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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 홍살문이 시멘트로 만들어져서 너무 놀랐는데 이순신 장군 묘소에 있는 홍살문도 시멘트로 만들어져서 너무 실망했어요."

경기도 교육청이 주최하는 '학생이 만들어가는 꿈의 학교'에 참가한 김우진(의정부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멘트로 만들면 나무보다 더 튼튼해서 좋은 거 아니냐는 우문(愚問)에 곰곰이 생각하던 우진이가 다시 답한다.

"그러면 우리 조상들의 멋이 살지 않잖아요."

'내가 지금 당장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무로 만드는 홍살문들과는 달리 시멘트로 제작돼 있다.
▲ 현충사 홍살문 나무로 만드는 홍살문들과는 달리 시멘트로 제작돼 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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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紅─門)은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붉은색을 칠한 나무문으로 무덤이나 사당 등에 세워진다. 이러한 사전 지식을 전혀 알려주지 않고 현충사와 이순신 장군 묘소 앞에 있는 홍살문은 시멘트로 만들어져있다는 사실만 알려줘도 아이들은 문제점을 찾아 이야기한다.  

내가 참여하게 된 꿈의 학교는 경기도교육청이 주최한 '학생이 만들어 가는 꿈의 학교'다. 학생이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진로탐색 및 꿈을 실현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학생이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어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꿈지기(꿈의 학교 선생님)의 손이 많이 필요했다.

꿈의 학교 참가 학생들은 꿈의 학교가 수업을 듣고 매번 '오늘 나의 꿈은?'이라는 질문에 답을 적었다.
▲ 감상문 작성 꿈의 학교 참가 학생들은 꿈의 학교가 수업을 듣고 매번 '오늘 나의 꿈은?'이라는 질문에 답을 적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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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에 충실하기도 힘든데 주말에 시간을 내서 아이들을 만나야 하니 종종 포기하고 싶던 순간이 많았다. 특히나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해 아기 띠를 메고 꿈의 학교에 참석하는 날엔 오늘까지만 하고 그만두자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선뜻 그만두기가 어려웠다. 첫날부터 꾸준히 작성한 감상문에 5줄밖에 못 썼던 아이가 갑자기 단락을 나눠서 근사하게 자기 생각을 적어놓는 것을 보면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순신을 만나는 꿈의 학교'의 계획서를 짜고 면접을 진행할 때 면접관이 물었다.

"이 꿈의 학교는 '아~ 답사 가는 구나, 아~ 사진전 하는 구나'라는 생각만 들고 이걸 통해 어떻게 학생의 꿈을 찾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순신을 만나는 꿈의 학교가 끝나면 모두 역사학자가 되겠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명량대첩 420주년인 올해 이순신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서 나는 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 고민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순신을 만나는 꿈의학교 참가 학생들이 현충사를 방문했다.
▲ 이순신을 만나는 꿈의학교 이순신을 만나는 꿈의학교 참가 학생들이 현충사를 방문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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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한자로 써봐."
"네?"
"헐~"
"쌤~ '대(大)'만 쓸 수 있는데요?"

"너희 할아버지 이름은 알고 있니?"
"어? 그러고 보니까 할아버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할아버지가 그 얘기 들으시면 얼마나 속상하실까?"
"(깔깔깔) 그러게요."

아이들이 꿈을 찾겠다 하면 내가 사는 나라와 나의 뿌리는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고 꿈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개인적인 안위를 생각하는 꿈을 찾게 된다. 그것보다는 내가 누구인지 어느 마을에 살고 어떤 나라에 사는지, 내가 공동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찾아야 제대로 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오늘 나의 꿈은?'이라는 종이에 직업을 적기보다는 내가 지금 당장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적어보도록 했다.   

3번의 사전 공부를 마치고 이순신을 만나러 떠난 답사 첫날 저녁, 각자 거북선과 판옥선 중 하나를 선택해 만들어보기로 했다. 순서대로 조립하지 않아 다시 해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여 곳곳에서 '으악!'이라는 비명이 들린다. 손에 순간접착제가 붙었다며 화장실로 뛰어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잘할 수 있는 것이 다른 게 확실한데...

꿈의학교 참가 학생들이 거북선과 판옥선을 만들고 있다.
▲ 거북선과 판옥선 만들기 꿈의학교 참가 학생들이 거북선과 판옥선을 만들고 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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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란한 와중에 답사지마다 설명을 듣지 않고 부산했던 진세준(효자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쌤! 5분이면 끝날 거 같아요!"라고 소리쳤다. 그리곤 잠시 후, 멋진 판옥선을 들고 웃었다.

답사지에 대한 설명을 안 듣고 근처에 있는 사마귀에 더 관심이 많아 걱정했는데 최선을 다해 판옥선을 조립한 걸보니 걱정이 사라졌다. 아이들은 각자 잘할 수 있는 것이 다른 게 확실하다. 그래서 꿈의 학교처럼 이것저것 체험하게 해보고 무엇을 잘하는지 발견해줄 수 있는 꿈의 학교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꿈의학교 참가 학생들이 난중일기와 훈민정음 해례본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
▲ 전시회 관람 꿈의학교 참가 학생들이 난중일기와 훈민정음 해례본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
ⓒ 구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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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학교를 진행하면서 너무나 안타까웠던 것은 학원 일정 때문에 꿈의 학교를 포기하는 학생이 많았다는 것이다. 다양한 것을 체험하고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펼쳐볼 수 있는 좋은 시간에 그것을 포기하고 학원가는 것이다.

꿈의 학교 참여 학생을 모집할 때 어떤 학부모는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는 소리도 들렸다. 그 학부모가 말한 '그런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경기도 교육청이 주최하여 학생생활부에도 기록되는 활동이 하지 말아야 하는 활동으로 규정되는 것도 당황스러웠다.  

이순신을 공부한 후 사진전을 열겠다는 목표는 꿈의 학교 출석률이 떨어지면서 수정됐다. 처음엔 커다란 판옥선을 12척 만들어서 전시하면 어떨까를 고민하기 시작하더니 이번엔 커다란 판옥선이나 거북선 등을 만들어서 하천에 띄워보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기획한 목표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태그:#꿈의학교, #경기도교육청,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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