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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8.27 전당대회 출마 선언을 한 뒤 기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8.27 전당대회 출마 선언을 한 뒤 기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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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의 뿌리를 볼 것 같으면 멀게 보면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이고, 가깝게 볼 것 같으면 일종의 이명박 정권에 대한 염증, 반감 이런 것이 있다고 봐야 된다. 그거 모르면 바보 아니냐."

시계를 조금 되돌려 봤다. 지난 2011년 9월 이상돈 중앙대 법학과 교수는 당시 '안철수 신드롬'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였다. 당시 '안철수 신드롬'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이 "올 것이 왔다"며 "국회 탓"으로 돌린 데 대해 "그건 완전히 오발탄"이라고 반박하며 위와 같은 진단을 내린 것이다. 지금 그는 국민의당 의원이지만, 그때만 해도 박근혜 정권의 창출에 기여하기 전 '민간인' 신분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랬다. 그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만 해도 안철수 교수는 신드롬의 중심에 있었고, 그에 앞서 '청춘 멘토'로서 젊은 층의 엄청난 지지를 얻은 인물이었다. 누가 바보인지는 역사가 증명해 줄 테지만, 지금까진 '안철수 신드롬'이 '안철수 블랙홀'이 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상돈 교수'의 6년 전 인터뷰를 길어 올린 것은 그의 7일 라디오 인터뷰 때문이다. 그가  지금은 국민의당에서 한 배를 타고 있는 안철수 전 대표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안철수 신드롬'의 연원에 대해 "그거 모르면 바보"라고 진단했던 인사가 이제는 그 '안철수'에게 "정상이 아니다"라며 "bullshit"(헛소리)이란 영어 단어까지 끌어오며 맹폭을 퍼부었다. 들어 보자.  

"그게 어떤 언론에서 인지 부조화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상식에 벗어난 거죠. 그래도 안철수 전 대표가 국민들에게 남아 있는 좋은 이미지가 깨끗한 정치를 상징한다든가, 겸손함 이런 게 있었는데 그런 건 다 없어졌고 남아 있는 것은 인지 부조화, 터무니없는 나르시즘, 이런 것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

안철수의 새정치는, 끝났다

지난 2011년 9월 6일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입장을 밝힌 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함께 포옹을 하고 있다.
 지난 2011년 9월 6일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입장을 밝힌 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함께 포옹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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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지감이라고 해야 하나, 박근혜 정권 창출에 기여했던 이상돈 의원의 '사심'이 포함된 진단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전 대표에 대한 이른바 '반대파'의 '맹폭'은 대선 패배와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에 이은 '정치인 안철수'의 최대 시련에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역시 당대표에 출마하는 천정배 의원은 지난 6일 오전 간담회를 열고 맹폭을 퍼부었다.

"이번 전당대회는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도부를 대체하기 위한 보궐선거다. 가장 큰 책임은 안철수 전 대선 후보 본인에게 있다."
"(안 전 대표의 출마는) 구태 중의 구태정치다. 누울 자리, 누워서는 안 될 자리조차 구분 못 하는 몰상식, 몰염치의 극치다."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난 당대표 자리를 대선 패배에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대선후보가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안 전 후보가 그렇게 부르짖던 새 정치인가."

대선 패배 '책임론'은 물론 '구태정치'와 '새정치'에 대한 비난까지. 어쩌면 역시 당 대표에 출마한 '정적'의 비판일 수 있지만, 이러한 천정배 의원의 직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건 왜일까. 그건 아마도, 안철수 전 대표가 자초한 '사달'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천정배 의원의 '직설' 회견 직후 예정됐던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나선 안 전 대표의 핵심 '워딩'만 봐도 그러하다.

"나를 정말 염려하는 많은 분들이 '지금은 나설 때 아니다. 오히려 추후 대선 준비를 위해 보약을 먹을 때'라고 많이 말한다. 그렇지만 당이 소멸하면 무슨 소용 있나. 그래서 난 내 미래보다 당의 생존을 위해 내가 나서야겠다, 독배라도 마시겠다고 결심했다."

