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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범죄 피해자인 일본군 성노예의 삶을 그려낸 <풀>(보리)과 가해자의 나라인 일본인들이 쓴 반전 시 <아우여 죽지말고 돌아와주오>(들녘)를 읽었다. 사드배치로 전쟁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진 터라 만감이 교차한다.

두 책은 일본 전쟁 범죄 희생자의 목소리와 전쟁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담았다. 전쟁의 피해자는 항상 여성, 아동,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이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평화어머니회가 '전쟁 반대, 평화협정'을 외치며 미국대사관 앞에서 평화 시위를 벌이는 이유다.

일본 반전시를 보며 평화를 반추하다
▲ 아우여 죽지말고 돌아와 주오 일본 반전시를 보며 평화를 반추하다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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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여 죽지말고 돌아와 주오>는 손순옥이 일본의 반전 시 26편을 해설과 함께 엮은 책이다. 저자 손순옥은 단 한 마디를 위해 이 책을 엮었다고 말하고 있다.

"전쟁은 절대로 안 됩니다!"

그렇다. 전쟁은 모두를 파멸시키는 범죄다. 전쟁에서는 엄밀히 말해 승자도 패자도 없다. 오직 무고한 민중의 피와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만 남을 뿐이다. 식민지 일본에 부역하며 친일 행각을 벌였던 한국의 문인과 지식인층이 있었던 반면, 검열이 삼엄했던 시기에 반전.평화를 외치고 조선의 식민지화를 비판했던 일본 문인과 지식인도 있었다.

한 시인은 '적, 아군, 그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사람,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사람의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국가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전쟁을 정당화할 수 없다. 누구도 전쟁에 나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인간의 마음을 잘 표현한 시를 읽어보자.

전쟁에 나가고 싶지 않다/가나이 신사쿠

-왜 전쟁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인가.
-죽이지 않을 수 없다는 기분이 내 속에 일어나지 않고 있는데도 본 적도 없는 사람과 서로 죽여야 한다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모두 기꺼이 소집에 응해 오지 않는가
-거짓입니다
-군중은 저렇게 열광하고 있지 않은가.
-속고 있는 것입니다
-속은 정도로 저렇게. 마음속에서부터 열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마음속에서부터요?
-마음속에서부터다.
-만약 그렇다면 비록 속고 있다 하여도 저는 침묵하겠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무리하게 끌어내져 어쩔 수 없이 군중의 집단에 어울려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을 증오하겠습니다.
-증오한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증오하는 사람이 무수히 생겨도 그렇습니까?
-입 닥쳐! 전쟁은 이미 시작됐어. 자네도 소집되어 있잖아. 싫어도 좋아도 가야만 하지 않는가.
-가고 싶지 않습니다.
-총살이야!
-가고 싶지 않습니다.
-116쪽

반전 시 <후지산>으로 유명한 가네코 미쓰하루는 아들 겐에게 소집영장이 떨어지자 평소 만성기관지염을 앓고 있던 아들의 병세를 더욱 악화시켜 징집 면제를 받게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특별히 부모 사랑의 에고이즘이라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타인에 비하여 그리 자식 사랑이 큰 것은 아니다. 내 본심은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에 맞는 재량으로 군에 대해 부정하는 마음을 표명하여 국민운동으로 확대시켜 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전쟁에 대해서는 단 한 푼도 내고 싶지 않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며, 계속 내 주장을 펼쳐나갈 것이다." -140쪽

후지산/가네코 미쓰하루

찬합처럼
비좁고 옹색한 일본
구석구석 쩨쩨하게
우리들은 몽땅 셈 세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매우 실례되게도
우리네들을 소집해대는 것이다.
호적부여, 빨리 태워져버려라.
그 누구도 내 아들을 기억하지 마라.
아들이여.
내 손바닥 안에 웅크리고 있어라.
모자 속으로 잠시, 사라져 있어라.
아빠와 엄마는, 산기슭 들녘의 오두막집에서
한 밤 내내, 그런 이야기만 하였다.
산기슭의 마른 숲을 적시며
작은 가지를 톡톡 자르는 소리를 내며
밤새도록,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들이여, 흠뻑 젖은 네가
무거운 총을 질질 끌면서, 헐떡거리며
얼이 빠진 듯이 걷고 있다. 그곳은 어디냐?
어디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너를
아빠 엄마가 정처 없이 찾으러 나가는
그러한 꿈만 꾼 불쾌한 하룻밤이
길고도, 불안한 밤이 지나고 겨우 날이 밝았다.
비는 그쳐 있다.
아들이 없는 텅 빈 하늘에
뭐야, 전혀 달갑지 않은
빛바랜 무명옷 같은
후지산.
-139쪽

인간의 온기가 없는 자연이 인간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시인은 아들이 없는 하늘은 텅 비었고 일본의 자랑인 후지산은 빛바랜 무명옷처럼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있다. 욕심을 덜어내고 전쟁 아닌 평화 공존의 삶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전쟁의 추악한 범죄를 알릴 필요가 있다.

