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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대필조작사건' 피해자 강기훈씨(자료사진).
 '유서대필조작사건' 피해자 강기훈씨(자료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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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6일 오후 3시 19분]

동료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억울한 누명을 썼던 '유서대필조작사건' 피해자 강기훈씨가 26년 만에 '피고 대한민국'으로부터 배상받을 길이 열렸다. 하지만 강압수사를 했던 검사들은 손배해상책임을 피했다.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7부(부장판사 김춘호)는 국가가 사건 당시 불법을 저질러 강씨와 그의 가족 등 5명에게 손해를 끼쳤다며 그 책임을 인정, 6억 8600여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필적감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김형영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서실장에게도 공동책임을 지웠다. 그러나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강력부장으로서 수사를 지휘한 강신욱 전 대법관과 주임 검사였던 신상규 변호사의 배상책임은 시효가 지났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 이 소송에서 '피고 대한민국'의 패소는 예상가능한 결과였다. 강씨는 1991년 5월 동료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하고 그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사법부는 2015년에서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이 잘못됐다며 그의 재심 무죄판결을 확정했다. 6일 판결은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결과였다.

쟁점은 '수사 검사들의 책임을 과연 물을 수 있느냐'였다. 강씨와 변호인단은 검사들이 그를 협박하고, 국과수의 허위 감정을 토대로 수사 결과를 끼워 맞추는 등 사건을 조작했다며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6일 재판부는 수사 과정에서 검사들이 변호인 접견을 방해하고, 참고인들에게 진술을 강요한 사실 등은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일이고, 수사 과정에서 강압적인 모습들에 손해배상 책임을 구하는 것은 시기가 늦었다"고 했다.

강씨의 승소였지만, 법정에 나온 변호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재심부터 참여해온 송상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선고 후 기자들에게 "오늘 판결은 큰 틀에서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기훈씨가 무죄판결 받고 제일 먼저 '당시 가해자들이 진실되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모두 회피했다"며 "그 책임을 공식적으로 묻고, 역사적으로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법원은 그 중에서 특히 핵심 수사 당사자인 강신욱·신상규 검사의 책임을 부정하고 오히려 그들의 틀에서 움직인 (필적) 감정에만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처음부터 검사는 이 사건 유서대필자를 찾아내기 위해 끼워 맞췄다. 재판부는 이 점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소멸시효 이유를 들어 그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심히 유감이다. 유독 검사들에게만 다르게 판단한 부분은 면죄부를 준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송 변호사는 "잘못된 수사를 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공무원들의 행위에 법적 책임을 제대로 다투는 사례를 만들길 원했다"는 말도 남겼다. 그는 "지난 시절 수많은 고문 등을 한 검찰과 경찰의 법적 책임이 인정된 사례가 거의 없는데 법원이 검찰의 책임을 두고 소극적으로 판단해온 것 같다"며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라도 이번에 전향적인 판단을 하길 바랐다"며 아쉬워 했다.


태그:#강기훈, #유서대필조작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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