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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머니가 국회 정론관 연단에 서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어제(1일) 새벽, 아들이 승용차 안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습니다. 그제, 일요일 이맘때만 해도 상상하지도 못했을 일입니다. 마필관리사 고 이현준씨, 아들의 이름이었습니다.

그 이름을, 집에서만 부르던 그 이름을, '지금'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었습니다. 2일 오전 기자들이 잔뜩 모인 정론관에서 어머니 이시남씨는 울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기자가 눈물을 훔쳤습니다. 어머니 옆에서 조끼를 입고 있던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바닥에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일 오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주최 기자회견에서 지난 1일 30대 마필관리사 故 이현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대해 한국마사회의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정교진
2일 국회 정론관에서 '마사회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마필관리사 고 이현준씨 어머니 이시남씨 발언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참석자 모습. ⓒ 윤관석 의원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가 주최한 기자회견이었습니다. 검은 바탕 현수막에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노동자 피로 얼룩진 죽음의 경주를 멈춰라!", "마사회 경영진 퇴진!"이란 하얀 글씨. 그 현수막을 앞에 두고 또 다른 어머니가 연단에 섰습니다.

지난 5월 27일, 역시 새벽이었습니다. 그의 아들도 마사회를 규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국내 1호 말 마사지사로 알려진 고 박경근씨, 그의 어머니 주춘옥씨는 아직도 아들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사회와의 합의가 참 어렵습니다. 지난 달 31일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아들이 마사회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말렸던 것"이 뼛속 깊이 후회로 남아 있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보상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습니다. 생전 말보다도 못한 모욕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걸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그래서 주춘옥 어머니는 그동안 마사회의 제대로 된 사과와 제대로 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해왔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 어머니, 그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 절규를 되도록 있는 그대로 옮깁니다. 그러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 더 있는 그대로 전달될 것 같아서입니다.

어머니의 절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가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 마필관리사 죽음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남소연
"자기들은 책임 없다면서 회피하고, 책임이 없으면 한국마사회가 (연단 탁자를 치며) 문을 닫든지, 어? 한국마사회 회장이 물러나든지 그래야 맞는 거 아닙니까?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내 아들, 마사회에서 잡아먹고. 한국마사회는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세요.

누누이, 내가 얘기했잖아요. 내 아들로서 마지막이 되야 한다고. 그만큼 내가 간곡히 부탁하고 얼마만큼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도 지금까지도 마사회는 '나 몰라라' 하고, 31일 날 그것만 타결됐어도... 이 아이들 소중한 목숨이 또 끊어졌잖아요... (중략)

... (다시 연단 탁자를 치며) 그런데! 한국마사회에서는 내 자식을 잡아먹고도 두 달 넘게 사람 피를 말리는 게, 이게 횡포 아닙니까? 나는 다 갈아 마시고 싶어요. 국회의원 분들은 뭘 하십니까? 두 달 7일 동안 다 오시는 분마다 잘 되게 하겠다, 그러셨어요. 그런데도 아직까지 아무런 해결을 못 봤어요.

나는 이해할 수 없어요. 우리 아들이 바란 건 무엇입니까? 어? 안정된 직장, 또 편안하게, 내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직장이 되게끔 우리 아들이 목숨을 내놓은 거예요. 그랬는데 뭐라고 하냐면, 아들이 가정 불화 때문에 자살했다고 맨 처음 방송이 나왔어요. 기가 찰 노릇이지요. 왜 우리 아들이, 서른 아홉 살 먹은 우리 며느리와 얼마나 착하고 사랑스러운 쌍둥이 자식을 두고 갈 때는 오죽 해서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런데도 마사회는 아직까지도 반성 못하고, 허튼 수작, 한 번 해봅시다. 마사회 문을 닫던지. 정말 너무한, 정말 너무한, 내가 갈아 마셔도 분이 안 풀립니다. 마사회, 얼마나 갑질이 심한 겁니까. (옆에서 말리자 퇴장하면서) 어? X같은 놈들, 야, 이 개XX들아 똑바로 해. 내 소중한 자식을, 저거 책임 아니라고. 저거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 소중한 줄도 알아야지!"

어머니가 연단에서 물러났습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죄송하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습니다. 마필관리사 고용구조 개선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이 과정(마필관리사 문제 해결)을 보면 마사회는 적폐 수준"이라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들의 귀에는 적어도 지금 이 말들이 들리지 않고 있는 듯했습니다.

고 이현준씨의 어머니는 줄곧 울고 있었습니다.
고 이현준씨의 어머니, 이시남씨는 자신의 발언 이후에도 줄곧 울고 있었습니다. ⓒ 이정환
고 박경근씨의 어머니 역시 정론관을 나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최근 숨진 채 발견된 마필관리사 이현준, 박경근씨의 유가족들이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불합리한 고용구조와 열악한 노동 환경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 남소연
두 어머니는 좀처럼 국회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태그:#마사회, #이현준, #박경근, #우원식, #신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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