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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힘께한 사람이 있다는 건... 걸을 때 필요한 건 체력이 아니라 지혜다.
▲ 노부부의 뒷모습 오랜 기간 힘께한 사람이 있다는 건... 걸을 때 필요한 건 체력이 아니라 지혜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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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일찍 일어났다. 오늘부터 다른 순례자들보다 조금씩 더 걷기로 했다. 내 목적지는 라라소냐(Larrasona)였다. 대부분의 다른 순례자는 라라소냐 전 마을인 주리비(Zubiri)까지 간다고 했다. 라라소냐까지는 28.5km였고, 주비리까지는 23km였다. 남들보다 일찍 출발했다.

발이 아프지 않게 도와주세요…
▲ 론세스바예스의 새벽 발이 아프지 않게 도와주세요…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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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발톱에 든 멍은 어제보다 조금 더 진해져 있었다. '제발 괜찮아져라'라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신발장으로 갔다. 등산화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가니 한 무리의 한국 사람들이 보였다. 손을 둥글게 맞잡고 서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하느님 아버지…." 

출발하기 전 기도를 드리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하느님 아버지를 따라 불렀다. 신발을 신었다. '오 괜찮은데?'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니었다. 딱 세 발을 떼고 나니 통증이 느껴졌다. 하느님 아버지도 무정하시지….

기분이 울적했다.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양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SANTIAGO DE COMPOSTELLA 790KM' 표지판이 있었다. 몇몇 순례자들이 웃는 얼굴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관심 없어!' 애써 외면하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쟤네는 발톱 아픈 적 없었을까?
▲ 풀 뜯고 있는 양떼들 쟤네는 발톱 아픈 적 없었을까?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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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가야지, 하며 한 발 한 발 차근차근 내디뎠다. 익숙해지니 통증이 잦아들었다. 우거진 나무 밑으로 흙길이 쭉 뻗어 있었다. 새벽 공기가 선선해 걷기엔 좋았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뭐야?"

"부옌 까미노!"

마크는 미국에서 온 청년이었다. 스물여섯 살로 나보다 한 살 어렸다. 키도 크고, 얼굴도 주먹만 한데, 몸도 늘씬한 게 아주 미남이었다. 마크가 내 옆을 지나쳐갈 때 나도 슬쩍 속도를 냈다. 나도 내가 무슨 심보인지 모를 일이었다. 같은 속도가 되자, 우린 나란히 서너 발을 걸었다. 어색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나도 모른 체했지만, 결국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늘 어디까지 가?"
"라라소냐"
"오! 나랑 같네!"

까미노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 땐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 게 말을 트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3km쯤 걸었을까, 슈퍼마켓이 나왔다. '오!' 마크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슈퍼마켓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피레네를 넘을 때, 걸으면서 먹을 간식을 챙겨가지 않아 배고파서 혼났었다. 마크도 그랬단다. 길게 진열된 상품을 보는데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스킷과 바나나, 크루아상을 샀다. 더 사서 쟁여두고 싶었지만, 가방이 무거워지는 게 신경 쓰였다.

숲길만 있는 건 아니다, 걷다보면 정돈된 마을 길이 나오기도 한다.
▲ 부르게떼(Burgute) 마을 숲길만 있는 건 아니다, 걷다보면 정돈된 마을 길이 나오기도 한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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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큰 고민이 뭐야?"

'고민? 그게 뭔데?'라는 반응을 보였던 벤저민과 소피아가 떠올랐다. 간사하게도 마크에게는 '너는 고민이 있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이었다.

"공부랑 돈."

와우!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난 것이었다.

"내가 약학 대학원에 다니고 있거든, 공부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야. 원래 사실 이렇게 여행 나오면 안 되는 건데, 교수한테 말했어, 나 좀 나갔다 오겠다고. 힘들어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미국 대학교 등록금이 장난 아니잖아? 내가 파트타임을 하면서 돈을 벌긴 하는데, 그걸로 부족하니까 부모님께 손 벌리기도 하고 그래, 너는?" 

"하는 고민이 완전 똑같은데? 근데 나는 한 가지 더, 나는 뭘 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는 거." 

마크와 나는 죽이 잘 맞았다. 나이가 비슷해서 그런지 이야기가 잘 통했다.

"다른 고민은 없어?" 

