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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면 은빛 억새 물결로 무척 아름다운 억새평원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가을이면 은빛 억새 물결로 무척 아름다운 억새평원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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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일상을 든든하게 지켜 주는 원동력은 자연인 것 같다. 드넓은 자연의 품속에서 세상사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을 뿐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살고 있는 지역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는 산행이 적잖이 부담스럽던 차에 마침 그다지 멀지 않은 창녕 화왕산과 관룡산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가 있어 함께 길을 나섰다.

지난달 23일 오전 8시 마산역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화왕산군립공원 자하곡매표소(경남 창녕군 창녕읍 말흘리)에 도착한 시간은 9시 10분께. 도성암 쪽으로 20분 남짓 걸어가자 산악회 리본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돌계단이 나오면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산길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이 온도부터 다른 것 같았다. 몇몇 회원들이 키 큰 소나무 숲길에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가벼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정답게 와닿았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으로 점점 발소리도 둔탁해져 갔지만 그런대로 걸을 만했다. 그렇게 40분 정도 걸어갔을까, 나무 아래에 쉬어 갈 수 있는 긴 의자가 놓여 있었다.

   '쉼'이 있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이쁘다.
 '쉼'이 있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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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왕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화왕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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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왕산(756.6m) 정상에서.
 화왕산(756.6m)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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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이 있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한 폭의 그림 같다. 나는 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잠시 쉬었다. 일상에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들 삶도 마음의 여유와 몸의 휴식을 가져다주고 더 나아가 삶을 관조하게 하는 '쉼'이 있어야 풍요로울 것이다. 기분 좋은 짧은 휴식을 끝내고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앞서가던 일행 두 분과 몇 마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조금 느긋한 걸음을 걷다 보니, 어느새 반가운 정상 표지석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전 10시 40분께 화왕산(756.6m) 정상에 이르렀다. 아스라이 배바위가 보이고 길처럼 뻗어 있는 화왕산성(사적 제64호)의 복원된 성벽이 눈길을 끌었다. 5 ~ 6세기에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화왕산성은 가야의 산성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성곽 둘레는 대략 2.7km이다. 임진왜란의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홍의장군이라 불렸던 곽재우가 왜군의 진출을 막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안타까운 화왕산 참사가 어쩔 수 없이 생각나는 배바위. 그 부근에서 8년 전 정월 대보름 억새 태우기 행사 당시 인명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했었다. 화왕산 산행은 몇 번 했어도 가 본 적이 없는 그곳. 그러고 보니 가슴 아픈 사건 이후 화왕산 산행도 처음이다.

창녕조씨(曺氏) 득성설화가 전해지는 화왕산서 관룡산으로

   창녕조씨(曺氏) 득성설화지
 창녕조씨(曺氏) 득성설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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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억새평원으로 내려가는데 고맙게도 한 일행이 막걸리 마시러 오라고 챙겨 준다. 무더운 여름 산행길에서 살얼음 낀 막걸리를 들이켜는 시원함이란 경험하지 않고서는 모른다. 삶은 문어 안주를 곁들여 가슴속까지 뻥 뚫리게 하는 막걸리를 몇 잔 얻어 마시고서 가을이면 은빛 억새 물결로 무척이나 아름다운 억새평원을 가로질러 화왕산성 동문을 향했다.

얼마 안 가 창녕조씨(曺氏) 득성설화가 전해지는 못이 나왔다. 경상남도 관찰사 조시영이 1897년에 세운 창녕조씨 득성비와 함께 경남기념물 제246호로 지정된 용지(龍池) 3기 가운데 하나이다. 내용인즉슨 신라 진평왕 시절에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 못에서 목욕을 하였는데 그 후 태기가 있었다 한다.

   창녕조씨(曺氏) 득성비
 창녕조씨(曺氏) 득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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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아이가 용의 아들로 겨드랑이 밑에 조(曺) 자가 있을 것이다는 꿈속의 계시대로 그녀가 아이를 낳고 보니 과연 그러했다. 이 소문을 들은 왕이 직접 확인하고서 성을 조씨라 하고 이름은 계룡(繼龍)이라 부르게 하였는데 이 아이가 바로 창녕 조씨의 시조라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창녕조씨 득성비를 거쳐 동문으로 나갔다. 힘들이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평평한 임도가 한참 이어졌다. 오래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 허준 > 드라마 세트장 부근에 산딸기가 지천이었다. 산행 중에 달콤한 산딸기를 따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옥천삼거리에서 숲길로 들어가서는 꽤나 걷기가 힘들어졌다. 여름 산행치고 제법 오래 걷는 편이라 몸이 자꾸 무거웠다.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서 부처의 자비를 보다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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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산(754m) 정상에 오른 시간이 11시 50분께. 지친 몸을 잠시 내려놓고 우두커니 앉아 쉬었다. 여기서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거친 바윗길을 지나가기도 하고 좀 가파르고 미끄러운 마사토 길도 조심스레 내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30분 남짓 걷다 보니 통일신라 후기 9세기경 작품으로 추정되는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을 만날 수 있었다.

부처의 자비가 느껴지는 온화한 인상에 1.17m 되는 높은 대좌 위에 앉아 있는 자세에서 둔중함이 다소 느껴졌다. 광배는 없어진 상태인데 연꽃을 새긴 반구형 상대석(上臺石)이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용선대에서 10분 가량 내려가니 관룡사(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가 나왔다. 절집 경내로 들어서자마자 벌컥벌컥 물부터 들이마셨다.

   관룡산(754m) 정상에서.
 관룡산(754m)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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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룡사 약사전(보물 제146호)
 관룡사 약사전(보물 제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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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룡사 석장승(경남민속문화재 제6호)
 관룡사 석장승(경남민속문화재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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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행사를 앞두고 있는지 대웅전 앞마당에는 행사 준비로 복잡했다. 그래서 조선 전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약사전(보물 제146호)으로 바로 갔다. 건물 앞면과 옆면이 각 1칸으로 매우 작은 불당이다.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고 표현 기법에 있어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이는 불상(보물 제519호)이 모셔져 있다.

산악회 하산 시간에 맞춰야 해서 서둘러 관룡사를 빠져나가 절 입구에 남장승과 여장승 한 쌍이 서 있는 석장승(경남민속문화재 제6호) 쪽으로 걸어갔다. 위용을 과시하는 듯 다문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는 석장승. 그런데 툭 튀어나온 왕방울 눈, 주먹코 등 투박한 표현이 내게는 오히려 소박하고 친밀한 느낌이 들었다. 석장승은 절의 경계를 표시하면서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문장 역할에 풍수지리적으로는 허한 곳의 기운을 불어넣는 기능 또한 하고 있어 불교와 민간 신앙이 결합된 것으로 여겨진다.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 산길, 그리고 고달픈 삶을 부처님의 자비에 의지하며 버텨 냈을 옛사람들의 흔적에서 내 삶을 다시금 바라보는 소중한 시간을 보낸 하루였다.


태그:#창녕조씨득성설화, #용선대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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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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