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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계란국
 토마토계란국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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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결혼이주여성들에게 글쓰기 강의를 했다. 수강생 십여 명 중 캄보디아와 베트남에서 온 두 사람을 빼면 모두 중국이 본국이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수강생들과 교실 뒷정리를 하는데 누군가 강의실로 채소 한 무더기를 가져 왔다. "우와, 상차이네. 이거 어디서 났어요?" 중국에서 온 분들이 단번에 알아봤다. '상차이'는 고수라는 채소다. 향채라고도 하는데 온갖 중국요리에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한국으로 치자면 대파 정도로 많이 쓰인다고 해도 될까? 한국에선 독특하고 진한향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채소 중 하나다. 웬만한 시장이나 동네 마트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저마다 고수를 코에 갖다 대고는 탄성을 내뱉는다. 중국 음식점에서나 겨우 맛볼 수 있다니 그 맘이 이해가 간다. 봉지에 나눠 갖는가 싶더니 나를 가리키며 소곤거린다.

"선생님도 이것 좀 가져가세요."

나는 한 번도 고수로 요리를 해본 일이 없다.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즐기지도 않는다. 순간, 나보다 고수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가져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너무 딱 잘라 티 나게 거절하긴 싫었다. 일단 그들과 함께 향이라도 맡아보자 싶었다. "이거 먹을 줄 아세요? 한국에는 이거 싫어하는 사람 많던데." "아, 네... 먹어 보긴 했지요..." 말을 얼버무리는 사이 비닐봉지 가득 고수가 담겼다. 식구가 없다는 핑계로 한 줌 크게 덜어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고수 먹는 법을 폭풍 검색했다. 역시나, 별다른 요리법이 나오지 않는다. 그때 토마토계란국이 떠올랐다. 중국에서 회사를 다닌 친구가, 술 마신 다음 날 자주 사 먹었다며 해장엔 최고라고 추천한 요리다. 토마토로 국을 끓인다니 상상하기 어려웠다. 절대 해먹을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눈앞의 고수를 보니 도전정신이 올라왔다. 중국 가정식 요리라니 의외로 맛있을지도 모른다. 마침 냉장고에 물러 터지기 직전인 토마토가 있었다.

요리법은 간단하다. 대파를 다져 기름에 볶다가 큼직하게 자른 토마토를 넣어 으깨면서 볶는다. 물을 붓고 간장, 소금, 후추를 넣고 끓이다가 계란을 풀어 휘젓는다. 마지막에 고수를 취향껏 올리면 끝. 오, 생각보다 맛이 괜찮다. 후루훅 후루룩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먹을수록 당긴다!

수강생 단체 대화방에 토마토계란국 사진을 올렸다. 반응이 뜨거웠다. 고향 음식이라며 반가워했고 오랜만에 해 먹어봐야겠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다음 날, 정말로 여러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역시, 내가 끓인 것보다 훨씬 먹음직해 보였다. 요리 정보도 나눴다. 계란 한 개 당 토마토 두 개를 넣으면 비율이 적당하고, 식초나 설탕을 넣어도 맛있단다.

사진 하나에 풀어놓은 이야기, 마음을 흔들었다

토마토계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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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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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다.

"선생님, 어제 사진 올려줘서 고마워요. 사실 상차이 가져간다고 해서 놀랐어요. 싫어할 줄 알았거든요. 우리집에선 한 번도 상차이를 먹어본 적 없어요."

시어머니와 남편이 그 향을 너무 싫어해서 한국생활 10년 차에 접어들도록 고수 요리를 못했단다. 비슷한 사연이 이어졌다. 캄보디아에서 흔히 사용하는 액젓을 냄새 난다며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이도 있었고, 먹기 싫은 한국 음식을 억지로 먹기를 강요하는 일까지, 안타깝고 답답하고 창피한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그동안 한국에 대한 '가르침'만 받았을 그들. 나 역시 수업을 통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을 못했다. 그날 이후로 한글 맞춤법과 작문법에 집중했던 수업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하자고 다짐했다. 글쓰기란, 결국 내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 아닌가?

3년 째 글쓰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우린 이제 서로 가족의 안부를 물을 만큼 가까워졌다. 덤으로 문장력이 좋아지고 표현도 풍부해졌다. 나도 변했다. 낯선 땅에 맨몸으로 부딪히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존경하게 됐다. 그들과 수업하고 오는 길엔 늘 마음이 따뜻해진다. 다른 나라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친구가 이렇게 여럿 생길 줄은 몰랐다. 토마토계란국이 아니었다면, 아주 오래 걸렸을지 모를 일이다.

수강생들이 단체 대화방에 올린 토마토계란국 사진들
 수강생들이 단체 대화방에 올린 토마토계란국 사진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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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계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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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토마토계란국, #고수, #상차이, #다문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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