"사실 아직 못 잊는 사람이 있어. 전 여자친구…. 2년 전에 만났다가 그 친구가 대학을 서부로 가는 바람에 서로 거리가 너무 멀어서 헤어졌는데, 아직 문득문득 생각나. 물론 그사이에 다른 사람을 만나보려고도 했는데, 그거 알아? 새로운 사람을 전 여자친구만큼 사랑할 수 없을 거 같은 거."

"내가 요즘 하는 고민이랑 비슷하네…. 나도 여전히 마음에서 안 잊히는 사람이 있는데…."

"안개 낀 풍경이 참 좋다" 마크가 두 팔을 활짝벌려 이른 아침을 만끽했다.
▲ 걸으면서 보이는 것 "안개 낀 풍경이 참 좋다" 마크가 두 팔을 활짝벌려 이른 아침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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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는 잘 쉬지도 않았고, 쉬어도 조금만 쉬고 곧장 걸었다. 마크 등에는 아주 간소해 보이는 가방이 달려있었다. 한 번 쉬기라도 할라치면 '읏차' 소리가 절로 나는 내 가방과는 달랐다. 마크와 이야기하며 걸으니 발톱도 아팠지만 견딜만했다.

"마크야, 너 이상형이 어떻게 돼?"

"어… 음… 일단 너무 까탈스럽지 않으면 좋겠고, 나는 어떤 영적으로 좀 뭐랄까, 정신적으로 성숙했으면 좋겠어, 무슨 말인지 알아?"

"마치 까미노에 올 수 있을 만한 그런 여자?"

"맞아! 딱 그거야."

신발 깔창에서 얻은 깨달음

숲길이 이어졌다. 흐르는 시냇물을 가로지르는 돌담길을 건너기도 했다. 가파른 언덕을 종종 만났다. 허벅지가 터질 듯했다. 그때마다 마크가 소리쳤다.

"말 까미노!"

"응?"

"스페인 말로 '부옌'은 '좋다'는 뜻이야. 반대로 '말'은 '나쁘다'는 뜻이고. 그러니까 이런 길을 걸을 땐 '말 까미노!'라고 하면 되는 거지." 

"말!!! 까미노!!! 이렇게?"

"그거야! 잘하는데?"

별걸 가지고…. 느낌을 그대로 담았을 뿐이었다. 발톱 끝에서부터 전해지는 그 느낌! 마크 덕분에 20km를 눈 깜짝할 새에 왔다. 아침 열 시가 조금 늦은 시간이었다. 여유가 생겨서 바를 찾아 들어갔다. 커피를 한잔하고 나와 벗어뒀던 신발을 신었다. 새끼발톱이 신발 안쪽 윗면에 걸렸다. 발톱이 벌어졌다. 말 못 할 통증이 전해졌다. 발톱이 빠질 것만 같았다. 신발이 작아서 아팠단 걸 그제야 깨달았다. 마크가 저 앞에 가고 있었지만 따라갈 수가 없었다.

잘가 마크, 난 여기까지야. 인사도 못하고 보낸다 널.
▲ 떠나가는 마크 잘가 마크, 난 여기까지야. 인사도 못하고 보낸다 널.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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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점점 커지더니 정점에 달했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벤저민과 소피아였다. 어느새 뒤따라 와있었다. 내가 절뚝이고 있으니까, 벤저민이 걱정된다는 듯한 눈으로 물었다.

"발톱이 너무 아파서 못 걷겠어. 신발이 작나 봐."
"그럼 신발 깔창을 빼 보는 게 어때? 나도 신발이 작아서 깔창을 뺐는데 훨씬 나아." 

깔창!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주저앉아 깔창을 빼는데 스스로가 바보 같았다. 깔창을 빼는 게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발톱이 이 지경이 되기 전에 뭐라도 해야 했다. 벤저민이 말해주기 전엔 생각도 못 했다. 그저 참고 견뎠다. 오히려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이거밖에 안 돼?', '이것도 못 버텨?'

내 인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발이 작으면 발이 아픈 게 당연했다. 신발에 문제가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내 탓을 했다. 이 바보 같음이 내 문제였다.

