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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영수증을 놓고 '그뤠잇'과 '스튜핏'을 연발하며 데뷔 25년 만에 '대세'로 떠오른 김생민씨, 팟캐스트와 방송에서 그가 말한 '절약 비법'들이 대중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를 외치며 '절약' 대신 여행과 취미생활을 위해 아낌없이 쓰는 이들도 있습니다. '김생민족'과 '욜로족'으로 사는 시민기자들이 번갈아 기고하는 <김생민족 vs. 욜로족> 기획을 전합니다. 당신은 어디쯤 서 계신가요? [편집자말]
샌들
 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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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 샌들은 버려야 해요."

신발 정리를 하던 나는 아이의 말에 들고 있던 샌들을 살펴봤다.

"아니, 왜? 이 샌들은 이번 여름에 산 거잖아."
"응, 그런데 앞부분 한쪽이 벗겨져서 보기 흉해요. 정말 아까워요. 얼마 신지도 않았는데."

아이의 말을 들으며 나는 안경까지 찾아 쓰고 샌들을 살펴보니 왼쪽의 안쪽 앞부분이 벗겨져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샌들 어디에서 산 거야? 그리고 가죽이 아니구나. 그러니까 이렇지."
"강남 지하상가에서 3만 원 주고 샀어요."

아이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담겨있었다.

"그러게 엄마가 말했지. 구두나 가방은 제대로 된 걸 사라고. 한 해 여름마다 3만 원 샌들을 신고 버리는 것 보다는 가죽으로 된 샌들을 샀으면 적어도 10년은 신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당장 지불해야 할 돈이 부담스럽다고 싼 걸 사는 것보다는 길게 보고 제대로 된 걸 사는 게 현명한 거야. 한 번에 내는 게 부담스러우니까 할부로 사면 되고, 물론 무이자로. 참, 너 아직도 신용카드 안 만들었니? 신용카드 쓴다고 나쁜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거야?"
"네. 네. 만들 거예요. 엄마 말씀이 다 맞아요. 아무렴요."

내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보이자 아이는 너스레를 떨며 말을 끊었다.

원칙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돈 쓰기

돈을 쓰는 데는 원칙이 있다
 돈을 쓰는 데는 원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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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학원을 졸업하고 새내기 직장생활을 하는 아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돈 관리에 야무지다. 다른 무엇보다 신용카드를 쓰는 게 마치 나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꺼리고 있다. 대신 체크카드를 쓰고 있는데 직장인으로 신용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신용카드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몇 번을 권유했었다.

또 이번처럼 제대로 된 샌들을 구입하려면 부담스러운 현금보다는 무이자 할부를 이용하는 게 더 낫다는 것도. 그럼으로써 지출을 잘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면 아이가 돈을 쓰는 부분에 엄마인 나의 영향이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돈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편이다. 그렇다고 흔히들 말하는 구두쇠와는 거리가 멀다.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습관으로 나름대로의 가치관이기도 하다.

전자제품은 적어도 10년 이상은 쓰는 게 기본이고 무엇이든 고장 나면 수리하거나 손질해서 다시 쓰고, 그래서 세탁기는 15년이 넘어가고 김치 냉장고도 거의 20여 년이 돼 간다.

그리고 요리 솜씨는 특별하지 않아도 사 먹는 것보다는 내 손으로 만들고,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은 8월 1일부터, 아무리 추워도 보일러는 12월 1일부터 켜고 있다. 왜냐하면 에어컨이나 보일러는 한 번 틀기 시작하면 계속 틀어야 하기 때문에 날을 정해놓고 있다. 또 나도 보통의 주부처럼 외출할 때 변변한 옷가지는 없지만 다행히 결혼하기 전과 지금의 몸무게가 비슷해서 기본적인 옷들은 버리지 않는 한 지금도 입고 있다.

거기에 내가 아가씨 때 입었던 옷을 지금의 아이가 입는 옷도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 괜히 흐뭇해지곤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돈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좋고, 손에 쥔 것이 없다고 탓하기 보다는 현명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남편의 사업 부도, 알뜰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났다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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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한 차례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그 후에는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등, 허리가 휠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돈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그래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남편의 퇴직으로 막연한 불안함 때문에 더 몸을 사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필요한 물건을 살 때도 몇 번을 다시 생각하는 자신이 답답할 때도 있고, 버려도 될 만한 것들을 손보는 나를 보고 아이들이 못마땅해하기도 하고, 덕분에 베란다 한쪽에는 잡다한 물건들이 쌓여있다.

그렇다고 내가, 아니 우리 가족이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아니 잘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물론 아이들에게 필요한 옷들, 특히 외투나 양복, 구두, 백 등은 이름 있는 브랜드로 구입한다. 물론 아울렛 매장에서.

크게 부족하진 않다. 식구들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은 대부분 내 손으로 만들어 먹는다. 홈쇼핑은 하지 않으며, 남편이 쓰던 승용차는 꼼꼼히 따져본 결과 아이의 출퇴근용으로 쓴다. 읽고 싶은 책도 잘 사서 읽는다, 물론 읽고 나면 중고서점으로 가져가 다시 판다. 가끔 영화도 보고,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는 외식도 하고 선물도 주고받는다.

그뿐인가?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족 여행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도 다녀왔으니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생활이 좀 불편하고 답답하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쓸 수 있는 통장이 두둑한 것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

결국, 딸의 샌들을 버리지 못했다

"내일 은행에 가서 신용카드 알아볼게요. 대신 엄마가 잘 알려줘야 해요. 카드 나오면 기념으로 뭘 살까? 가방? 구두? 후후..."
"얘는, 카드 나오기 전부터 쓸 궁리부터 하는 거야? 잊지 마, 무이자 할부라도 네가 내야 한다는 거."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네, 네. 잘 알겠습니다. 기분이다. 카드 나오면 엄마 가방 하나 사야겠다. 엄마, 가방 타령에 답가로. 괜찮죠?"
"응?... 응..."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아이의 샌들을 신발 상자에 담았다.

"엄마, 그 샌들 버리라니까요."
"아니야. 헤진 부분 말고는 새것 이라 너무 아까워. 헤진 부분은 다른 가죽으로 붙여보게. 그래서 나라도 신지 뭐."
"엄마..."
"엄마도 인심 썼다. 대신 네 샌들은 엄마가 사줄게. 가죽으로. 후후후."

우리는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태그:#김생민족, #욜로족, #김생민, #그뤠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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