했습니다.

가부장적 사회의 피해자인 어머니는 며느리를 자신의 시어머니처럼 대하지 않을 것이라 말은 하셨지만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결혼한 여동생은 명절날 보고 가야 하지 않느냐며 말하는 나의 어머니는 아내도 명절에 보고픈 오빠가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하셨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집으로 떠나는 명절 당일에도 조금만 더 있다 가라 하시는 시어머니의 눈치가 보여 괴롭고, 정작 자신의 집에 도착해서도 사위(나)가 먹을 음식을 차려야 하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시어머니의 은근한 때로는 노골적인 자기 자식 자랑에 웃음 지어주기도 하고, 며느리를 귀히 여기지 않는 시어머니의 태도에 속상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속상해하는 아내의 마음을 알아채고 공감하기는커녕 "옛날 어른들이 다 그렇지 뭐"라며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거나, "이놈의 집구석 다시는 가지 말자"는 현실적이지도 않으며 아무 소용도 없는 반응을 했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동안의 명절들을 돌아보니 아내에게 참 미안합니다.

이번 명절은 이전과는 다르게 보내보려고 합니다. 시댁(아내 입장에서)을 아예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에 갑니다. 음식 준비도 제가 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내는 시댁에 가서 먹을 음식을 여전히 준비해 갑니다. 하지만 집에서 음식을 차리거나 하는 일엔 제가 적극적으로 임하려고 합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속상하게 하는 말을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 하신다는 첩보를 아내로부터 입수한만큼 정신을 차리고 아내와 함께 있으려고 합니다. 자신의 아들과 아내를 비교하는 말을 하신다 싶으면 정중하게 며느리 역시 다른 집의 소중하고 귀한 딸임을 확실히 말하려고 합니다.

긴 연휴중 잠시의 자유시간을

 자유시간을 갖기를
 자유시간을 갖기를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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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댁에서 인사를 드리고 나서는 추석날이 되기 전 이틀을 하루씩 나누어 아내와 제가 각자 온전히 자기를 위한 시간을 하루씩 가질 계획입니다. 아이들과 가정을 돌보느라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는 아내가 잠시 동안이라도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게요. 사실 이틀을 전부 아내의 날로 해도 부족할 텐데 아내는 감사하게도 제게도 하루를 쾌척했습니다.

숨 쉬는 것처럼 의식하지 못하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제 삶의 태도에 스며 있는 가부장적인 면을 살아가며 마주하게 될 때 기꺼이 그것을 바꾸려는 태도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유지하되 단지 일하며 돈을 벌어온다는 것 가지고 생색을 내거나 권리를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육아나 집안일은 돕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나의 일임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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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입니다. stargazer@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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