꼭 깔창 하나가 내 인생을 축소해 보여주는 듯했다. 그동안 내 탓을 하면서 살아왔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땐,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냐?'고 자책했다. 길을 잃었을 땐,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며 달려온 날 또다시 질책했다. 뒤돌아 가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시 찾아볼 생각은 못 했다. 시간에 쫓겨 '늦었다'고 생각했다. 졸업할 때가 되자, '이미 돌이킬 수 없어. 늦었어. 내가 하고 싶은 게 찾아지지 않으면 남들처럼 취업하고, 돈 벌자'며 자포자기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을 떠나 시간을 갖게 됐다, 지금에서라도. 깔창 하나를 빼는데 왜 이렇게 서럽던지…. 깔창을 빼고 나니 조금 나았지만, 이미 살짝 들린 발톱이 괜찮아질 리 없었다.

그는 산티아고까지 나와 함께 했다.
▲ 새끼발톱에 든 멍 그는 산티아고까지 나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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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말아요, 절대로, 절대 포기하지 마요"

내가 길 중간에 퍼질러 앉아 있으니까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괜찮냐고 물었다. 길 중간에 앉아 있다고 핀잔을 주지 않는 게 고마웠다. 하나둘 사람들이 지나쳐갔다. 몇 명이나 지나갔는지 세기도 어려웠다. 겉으론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했지만, 속으론 무간지옥을 걷는 기분이었다.

묘비를 보고 아름답다고 해도 될까? 공동묘지에서 쉬다보면 잠시 고통이 잊혀진다.
▲ 길을 걷다보면 보이는 것들 묘비를 보고 아름답다고 해도 될까? 공동묘지에서 쉬다보면 잠시 고통이 잊혀진다.
ⓒ 박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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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못 가 쉬고 있으니, 저 멀리서 백발의 동양인 남자가 아주 천천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와타루, 일본인 아저씨였다. 나이가 육십이 넘었다는 것만 알려주고 뒷자리는 비밀이랬다. 와타루 아저씨는 나와 걷는 속도가 딱 들어맞았다.

"혼자 오셨어요?"
"그렇죠."
"어떻게 오셨어요?
"이제 은퇴를 하고 나니까 뭘 해야 좋을지. 사는 게 뭔가 싶어서 왔어요."

올해 정년퇴직한 아버지가 떠올랐다.

"당신은 어찌 왔는고?"
"저는 뭘 해야 할지 몰라서요. 방황을 많이 했는데요, 아직도 모르겠어서 그냥 와 봤어요. 생각을 비우고 싶어서요."
"나이가 어떻게 돼요?"
"만으로 26살이요."

와타루 아저씨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허허, 좋은 나이네."
"네, 좋은 나이긴 한데요, 너무 막막해요. 불안하고요."
"내 이야기를 좀 해줄까요?"

그의 영어는 더듬더듬했지만, 그는 정확한 영어 단어를 신중히 골랐다.

"내가 당신 나이 때, 만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내 그림이 뭐가 되겠어?' 생각하고 그냥 취업했어요. 그때는 만화가가 알아주지도 않았어. 돈을 벌고 난 뒤에는 여행을 떠나고 싶었는데, '애가 생기기 전에 돈 좀 더 벌고 가자'면서 여행을 미뤘지. 아이가 생기고, 아이가 크고, 내 일이 바빠지니까 내 삶이 없어지더라고요.

나는 젊을 때 항상 '늦었다' 생각해서 빨리 포기하곤 했어요,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라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후회돼, 정말 바보 같았어. 젊음은 정말 황금과도 같은 거예요. 정말이에요. 물론 지금은 막막하고 불안하겠지요. 나도 그랬으니까. 근데, 정말 하고 싶은 거 해요. 돈은 그리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대화가 이어지면서 와타루 아저씨는 자신을 답답해했다. 영어로 내뱉어내 지지 않는 말이 있는 듯했다.

"내가 영어가 짧아서,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데 잘 못 하겠네. 내 말을 다 알아들었을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말해주고 싶은 건 이거 딱 하나예요. 포기하지 말아요. 절대로, 절대 포기하지 마요(Never give up, Never give up, Never give up). 이 말을 명심하면 나중에 가서 하고 싶은 걸 안 할 걸 후회하진 않을 거예요, 돈은 걱정 마요, 저절로 따라와요."