살아 있는 역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증언
▲ 풀 살아 있는 역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증언
ⓒ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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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7일 오전 9시 10분 일본군성노예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93)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제 일본군 성노예 피해 생존자는 35명이다. 성노예 피해자들이 사과를 요구하며 1992년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작한 수요시위는 2017년 9월 둘째 주면 1300회 25년이 된다.

<풀>(보리)은 김금숙 만화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그린 만화다. 김금숙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만화 <미자 언니>로 제 14회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역량 있는 작가다.

저자는 이옥선 할머니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던 연길 현장까지 찾아가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고 올 만큼 한 여성의 삶을 충실하게 조명해내려 노력했다. 작가가 붙인 제목 '풀'은 바람에 스러지고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풀, 일제 식민지 조선의 가난한 하층계급의 딸들이 일본군 성노예, 공창, 기생, 작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민초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이옥선 할머니는 1934년 부산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맏딸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다니지 못했던 학교를 보내준다는 말에 우동장사를 하는 집의 수양딸로 가게 된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양 부모가 울산의 술집에 그녀를 팔아넘겼고 심부름을 다녀오다 잡혀서 만주로 끌려가 일본군 성노예로 3년간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것이다.

이옥선 할머니는 '위안부' 생활 중 매독에 걸려 수은 증기로 치료를 해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할머니는 자식이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남편의 자식을 돌보며 50년간 용정에서 살았다.

중국에 남아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향 찾기'가 방송 되면서, 고향을 떠난 지 55년만인 1996년 겨울 한국으로 돌아와 여동생 등 가족을 만났다. 이옥선 할머니는 중국의 남편이 사망한 후, 2000년 6월 '나눔의 집'에 들어갔고 2001년 12월 국적을 회복했다.

당시 국내서 사망 신고가 되어 있던 이옥선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로 한국 정부의 인증을 받아 영구 귀국하지만 가족들은 할머니가 '위안부' 생활을 했다는 점, 수양딸로 팔려갔다는 점을 거북해 하며 만나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엄마 배 속에서 나와서 여태껏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렇게 보고 싶었던 동생들마저 나중에 내가 위안소에 있었다는 걸 알곤 안 보려고 했으니까.
그리고 한국에 와서 보니까 자기들끼리 화목하지도 않아.
다른 집에 가면 식구들끼리 밥상 차려놓고 이야기하고 웃고 그런 모습이 부러웠는데...
우리 형제는 니는 니고 나는 나야 그니까 재미가 없어
내가 여기 뭐하러 왔나 싶고."

이옥선 할머니의 한국에서의 삶도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역사의 비극은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 삶 전체를 굴절시키고 관계를 파괴한 것이다.

윤명숙(상해사범대 중국 '위안부' 문제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의 공창제도가 조선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가난한 집 가장에게 10엔이나 20엔 정도의 돈을 주고 12~20세 딸을 데려다가 양녀로 삼고 음식점 작부나 권번(기생학교)의 동기로 일하게 하거나 열 살도 안 된 아이를 데려다가 식모로 일시키다가 커서는 창기나 작부 같은 접객부로 팔아넘겼다'고 한다.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수양딸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로 살다 55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이옥선 할머니. 이옥선 할머니만이 아니라 민들레처럼 어디든 작은 틈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누가 봐주지 않아도 홀로 꽃피우고 홀씨의 우주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난하고 척박한 식민지 조선에 태어나 살던 하층계급 딸들의 삶이 아니었을까.

식민지 역사의 희생양으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행복을 맛보지 못했다는 이옥선 할머니. 2016년 졸속으로 합의한 '한일위안부협상'을 원천무효화 시키고 제대로 재협상을 하는 길만이 '위안부' 피해자를 위로하는 것이다. 그분들의 한을 풀어드리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덧붙이는 글 | 아우여 죽지말고 돌아와주오/ 손순옥 지음/ 들녘/ 13,000
풀/ 김금숙 만화/ 보리;/ 26,000



풀 - 살아 있는 역사,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증언

김금숙 지음, 보리(2017)


아우여 죽지 말고 돌아와주오 - 일본 반전시를 보며 평화를 반추하다

손순옥 지음, 들녘(2017)


태그:#'위안부' , #전쟁 반대, #평화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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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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