당 대표 출마부터 그렇거니와, '극중주의'부터 '안중근 의사' 비유까지, 최근 안철수 전 대표의 발언 중 적확했다고, 혹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대목이 있었는지 의아해진다. 더욱이 '당의 생존을 위한 독배'라는 그 '결심'도 과연 그 배경이 어디서 연원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상돈 의원은 이날 인터뷰에서 안 전 대표가 출마 명분으로 내세운 109명 국민의당 지역위원장의 강력한 요구에 대해서도 "제보조작 사건의 재판"이라 일축했다. 김 의원은 "아직 사태파악은 안 됐다"면서도 "심증이 있다"고 말했다. 109명이라는 숫자도 부풀려졌고 서명도, 명단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안 전 대표의 정치생명이 또 한 번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닐 수 없다. 당의 통합과 협치는커녕 그 통합을 무기로 자신의 정치욕만 채우려는 구태와 인지 부조화로 비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헌데, 대화와 협치, 통합은 안 전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던 가치 아니었나. 게다가, 그러한 가치들을 들이대며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데 이용하지 않았던가.

"협치와 통합은 시대정신이다(중략). 그런데, 서로를 궤멸시키려는 사람들, 척결하겠다는 사람들이 갑자기 통합과 협치 이야기한다. 선거용이다. 진심이 없다. 무늬만 통합이고 협치다 (중략). 누가 통합을 이룰 수 있나. 저는 정당 틀을 넘어, 젊고 유능한 정치지도자들과 함께 협치와 연정의 새로운 모델 만들겠다. 저 안철수가 할 수 있다. 진짜 협치, 진짜 통합의 적임자는 바로 저 안철수다." (지난 조기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의 TV 연설 중에서)

6년 전 안철수가 2017년의 안철수에게

6년 전 방송된 <MBC 스페셜>에 '시골의사' 박경철씨와 함께 출연한 당시 안철수 교수.
 6년 전 방송된 <MBC 스페셜>에 '시골의사' 박경철씨와 함께 출연한 당시 안철수 교수.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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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것'이 있는 사람은 굳이 다른 사람에 빗대 자기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안철수는 (스티븐) 잡스, (버니) 샌더스, 에마뉘엘 마크롱, 안중근 등에 자신을 빗대지 말고 '자기'가 누군지를 증명했으면 좋겠다. 언급된 저들 누구도 안철수처럼 무책임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결심을 안중근 의사에 빗댄 안철수 전 대표의 최근 발언에 대한 어느 트위터 사용자의 일침이다. 맞다. 참 많이도 끌어 왔더랬다. 때로는 기업가인 잡스가 됐다가, 어떤 때는 미국 좌파의 상징이 된 버니 샌더스를 끌어왔다가, 심지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까지 끌어왔더랬다.

"트럼프 미 대통령과 와튼 동문" 운운했던 농담은 이제 그의 '멘탈'로 받아들여야 할 지경이다. 왜 많은 국민들이, 행여 국민의당 사정에 관심을 두지 않을 국민들까지 안 전 대표의 '안중근 의사' 발언에 발끈하는 이유 역시 안 전 대표 자신이 제공한 셈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지난 대선까지 얼굴을 붉히며 거론했던 '양보'가 문제였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를 보며 '저런 위인도 대통령을 하는데' 하는 자신감이 샘솟았을까. 그도 아니면 국민의당 창당 전후와 함께 했던 동료 정치인들이 문제였을까.

그렇지 않다. 지금껏 박근혜의 창조경제와 안철수의 새정치를 한국정치사 중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로 인식해왔던 수많은 이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6년간 보여줬던 안철수의 새정치가 구태정치로 진화하고 변모하는 그 좌초의 과정 중심엔 안철수라는 정치인 스스로가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이제 그 정치인 안철수에게 '초심'은커녕 대권 외엔 '목표'도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의 새정치는, 이제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의견에 대해서 동조하지 않거나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배척하는 건 안 좋은 거 같거든요(중략). 회사에서도 의사결정구조가 굉장히 중요한데요. 혼자서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건 안 좋아요.

'작은 의견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그것까지 고려해서 함께 결정해 나가겠다.' 그게 중요한 거지, '우리 지금 급한데 속도를 빨리 하기 위해서 내가 짐을 다 짊어지고 나 혼자 다 결정해서 갈 테니까 나를 믿고 따르시오', 그건 이제 안 맞는 거 같아요."(안철수)

'안철수 신드롬'의 태동기였던 2011년 1월 방송된 <MBC 스페셜 - 2011 신년특집 안철수와 박경철>에 출연했던 '안철수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 <스파이더맨> 속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명대사를 언급하면서. 당시엔 이 '리더십론'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가리키는 발언으로 받아 들여졌었다. "불행하게"도, 6년 전 안철수 교수의 이 발언은 지금의 안철수 전 대표가 꼭 경청하고 수용해야 할 발언인 듯 보인다.


태그:#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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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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