눈물이 나려고 했다. 하고 싶은 걸 찾고 있다고 하면 대부분 어른이 '현실'을 이야기하며 실없는 놈 취급했었다. 와타루 아저씨는 달랐다. 더듬더듬, 차근차근 자신이 살아온 인생으로, 나를 위로해줬다. 고마웠다.

내리막길이 나오고 볕이 앞에서 내리쬐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일찍 가더니, 아직 여기까지밖에 못 왔어?" 큰형님이 지나갔다. "어쩌다가 그래?" 영하 형님이 날 따라잡았다. 잰걸음으로 걸으면서도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스러웠다. 체력 좋다고, 젊다고 빨리 가는 게 다 소용이 없었다. 아프면 끝이었다.

내가 가장 필요했던 일!

얼른 신발부터 벗자
▲ 주비리 입구의 다리 길 얼른 신발부터 벗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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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 걸어서 주비리에 도착했다. 론세스바예스를 도착했을 때보다 더 기뻤다. 다음 마을인 라라소냐까지는 엄두도 안 났다. 영하 형님이 물었다.

"어떻게 라라소냐까지 갈 거야?"

"아뇨, 여기서 같이 쉬시죠."

알베르게를 고를 힘도 없었다. 얼른 신발을 벗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마을 입구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양말부터 벗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톱이 들리는 게 보였다. 다들 샤워하느라 분주할 때 한참을 넋 놓고 앉아 있었다. 발이 조금 진정되고서 내게 가장 필요한 일을 했다.

삼각대, 요가매트, 비상약, 수건, 칫솔, 양말, 모자 등등. 어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게 오늘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 더이상 내 것이 아닌 것들 삼각대, 요가매트, 비상약, 수건, 칫솔, 양말, 모자 등등. 어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게 오늘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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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말 버리는 거야? 이거 좋아 보이는데? 나 가져도 돼?"

벤저민이 다가오더니 버리려고 모아둔 물건을 보고 내게 물었다. 양말은 물론이고 삼각대, 요가 매트, 수첩, 옷가지 등이 있었다. 어제는 필요했던 물건들이 더는 필요가 없었다. 어제 보이지 않던 필요 없는 물건들이 보였다. 비상약통도 버리기로 했다. 여행하는 동안 한 번도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무게가 나가든 안 나가든 필요 없는 물건은 다 버리기로 했다.

"필요한 건 다 가져가." 

더 이상 내 물건이 아니었다. 내 욕심일 뿐이었다. 꼴도 보기 싫었다. 물건을 좀 버려달라고 알베르게 주인에게 가져다주니 삼각대가 쓸만하겠다며 좋아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홀가분했다.

샌들을 사기로 했다. 샌들을 신고 걷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 운동화를 사기엔 발톱이 너무 아팠다. 중세 때 순례자들도 샌들을 신고 걸었다고 하니,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주비리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다행히 등산용품 판매점이 있었다. 가격과 디자인은 안중 밖이었다. 얼마나 내 발톱을 안 아프게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발톱을 아예 빼버리는 건 어떨까 잠깐 고민했다.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바보 같은 생각은 썩 물러나라!

 날 좀 구해줘!
▲ 안녕 샌들아? 날 좀 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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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들을 사고 나니 그제야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주비리는 입구에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다리가 있었다. 다리 밑으로는 삼겹살을 구워 먹기 딱 좋은 개울이 있었다. 프랑스 가족이 물놀이하고 있었다. 딸 셋과 아들 하나, 엄마 그리고 아빠.

'나도 아이를 낳으면 저렇게 올 수 있을까?' 

개울가에 발을 담그기로 했다. 앉기 좋게 평평하고 물 위로 올라와 있는 돌덩이를 골라 앉았다. 발을 물에 풍덩 내려놓았다. 무릎까지 잠겼다. 물은 적당히 차가웠다. 달콤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고통 이후에 찾아온 휴식이었다.

"내가 가장 좋았던 마을이 주비리야, 마을이 작지만, 조용하고 이렇게 개울에 발을 담글 수 있어서 딱 좋았어."

독일에서 온 카라가 내 옆에 앉았다. 그녀는 이번이 두 번째 까미노라고 했다. 프랑 길만 두 번째였다. 무릎에 붙어 있는 파란색, 분홍색 스포츠 테이프가 그녀가 '아마추어'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왜 프랑스길을 또 걸어? 한 번 왔던 길이면 다른 길을 걷고 싶지 않아?"

"그냥 좋아서, 지난번 기억이 좋아서 한 번 더 더듬고 싶었어."

"다른 길이 더 좋으면 어쩌려고?"

"봐봐, 나는 이 순례자 길을 정복하러 온 사람이 아니야. 그저 그때의 좋았던 기분을 또 느끼고 싶어서 왔을 뿐이야. 다른 길이 어떨지 지금 생각하고 싶지 않아."

카라에게 한 방 먹었다. 나도 모르는 와중에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무언갈 비교하고 있었다. 뭐가 더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뭐가 더 나은 선택일까? 마치 '덜 나은 선택'을 하면 남에게 뒤처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을 입구에 다리가 놓여있고, 그 밑으로 물이 흐른다. 소박해서 이쁜 마을.
▲ 주비리 전경 마을 입구에 다리가 놓여있고, 그 밑으로 물이 흐른다. 소박해서 이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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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족했던 하루, 내일도 걸어보자! 

내가 묶는 알베르게는 10인실이었다. 우연히 어제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론세스바, 예스! 마이크 헤더, 할아버지 손녀 커플, 벤저민, 소피아 핀란드 커플, 큰 형님과 영하 형님, 그리고 어제 묵었던 알베르게에서 만난 스무 살 주익이, 그리고 오늘 만난 와타나 아저씨, 카라까지.

"오늘의 메뉴는 닭볶음탕!"

"???"

큰형님이 닭볶음탕을 외쳤을 때, 모두들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닭볶음탕 쉬워, 요리는 네가 하면 되겠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가 지목됐다. 군대 서열로 따지면 내가 일병 정도 됐다. 내 위아래로 영하 형님과 주익이는 요리에 젬병이라고 딱 잡아뗐다. 좋다. 내가 어디 한번 만들어보지. 맛있게 만들라는 말은 없었잖아?

닭과 감자 그리고 양파 정도를 사서 이층에 있는 부엌으로 올라갔다. 닭 핏물을 빼고, 이렇게 저렇게, 감자를 썩둑 썩둑, 이렇게 저렇게 하는 사이, 큰형님이 볶음고추장을 의기양양 가져왔다. 아…. 큰형님은 요리를 해보지 않은 게 분명했다. 볶음고추장으로 국물 맛을 내라니. 역시 밍밍했다. 큰형님이 이번엔 라면 수프를 짜잔! 하고 꺼냈다. 다 죽어가는 닭도리탕에 간신히 호흡을 불어넣었다.

상을 차렸다. 닭볶음탕과 냄비 밥, 그리고 와인이 전부였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정말 그랬다. 밥을 입에 한 숟갈 넣었다. 흰쌀밥이 내 입에 있다는 것 자체가 흡족했다. 다음은 국물. 맛없지만 감동적이었다.

"형님, 맛있네요. 한국에 있으면 줘도 안 먹을 맛인데, 그렇죠?"
"그럼, 줘도 안 먹지 이런 거."

카라와 와타루 아저씨 그리고 피레네를 넘을 때 만난 한국인 자매도 함께였다.

"원래는 더 맛있는데, 재료가 없어서…."

한국 음식을 처음 먹어본다는 일본인과 독일인에게 원래의 닭볶음탕은 이게 아니라는 걸 강조했다. 물론 둘에게 한국 음식은 이 닭볶음탕으로 기억될 것이다. 둘은 맛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핀란드 커플이 와인 한 병을 들고 뒤늦게 합류했다. 남은 고기가 없어서 감자와 국물만 줬는데도 괜찮다며 밥 한 그릇을 비웠다. 원래 핀란드에서는 감자가 주식이라며. 유럽인의 소탈함이 낯설기도, 고맙기도 했다.

와인 때문에 취기가 오른 탓인지, 순례자가 된 사람들의 에너지가 모인 탓인지 흡족했다. 모두가 웃고 있는 걸 보니 나만 흡족한 건 아닌 것 같았다. 발톱이 뽑히더라도 끝까지 걸어보자. 얼마나 더 좋을지.

덧붙이는 글 | 2017년 5월 22일부터 6월 29일까지 걸어서 산티아고를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태그:#산티아고, #까미노, #론세스바예스, #주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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